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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한동훈 : 2026년 10월 14일 업데이트

1
1980년 00월 00일, 7세 때, 한동훈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2
1980년경 · 7세 무렵, 한동훈은 유년기와 초등학생 시절을 충북 청주에서 보냈다.
3
1982년경 · 9세 무렵, 한동훈은 청주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며 방과 후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4
1982년경 · 9세 무렵, 한동훈은 청주 도심을 가로지르며 풀숲이 우거지고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던 집 앞 무심천에서 자주 놀았다.
5
1982년경 · 9세 무렵, 한동훈은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무심천에 나가 올챙이를 잔뜩 잡았고, 하천 곳곳의 돌다리를 재미 삼아 일부러 건너다녔다.
6
1986년 03월 00일, 12세 때, 한동훈은 이른바 강남 8학군의 중학교에 진학해 고등학교까지 이 지역에서 다녔다.
7
1992년경 · 19세 무렵, 한동훈은 대학 시절 내내 운동권 활동을 하던 윗세대 선배들이 졸업 무렵 과방에 쌓인 대기업 입사 지원서로 별다른 스펙 경쟁 없이 모두 취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8
1992년 02월 00일, 18세 때, 한동훈은 이른바 강남 8학군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9
1992년 03월 00일, 18세 때, 한동훈은 고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대학교에 92학번으로 입학했다.
10
1993년경 · 20세 무렵, 한동훈은 대학 시절 소설 한 편을 썼으나 완성 후 다시 읽어 보고 자신에게 그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다.
1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대학 진학 후 이른 시기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검사가 되어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검사 시절 동료들 사이에서 이방인에 가까웠으며, 술을 마시지 않았고 수사 중 큰소리를 친 적도 거의 없었다.
13
2002년경 · 29세 무렵, 한동훈은 윤석열을 처음 알게 됐고, 이후 두 사람은 각자 공적 역할을 맡아 여러 일을 함께하며 서로 신뢰를 쌓았다.
1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이명박 정부 시기 대통령실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15
2022년경 · 49세 무렵,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에 올라 2년간 재임하면서 야당에 홀로 맞섰다.
16
2022년경 · 49세 무렵,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 입법에 맞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17
2022년경 · 49세 무렵, 한동훈은 헌법소원으로도 풀리지 않자 이른바 검수원복 시행령을 마련해 검수완박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줄이려 했고, 이로써 무고·위증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다시 가능해졌다.
1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자신이 마련한 검수원복 시행령으로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가능해지는 길을 열었다.
19
2023년 00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정치를 시작하면서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을 했다.
20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당이 어려운 지금 나서야 한다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꼭 맡아 달라는 강한 부탁을 받았다.
21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 업무에 더 집중하고 싶어 비상대책위원장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
22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총선 전망이 어둡다며 지금은 때가 아니고 죽으러 가는 자리라는 만류와 함께, 비대위원장 대신 선대위원장을 맡아 출마해 의원 배지를 달라는 조언을 주변 사람 거의 모두에게서 들었다.
23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고심 끝에 어렵더라도 국민과 국가 발전에 보탤 몫이 있다고 보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받아들였다.
24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비대위원장 수락을 정한 지 며칠 뒤 김기현 대표 체제가 무너진 직후의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총선에 나서지 말라는 직접 요구를 받았고, 그래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으며 총선이 끝나면 내각으로 돌아오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25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아직 법무부장관이던 때 비대위원장 내정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형식 절차만 남은 상황에서, 대통령실 비서관의 갑작스러운 전화로 비대위원장을 포기하고 장관직에서도 물러나라는 요구를 받았다.
26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그 비서관에게 이유를 물었으나 설명을 듣지 못했고, 대통령이 이유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만 했다는 말을 들었다.
27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경위를 알아본 끝에 그날 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한 여당 관계자의, 김건희 여사 특검을 총선 뒤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언급을 대통령이 자신의 말로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 언급은 그가 한 말이 아니었다.
2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그 여당 관계자의 언급을 한 사람이 이른바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인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29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그 비서관에게 그런 상황이라면 장관이든 비대위원장이든 제대로 일하기 어렵다며 곧바로 사표를 내겠다고 답했다.
30
2023년 1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사퇴 요구를 받은 지 몇 시간 뒤 김건희 여사로부터 잘못 알았다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퇴 표명을 없던 일로 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으나, 공적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보고 답하지 않았다.
31
2023년 12월 26일, 5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직을 내려놓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32
2023년 12월 26일, 50세 때, 한동훈은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하며 당을 앞세우자는 '선당후사' 대신 국민을 사익보다 앞에 두자는 '선민후사'를 하자고 말했다.
