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
1944.01.01~2025.04.08·1화김장하
김장하 : 나눔과 겸손의 삶, 어른 김장하
2026.02.23~2026.04.05·1화김장하 : 나눔과 겸손의 삶, 어른 김장하
2025년 04월 08일 화요일
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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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1일, 0세 때, 김장하는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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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3월 1일, 14세 때, 김장하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뒤, 삼천포의 한 한약방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약을 썰고 밤에는 독학으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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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6월 1일, 19세 때, 김장하는 한약업사 자격을 최연소로 취득하고, 사천시 용현면 석거리에서 자신의 첫 한약방을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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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월 1일, 28세 때, 김장하는 진주시 동성동으로 이전해 ‘남성당한약방’을 열고 운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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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1일, 39세 때, 김장하는 사재 100억 원을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설립 이유는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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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1일, 47세 때, 김장하는 자신이 세운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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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내내, 40~50세 때, 김장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장학금을 전달했다. 수혜자는 1,000명이 넘었고, 장학증서나 전달식은 일절 없이 조용히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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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50대 후반 때, 김장하는 진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진주신문 등에도 조용히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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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일, 61세 때, 김장하는 문형배(훗날 헌법재판관)에게 학비를 지원받은 은인으로 알려졌으며, 문 재판관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면 사회에 갚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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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일, 66세 때, 김장하는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지역 문화 진흥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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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후반, 70세 전후로, 김장하는 여전히 본인의 신념대로 기부와 후원을 계속하면서도 언론이나 대외적 조명을 철저히 피했다. 인터뷰를 거절하고, 사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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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5일, 79세 때, 김장하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가 개봉되었다. 제작진은 그의 철저한 익명주의와 무관심 속에서 어렵게 설득하여 영화를 만들었으며, 이는 진정한 '어른'의 삶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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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일, 80세 때, 김장하는 여전히 진주시에서 거주하며 남성당한약방을 유지했고, 장학 사업과 지역 공동체 지원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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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8일, 81세 때, 김장하는 대한민국의 ‘진짜 어른’으로 기억되며 살아있는 도덕적 상징으로 존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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