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0~2026.08.15·1화

이재현 : 2026년 10월 17일 업데이트

0~2026.10.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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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3월 19일, 0세 때, 이재현은 서울에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와 손복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나 이병철의 장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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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09월 22일, 5세 때, 이재현은 할아버지 이병철이 중앙일보를 창간해 초대 사장을 맡았고, 부사장에는 훗날 숙부 이건희의 장인이 되는 전 법무부장관 홍진기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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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0월 00일, 6세 때, 이재현은 할아버지 이병철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둘째 아들 이창희가 구속되자 한국비료를 국가에 내놓고 경제계 은퇴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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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5월 27일, 7세 때, 이재현은 숙부 이건희가 홍진기의 장녀 홍라희와 혼인하면서 할아버지 이병철과 홍진기가 사돈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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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7월 00일, 7세 때, 이재현은 할아버지 이병철이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아버지 이맹희를 그룹 총수로 정한다고 선언하면서 삼성 후계자로 지목된 장남의 맏아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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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8세 때, 이재현은 할아버지 이병철이 경영 복귀를 선언하면서 아버지 이맹희가 그룹을 이끌던 체제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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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8세 때, 이재현은 할아버지 이병철이 회장, 홍진기가 사장을 맡는 체제로 중앙일보 경영진이 바뀌면서 중앙일보 안에서 홍진기의 입지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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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8세 때, 이재현은 숙부 이건희가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돌아와 홍진기가 경영하던 중앙매스컴 이사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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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재현은 아버지 이맹희가 삼성그룹 회장직과 대부분의 계열사를 물려받고, 숙부 이건희는 동양방송·중앙일보 쪽을 받아 따로 나가는 승계 구상의 장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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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0월 00일, 9세 때, 이재현은 작은아버지 이창희가 할아버지의 외화 도피 등을 문제 삼은 탄원서를 청와대에 보낸 일에 아버지 이맹희도 관련됐다고 할아버지가 의심하면서, 아버지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는 결정적 계기가 생겼다. 이맹희 본인은 관련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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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00월 00일, 13세 때, 이재현은 아버지 이맹희가 할아버지의 재촉으로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17개 직함 가운데 3개만 남긴 채 일본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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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경 · 13세 무렵, 이재현은 할아버지 이병철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대신 숙부 이건희가 그룹을 맡아야 한다는 뜻을 이건희에게 직접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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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9월 00일, 16세 때, 이재현은 할아버지 이병철이 일본에서 암 수술을 받기 전날 밤 가족을 모아 숙부 이건희를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히면서, 아버지 이맹희 대신 숙부가 삼성의 차기 경영자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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