33
2023년 12월 26일, 50세 때, 한동훈은 비상대책위원장 취임사에서 자신부터 희생해야 다른 이들에게도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34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총선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포함한 정치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35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의 엄정한 관리를 위해 사전투표 용지에 투표관리관이 직접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을 가장 앞장서 폈다.
36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여당 대표로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던 간첩법 적용 확대 개정을 쟁점화해 여론전을 펼쳤고 결국 야당의 동의를 얻어 냈으며, 간첩법 개정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7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여당 대표로서 폭설 피해 현장을 다니며 민주당의 예산 삭감을 앞장서 비판했고 이재명 대표의 범죄 혐의를 가장 강하게 몰아세웠다.
38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김건희 여사 문제, 의료사태, 이종섭·황상무 논란, 드루킹 사건 김경수 전 지사의 사면복권, 정치 브로커 명태균 사건, 특별감찰관 문제 등에서 비공개 요청이 통하지 않자 공개적으로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냈다.
39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위 사안들에 대해서도 여러 방식으로 대통령에게 비공개 해결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40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공개 발언 대신 대통령에게 조용히 요구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 비판은 내용이 틀렸다는 것보다 왜 대통령과의 갈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느냐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41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중요도가 낮은 사안은 대통령에게 비공개로 의견을 전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대로 넘어간 경우가 적지 않았다.
42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당 대표로서 대통령에게 민심을 따라야 한다고 건의했고, 이후 미흡하나마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나왔다.
43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표 취임 뒤에도 대통령과 그 측근들로부터 계속 공격을 받았고, 임기가 많이 남은 현직 대통령의 영향 아래 있던 당내 다수 의원들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44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같은 총선 국면에서 수개표를 관철하자고 목소리를 냈다.
45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직전 총선 이후 사전투표를 없애고 본투표 기간을 늘리자는 주장을 계속 폈다.
4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과 비상대책위원장, 당 대표로 있는 동안 언론과 야당이 부정선거를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도록 이끄는 질문을 던지면, 그들을 공정한 선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라고만 답했다.
47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이 불거졌을 때 친윤 측으로부터 문자를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읽씹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공격을 받았다.
48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김건희 여사 문제 등을 왜 공개적으로 거론하느냐, 대통령과의 관계를 생각해 국민 모르게 비공식적으로 논의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49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일각으로부터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한 것을 두고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공격을 받았다.
50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자신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안들에서 이후 이종섭 대사와 황상무 수석의 사퇴, 의대 증원 2000명 유연화, 여야의정 출범, 명태균 사태 관련 대통령 사과, 부산 금정 재보궐선거 역전승, 특별감찰관 임명 수용 등의 방향 전환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5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문재인 정부 시기 조국 수사를 맡았다.
5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조국 수사를 하자 일각으로부터 자신을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준 민주당 정권을 배신했다는 프레임 공격을 받았다.
5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일부 사람들이 그가 좌파 단체를 후원했다거나 중국과 밀착돼 있다는 근거 없는 말을 메신저로 조직적으로 퍼뜨리며 그를 좌파로 모는 공격을 받았다.
5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으로서 중국처럼 우리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의 국민에게는 그 나라가 보장하는 수준 이상으로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지 않도록 외국인 투표권에 상호주의를 도입했다.
5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으로서 스토킹 범죄를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 조항을 없앴다.
5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국가배상법을 고쳐 군인 등 전사자 유족의 위자료 청구를 인정하도록 하고, 국가배상액 산정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덜 받던 차별을 없앴다.
5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추서된 계급에 맞춰 군 유공자를 예우하는 법의 추진에 힘을 쏟았다.
5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으로서 외국인 영주권 부여 요건을 강화하고, 필요한 외국인은 받아들이되 불법체류는 엄정히 단속하기 위한 이민청 설립을 추진했다.
5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 시절 야당의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며 민주당과 홀로 싸운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많은 이들로부터 1대 180으로 싸워 이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6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초임 검사 시절 피해자 쪽에 서려다 상사와 의견이 엇갈리자, 그렇게 처리하면 이 사람이 지나치게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맞섰다.
6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그 상사로부터 '세상에 억울한 사람 많대이'라는 답을 들었고, 이후 이 말을 억울한 이를 돕되 스스로는 하소연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삼았다.
6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공직에 처음 출근한 날 평생 이룰 출세는 이미 다 이룬 셈으로 치자고 다짐했다.
6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어린 시절 특별히 되고 싶은 것이 없어 장래 희망을 물으면 적당히 둘러대곤 했다.
