형으로 신을 그리는 K초상화가

1668~2025.04.05·4화

2005년 - 2015년 : 겸재 정선과 만나다

2005년 - 2015년 : 만해 한용운과 만나다

2015년 - 2021년 : 공재 윤두서와 만나다

2023년 - 2025년 : 춘향과 만나다

김현철 : 음악과 교육 분야에서의 행보

2026.04.09·1화

김현철 : 음악과 교육 분야에서의 행보

2025년 05월 29일 목요일

2015년 - 2021년 : 공재 윤두서와 만나다

금릉 김현철은 조선 시대 자신의 자화상을 담긴 공재 윤두서의 미완성 초본을 바탕으로 윤두서의 초상화를 그렸고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전신사조의 미학을 마침내 성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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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56세 때, 김현철은 해남 녹우당을 방문해서 윤두서 종손가에 공재 윤두서 초상화 제작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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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57세 때부터, 김현철은 공재 윤두서 초상화의 자료 조사와 밑그림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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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는 1668년부터 1715년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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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3재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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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는 자화상을 남긴 거의 유일한 조선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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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초상화는 제사나 장례용이라서 자화상은 금기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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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 자화상을 그렸지만 초본만 그리고 정본은 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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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20.5센티미터에 세로 38.5센티미터 크기의 공재 윤두서 자화상은 국보 240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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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아래 부분은 사라졌고 귀도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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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사료집진속 제3집에 수록된 공재 자화상 사진에는 몸 부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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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윤두서 자화상이 미완성이 아니라 완성작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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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섬세한 채색으로 그려졌었지만 채색은 소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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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7세 때, 김현철은 공재 윤두서의 초본을 바탕으로 정본 초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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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은 공재 후손의 얼굴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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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윤두서의 벗 담헌 이하곤이 “6척도 안 되는 몸으로 사해를 초월하려는 뜻이 있네”라는 문장까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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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57세 때, 김현철은 공재 윤두서 초상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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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이 역사 속 인물의 초상에 집중하는 것은 전신사조가 결국 죽은 자의 정신을 되살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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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귀신을 그리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을 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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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의 초상화는 같은 인물을 그리더라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되고 결국 핍진성이 관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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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7세 때, 김현철은 제주 진경과 해남도 진경을 그리면서 초상화에서 진경산수화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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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작가로서 김현철은 작가로서 초기엔 중국 고대와 조선 명작을 모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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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은 자연을 직접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겸재 정선의 화풍에서 영감을 받아서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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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7일부터 2017년 10월 3일까지 김현철은 해남 녹우당 충헌국에서 열린 공재, 녹우당에서 공재를 상상하다 전시회를 개최하고 공재 윤두서 초상화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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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9세 때, 김현철은 초상-전신의 세계 전시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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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62세 때, 김현철은 이만응 초상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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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