64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총선 공천에서 명태균 사건의 발단이 된 김영선 전 의원과 김 모 전 검사 등이 경선에도 오르지 못하도록 컷오프를 관철했으며, 당시에는 명태균 씨가 얽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65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총선 공천 과정에서 김무성·김성태 전 의원에게 최대한 예우를 갖춰 스스로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고, 두 사람은 당의 승리를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66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판세가 기운 총선 막판에 개헌저지선이라도 지키려고 이른바 이조심판 전략을 썼다.
67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 선거에 나서면서 채 상병 제3자 특검을 제안했다.
68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탄핵 정국 이전부터 김옥균 프로젝트 같은 이름으로 자신의 지도부를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에 맞닥뜨렸다.
6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앞서 내놓은 방안이 대통령의 입장 변화로 실현되지 못한 뒤, 그 방향대로 갔다면 지금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7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검사와 법무부 장관으로 일하던 시절 여러 사람이 다른 의견을 내면 먼저 자기 판단을 의심했고, 실제로 자신이 틀린 경우가 많았다.
71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과 정부를 통틀어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공격을 감수하며 대통령에게 직언을 이어 갔다.
72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가 된 뒤 초반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몇 차례 직접 연락이 닿았다.
73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정책위의장을 새로 정하던 무렵, 앞으로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하지 말고 비서실장을 거쳐 이야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74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과의 직접 소통이 막힌 뒤에도 민심을 전해야 한다고 판단해 참모진을 통해 대통령 측에 계속 의견을 전달했다.
75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지지율에서 압도적으로 앞서 있던 당 대표 선거 준비 기간, 명태균은 아니지만 여론조사 표본 선정 등을 돕겠다며 찾아온 인물의 제안을 즉시 거절했다.
76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론조사 지원 제안을 거절당한 인물로부터 함께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전해 들었다.
77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로서 명태균 사건을 당 차원에서 조사하고 여론조사로 인한 민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당에 여론조사 개선 TF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78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론조사 개선 TF를 꾸린 뒤 이른바 '김옥균 프로젝트' 등이 더 강하게 거론되며 이번에는 반드시 자신을 찍어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을 감지했다.
79
2024년경 · 51세 무렵,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이 사면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에 공정한 선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80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 임기가 2년 반에서 3년가량 남은 시점에,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정부의 어떤 성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판단해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를 바로잡는 데 나섰다.
8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검사로서 사정 업무를 오래 맡았고 그중에서도 권력 고위층 수사를 많이 했다.
82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사고를 미리 막기 위한 제도적 정리가 필요하다며 특별감찰관 임명을 거듭 요구했다.
83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특별감찰관 임명 요구로 당내에서조차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대통령실의 반대에도 직면했다.
84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특별감찰관 임명과 같은 취지에서 이른바 김 여사 라인의 정리를 요구했다.
8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과 자신이 이미 역사 속의 관계가 됐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8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자신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다는 언론 보도의 대상이 됐다.
8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SF소설과 추리소설 읽기를 즐긴다.
8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를 이유로 일부 인사들로부터 좌파라는 공격을 받았다.
89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 재임 중 AI를 역점 분야로 삼고 AI·반도체·원전 등 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 묶음을 주도했다.
90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진행 중인 재판이 대통령 당선으로 멈추는지를 두고 헌법 제84조 쟁점을 제기했으며, 결론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헌법재판소 사무총장의 답변도 같은 취지였다.
9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시절 수개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92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 시절 중도·수도권·청년을 뜻하는 '중수청'을 축으로 당의 외연 확장에 공을 들이며 청년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93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 시절 인재영입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바꿨다.
94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 시절 수도권비전특위를 새로 만들었다.
95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청년들이 면접관으로 나서 자신을 평가하는 '역면접' 행사를, 동원되기 쉬운 청년이 아니라 학교와 직장을 마친 일상의 청년들이 올 수 있도록 당 대표 공식 행사로는 이례적인 저녁 시간에 열었고, 5점 만점에 4.6점을 받았다.
96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역면접에서 정치 현실의 한계를 이해하면서도 기성 정치의 잘못을 정확히 짚는 청년들의 수준 높고 현실적인 질문을 받았다.
97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일부 청년들로부터 정년연장으로 공공기관·대기업 같은 선호 직장의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데 정치권은 말로만 청년을 배려한다는 분노를 들었다.
98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역면접에서 정년연장을 하되 청년 선호도가 높은 공공기관과 대기업은 시행 시점을 늦추는 대안을 설명했고, 청년들은 이렇게 구체적인 설명은 처음 듣는다며 크게 호응했다.
99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 벌어진 성범죄 무고 사건 당시 참모들의 만류에도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냈다.
10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한 한국형 제시카법을 발의했다.
10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다.
10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여성의 독박가사·독박육아 문제를 풀기 위해 육아휴직 급여를 최저임금 이상으로 올리는 등 제도 개선을 실행해 왔다.
10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정치적으로 손해이고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동덕여대 사태에 대해 연이어 입장을 냈다.
10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민주당으로부터 남녀갈등을 조장해 정치적 소재로 삼는다는 비난과 함께 남혐·여혐 프레임 공격을 받았다.
10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재임 중 서울 동작구 대방동 일대에 범죄피해자통합지원센터를 세워, 법무부·여성가족부·경찰·지자체 등에 흩어진 지원 창구를 부스 형태로 한곳에 모으고 안내 데스크에서 해당 부스로 연결하도록 했다.
106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2024년 당 대표 경선 때부터 '아시아 퍼스트' 전략에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만 해도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107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한국이 강해지려면 미국과의 협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당 대표 경선 토론에서 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108
2024년 0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경선 토론 발언을 본 엘브리지 콜비가 자신의 트위터에 그의 영상을 올리고 미국 외교정책과 양립 가능한 훌륭한 길을 제시했다며 "전 세계의 똑똑하고 현실적인 동맹국. 브라보!"라고 평가하는 반응을 얻었다.
10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한국의 존재감을 높일 기회를 두고 미국 정부 측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논의했다.
110
2024년 01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총선 승리를 위해 고심한 끝에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문제를 두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공개 발언했다.
111
2024년 01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김경률 회계사를 비대위에서 내보내길 바라던 대통령실로부터 왜 그의 발언을 통제하지 못하느냐는 압박을 받았다.
112
2024년 01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이 무렵 김건희 여사가 보낸 문자에, 비대위원장이 영부인과 정치 현안 같은 공적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고 답하지 않았다.
113
2024년 01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공식 임기를 시작했고, 이때 총선까지는 석 달도 남지 않았다.
114
2024년 01월 21일, 50세 때,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을 통해 비상대책위원장직에서 물러나라는 종용을 받았다.
115
2024년 02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여당이 150석 안팎을 얻으리라는 예측이 쏟아지던 무렵 누군가 170석을 입에 올리자 경솔한 발언이라고 경고했다.
116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호주 대사 내정 보도가 나오자 비서실장을 통해 비공개로 강하게 항의하며 대사 발령을 없던 일로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17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이종섭 전 장관의 귀국을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며, 그의 귀국은 한참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118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이종섭 대사 문제에 이어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문제가 터지자 대통령실에 비공개로 황 수석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119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이후 황상무 수석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곡절 끝에 황 수석이 물러났다.
120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황상무 수석 사퇴 뒤 언론 탓을 하는 프레임론을 들고나온 대통령실로부터 사퇴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비판을 받았다.
121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2000명 늘리려 하자 이 문제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충돌했다.
122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수십 년간 한 명도 늘리지 못한 의대 정원을 1000명이나 1500명이 아닌 2000명으로 늘려야 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에게 "도대체 1999명이면 왜 안 되는 건가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123
2024년 03월 00일, 50세 때, 한동훈은 총선이 코앞인데도 대통령이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수하자, 대통령을 말려 달라는 국민의힘 출마자 다수의 간곡한 요청을 받았다.
124
2024년 04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자신이 필요성을 주장해 온 수개표가 총선부터 실제로 시행되는 결과를 얻었다.
125
2024년 04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4월 총선을 치렀다.
126
2024년 04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총선 유세를 위해 어린 시절 놀던 청주 무심천을 다시 찾았고, 산책로가 정비되고 물도 더 맑아진 듯한 달라진 모습을 봤다.
12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해 한 번에 여러 권을 펼쳐 놓고 읽는다.
12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공적 위치에서 이재명 대표와 야당에 맞서는 과정에서 '조선제일검', '1대 180' 같은 별칭과 날카로운 이미지를 얻었다.
12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도서관에서 헤드셋을 낀 모습과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혔다.
13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가도 시민들이 알아보고 사진과 악수를 청하는 일을 겪었다.
13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배우 한석규가 전성기 시절 인터뷰에서 평소 가치관으로 모욕감을 주지 않는 것을 꼽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자신의 생각과 같다며 무릎을 쳤다.
13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정치인이 된 뒤부터 성장과 복지를 주제로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해 왔다.
133
2024년 07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심과 민심 양쪽에서 63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국민의힘 대표가 되었다.
134
2024년 08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폭염으로 국민이 힘들던 여름 저소득층의 전기요금을 월 3만 원가량 깎아 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135
2024년 08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전기요금 할인 대상을 처음 기초수급자 약 120만 명으로 잡았으나, 이들이 이미 6만 원 가까운 바우처를 받고 있어 8만 원 안팎의 요금에 2만 원만 보태면 전액 면제가 되는 만큼 남는 재원으로 차상위계층까지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
136
2024년 08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국에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차상위계층을 골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당국은 끝내 대상을 추려 내지 못했다.
137
2024년 10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재보궐선거 유세 현장에서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부정적 민심을 풀기 위해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을 강하게 요구했다.
138
2024년 10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로 치른 재보궐선거에서 오차범위 접전이던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를 국민의힘 후보의 61퍼센트 득표 압승으로 마무리했고, 다수 언론은 그의 용산 차별화 전략을 역전승의 요인으로 분석했다.
13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실의 한 행정관이 비서관과 수석에게 면박을 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140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다음 날부터 국민의힘 중진 의원 몇 명에게서 대통령의 깊은 뜻이 있을 수 있는데 여당 대표가 곧바로 반대해 일을 그르쳤다며 성급하고 경솔했다는 불만을 들었다.
141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의원 한 명이 언론 인터뷰에서 실명으로 그의 신속한 계엄 반대를 성급했다고 비판하는 공격을 받았다.
14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유인태 전 의원 등 진영이 다른 인사들로부터 여당 대표의 신속하고 단호한 계엄 반대가 사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감사 표시를 받았다.
14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국가 위기의 순간 어느 중진도 못 한 일을 해내 정치생명을 희생해 나라를 구하고 당의 재기 희망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14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계엄 이후 길에서 만난 이념과 정파가 다른 시민들에게서도 안도와 응원의 말을 들었다.
14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민주당 정권 시기에 네 차례 좌천됐다.
14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네 차례 좌천되고 두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구속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다.
14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청담동 술자리' 거짓 주장과 유시민의 계좌 추적 음모론 등 여러 가짜뉴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148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의 밤 며칠 뒤 유튜버 김어준이 국회에서 계엄 당시 한동훈 사살 계획에 관한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대상이 됐다.
149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김어준의 사살 계획 제보 주장에 대해 언론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150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의 밤부터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여러 차례 회담 제안을 받았으나 민감한 국면에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응하지 않았다.
151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 탄핵이나 특검이 통과되면 최고위원직 사퇴로 최고위원회를 무너뜨려 그를 당 대표에서 끌어내리겠다는 한 의원의 경고성 발언의 대상이 됐다.
152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그 경고 열흘 뒤 탄핵안이 가결되자 당 대표직에서 축출됐다.
153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원 개개인에게 당 대표 명의로 범죄 혐의를 피하려 헌정사에 없는 폭거로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을 반드시 막겠다, 자신이 책임지고 앞장서 사태를 수습할 테니 믿고 맡겨 달라, 민심과 당원·지지자의 마음을 함께 살피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154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계엄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155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과 술자리를 함께했던 의원 상당수로부터 대통령이 사석에서 화풀이하듯 계엄을 입에 올렸지만 구체적이지 않아 홧김에 하는 말로 여겼고 진심인 줄 몰랐다는 말을 들었다.
156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의 밤 이후 개별 언론사와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는데, 특정 매체와의 인터뷰가 다른 매체에 부담을 줄 수 있고 민감한 시기라 준비된 발언만 필요할 때 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57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블룸버그, BBC, 마이니치, 아사히 등 외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잇달아 받았으나, 처음에는 국내 언론과 마찬가지로 응하지 않으려 했고 날마다 수습 일정이 빽빽해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158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1차 탄핵 이후에도 상당 기간 탄핵 대신 질서 있는 조기퇴진 방안을 추진했으나 대통령이 약속을 뒤집으면서 이루지 못했다.
159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1차 탄핵안이 부결된 뒤 다음 표결까지 남은 1주일 안에 대안을 내기 위해 당 대표실 동료들에게 탄핵보다 나은 질서 있는 조기퇴진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160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멈출 방법을 탄핵 절차와 조기 자진사퇴 두 가지로 보고 각각의 장단점을 견주어 검토했다.
161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1차 탄핵 부결로 위기를 넘겼다고 여긴 대통령이 말을 바꿀 수 있으니 국정을 넘겨받을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기자들 앞에서 2선 후퇴를 서둘러 기정사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참모들의 제안을 받고 이에 동의했다.
162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사태 내내 해결 과정에서 눈에 띌수록 정치적으로 손해이니 물러나 있으라는 조언을 숱하게 들었지만, 여당 대표로서 계엄의 밤부터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날까지 뛰었다.
16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공적 영역에서는 본질만큼 겉으로 보이는 모습도 중요하다는 말을 평소 자주 했다.
164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총리와의 공동담화에 이어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하려 했으나, 대통령이 조기퇴진 약속을 뒤집어 방안이 무산되면서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165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원총회에서 탄핵이 아니라면 질서 있는 조기퇴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아직 구속 전이던 김용현 장관이 구속되면 범죄 혐의가 드러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 방안이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전제로 한다는 한계도 함께 밝히며 다수 의원의 공감을 얻으려 애썼다.
166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대통령 사퇴 시점을 2026년 지방선거 무렵이나 2025년 연말로 늦추거나 임기단축 개헌 뒤 물러나게 하자는 의견을 낼 때마다 민심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와 실현 방법을 함께 내놓아 달라고 요청했고, 권위를 잃은 대통령이 법적 권한만 쥔 상태가 길어질 때 주식·외환시장과 미국 등 우방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167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내에서 어쨌든 이재명은 막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거듭 나오자 그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불법계엄 사태를 바로잡지 않고 버티기만 해서는 이재명을 막을 수 없고 계엄의 바다를 건너야 막을 수 있다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168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시점을 정한 조기퇴진과 그 전까지의 직무배제가 국민에게 예측 가능성을 주는 반면, 탄핵은 가결 여부와 헌법재판소 결정까지의 불확실성과 진영 갈등이 커서 질서 있는 조기퇴진이 더 낫다고 말했다.
169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사태를 두고 대화하던 중 이양수 의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조기퇴진은 바람일 뿐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의견을 들었다.
170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미국 측 관계자와 면담했고, 그로부터 계엄 당일 여당 대표로서 계엄을 막으려 한 그의 행동이 인상 깊었다는 말을 들었다.
171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미국 측 관계자로부터 조기퇴진안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 도발 같은 유사시 미국이 한국의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지, 군 통수권자가 윤석열 대통령인지 한덕수 국무총리인지 묻는 질문을 받았고, 이는 내정간섭이 아니라 주한미군으로 자국민 수만 명을 보낸 미국에 중요한 문제라는 설명을 들었다.
172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미국 측 관계자로부터 조기퇴진안대로라면 법적 군 통수권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어 대통령이 약속을 어기고 직접 행사하면 그만인데 약속 이행을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지적을 받았다.
173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미국 측 관계자가 계엄 선포 전은 물론 계엄 당일에도 한국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을 크게 문제 삼고, 오물풍선 원점 타격 준비나 무인기 대북 파견 보도가 사실이라면 동맹과 협의하지 않은 데 부정적인 기색을 보이는 것을 접했다.
174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미국 측 관계자에게 한국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될 것이라고 적극 설명하고, 몇 시간 만에 유혈 없이 헌법적 방법으로 그것도 여당이 앞장서 계엄을 해제한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보여준다고 강조했으며, 상대는 이에 공감했다.
175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조기퇴진안이 성공하려면 우방국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보고 당내 외교 전문가 등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176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 측에 어차피 탄핵으로 가기로 했다면 대통령이 먼저 당에 탄핵 심판에서 법적으로 당당히 다투겠으니 탄핵 절차로 가 달라고 요청하는 편이 어떻겠느냐는 뜻을 전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177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의 조기퇴진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2월·3월 퇴진안이 의미를 잃자 주변 의원들에게 대통령의 입장 변화를 설명했고, 의원들은 크게 허탈해하며 지난 토요일 오전의 대국민 약속이 그날 오후 탄핵안 부결을 위해 당과 국민을 속인 것 아니냐고들 했으며, 약속을 전제로 하던 정국안정화 TF도 흐지부지되었다.
178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논의 끝에 대통령의 조기사퇴 거부로 질서 있는 조기퇴진안이 무산되었으니 직무정지를 위해 탄핵 표결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179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최병혁 주사우디 대사가 김용현 장관 측근이라는 공격 끝에 국방부장관직을 고사한 뒤, 대통령이 공석인 국방부장관에 3성 장군 출신인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을 지명하려 하고 절차도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80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한기호 의원에게 직접 전화해 지금 상황에서 국방부장관 지명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당부했고, 한 의원은 결국 장관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181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추경호 원내대표 사퇴로 치러지는 원내대표 선거에 권성동 의원이 출마한 데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시점에서 원내대표로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182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의 밤 이후 계엄 사태 내내 불법계엄을 비판하고 단절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는 취지로 의원들을 거듭 설득했다.
183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일부 중진 의원들로부터 자신과 주변을 향해 탄핵은 무조건 안 되며 너희가 몰라서 그런다, 탄핵되면 모두 죽는다는 식의 말을 들었다.
184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탄핵 가결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던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로부터 면담이나 전화로 탄핵이 가결되면 친윤 그룹이 그를 희생양 삼아 대표직에서 밀어낼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고, 그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 예상했다.
185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그를 아끼던 인사들로부터 탄핵을 최대한 부결시키며 버티다 떠밀리듯 탄핵되게 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것이 그를 위한 길이고, 그렇게 살아남아야 당 개혁도 명태균 같은 브로커가 설치지 못하게 보수정치를 바꾸는 일도 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186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탄핵안 가결이 필요한지 묻는 기자들에게 대통령 직무집행을 탄핵으로 정지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며 가능하면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찬성해야 한다고 분명히 답했다.
187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 몇 명을 따로 만나, 검찰·공수처·경찰 수사로 김용현 국방부장관과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대통령을 뺀 핵심 관련자들이 잇달아 구속되고 있어 대통령도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으며, 당의 반대로 탄핵이 부결된 상태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체포·구속 영장이 나오면 군 통수권을 쥔 대통령 측과 사법당국이 무력 충돌할 수도 있다며 최대한 설득했다.
188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반대파 의원들에게 당론으로 탄핵을 가결해 국민의힘이 계엄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계엄을 막은 당이 되어야지 옹호한 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89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이 결국 구속될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던 중진 의원들로부터 어차피 구속될 텐데 자기 손으로 가결시키면 정무적 부담이 크니 부결시켜 손에 피를 묻히지 말자, 그것이 한 대표의 대선 가도에도 이롭다는 주장을 들었으나, 대통령 구속 가능성을 알면서 정치공학적 이유로 부결시키는 데 동의할 수 없고 정치공학으로 따져도 보수진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190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원총회 등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물병을 던지는 일을 겪었다.
191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해제 의결 뒤 대통령이 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물러날 때까지 군 통수권을 비롯한 직무를 맡아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192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짧은 기간 안에 결론을 내야 하는 가운데서도 최대한 의견을 모은 끝에 질서 있는 조기퇴진 방안을 내놓았다.
193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질서 있는 조기퇴진 방안을 내놓은 뒤 야당과 여당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194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계엄 이후 좌고우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5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탄핵 정국에서 자신의 사퇴를 가장 강하게 요구한 김민전 의원의 공세를 받았다.
19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공수처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해 왔다.
197
2024년 12월 00일, 51세 때, 한동훈은 탄핵 국면에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던 일부 보수 지지자들로부터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19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김어준을 '직업적 음모론자'라고 비판해 왔다.
19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대표로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여성정치 아카데미 개강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200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서울 여성정치 아카데미 개강식 축사에서 준비된 원고 없이 극단적 의미의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러 분야의 양성평등은 강하게 지지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20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축사 일부만 떼어 낸 '나는 페미니스트 아니다' 제목의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렸지만 언론사에 정정을 요청하지 않았다.
202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저녁에 경제·복지정책을 연구하는 교수 몇 명과 식사를 함께하며 새 복지정책과 재원 마련 방안을 두고 평소보다 길게 토론했다.
203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저녁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차 안에서 밤 10시 대통령 긴급 담화가 예정됐다는 속보를 확인했으며 여당 대표인 그도 담화 계획을 미리 알지 못했다.
204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담화 예정 소식 뒤 쏟아진 기자들의 문의에 담화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205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실의 책임 있는 관계자에게 전화가 닿지 않자 문자로 상황을 물었고 '비상사태'라는 짧은 답을 받았다.
206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같은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다시 내용을 묻자 '최악'이라는 답을 받았고, 민주당의 대규모 예산 삭감과 관련된 일인지 되물었으나 더 이상 답을 받지 못했다.
207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시작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지켜봤다.
208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계엄 선포를 듣자마자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담화가 끝나기 전부터 여당 대표 명의의 계엄 반대 메시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20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계엄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치적 손익을 따지며 머뭇거리지 않고 대통령의 선포 속보와 같은 시점에 여당 대표의 반대 소식이 나가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210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언론이 손대지 않고 그대로 쓸 수 있도록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는 짧은 메시지를 국민의힘 당 대표 한동훈 명의로 작성했다.
21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계엄 선포 방송이 끝나기 전 당 대표실 서승해 국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공보실을 거쳐 곧바로 언론에 공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212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야간이라 약 10분이 걸려 밤 10시 46분경 계엄 반대 메시지가 기자들에게 전달됐고, 이는 여야를 통틀어 가장 먼저 나온 비상계엄 반대 메시지였다.
213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위헌적 계엄 선포이며 즉시 국회 차원에서 해제를 요구하겠다, 군과 경찰은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하지 말라는 그의 메시지가 방송 속보로 잇따라 보도됐다.
214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0시 50분경 언론에 공지한 계엄 반대 메시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올렸다.
215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계엄 선포 방송을 보자마자 귀가하던 차를 돌려 여의도로 향했다.
216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의도로 가는 차 안에서 헌법과 계엄법을 꼼꼼히 훑었고, 법률가이자 법무부장관 출신이면서도 계엄법을 이때 처음 읽었으며 헌법 제77조에 따라 국회 재적 과반인 15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217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헌법 제77조 5항에 따른 국회 재적 과반 151명의 해제 요구 결의가 시민이 거리로 나서지 않고 계엄을 멈출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하고 그 절차를 그날 밤이 지나기 전에 실행하기로 했다.
218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1시에 151명 이상을 본회의장에 모을 수 있는지, 계엄군이 의원들의 진입을 막으면 어떻게 할지 등 실행상의 문제를 하나씩 점검했다.
21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의도 국회로 가는 길에 주진우 의원 등 법조인 출신 의원 몇 명에게 국회 해제 요구 결의로 가야 한다는 판단에 대한 의견을 구했고 모두 그 방법이 옳다는 답을 들었다.
220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저지 메시지를 낸 뒤 평소 가깝던 명망 있는 여권 인사에게서 체포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니 국회로 가지 말고 은신처에 숨고 휴대전화를 끄고 가족도 피신시키라는 전화를 받았다.
22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전화로 들은 경고를 뒤로 미루고 숨지 않은 채 계엄 저지에 나서기로 했다.
222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의도에 거의 도착했을 때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국민의힘 당사로 가서 사람을 모은 뒤 국회로 가기로 했다.
223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카메라 기자가 없던 국민의힘 당사에서 채널A 정치부 취재기자 1명에게 휴대전화로 계엄 반대 영상을 찍어 다른 기자들에게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다.
224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1시 5분경 당사 간판을 배경으로 비상계엄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위헌 선포이며 국민과 함께 반드시 막겠으니 안심해 달라는 영상 메시지를 찍었고, 빠진 말을 채우려 한 차례 다시 촬영했다.
225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휴대전화로 찍은 계엄 반대 영상이 기자 단체 대화방을 거쳐 속보로 방송됐다.
226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사로 모여든 의원과 당직자들 가운데 변호사 출신 송영훈 대변인에게 자기 생각을 먼저 말하지 않고 계엄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을 물어 국회 해제 요구 결의뿐이라는 답을 들었다.
227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상황을 당직자들과 공유해 달라는 송영훈 대변인의 요청에 자신도 아는 것이 없으며 이 밤이 지나기 전에 계엄을 막는 일에만 집중하자고 답했다.
228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체포 가능성도 생각해 두라는 송영훈 대변인의 말에 체포는 감수하겠다며 서둘러 국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2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1시 13분경 페이스북에 국회 차원에서 곧바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230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사 3층에서 추경호 원내대표를 만나 당사에 있는 의원들과 바로 국회로 가자고 했으나 추경호로부터 당사로 올 중진 의원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 보자는 답을 들었다.
23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추경호 원내대표에게 당 대표의 결정을 따라 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원내대표 명의로도 계엄 반대 입장을 내 달라고 요구했으나 당 대표가 이미 입장을 냈으니 따로 낼 필요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232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 진입이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당사에 있던 의원들과 일부 당직자와 함께 국회로 출발했으며, 차량 진입이 막혔다는 소식에 모두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233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사를 나서며 의원·당직자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목숨을 걸고 계엄을 막을 테니 국민은 걱정하지 말라고 밝혔다.
234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조경태·서범수·박정하·정성국·박정훈·곽규택·우재준·김상욱 의원 등 의원 10여 명, 김종혁 최고위원 등 원외 위원장들, 송영훈·박상수 대변인 등 당직자들과 함께 당사에서 국회까지 약 15분 거리를 말없이 걸었고, 지나던 시민들도 계엄을 막아 달라며 대열에 합류했다.
235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로 걸어가던 중 정문과 쪽문이 경찰에 막혔다는 말을 듣고 서범수 사무총장의 제안에 따라 국회도서관 쪽 회전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236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도서관 쪽 회전문 앞에서 경찰에게 진입을 저지당했다.
237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일행 맨 앞에서 막아선 경찰의 눈을 보며 자신을 알지 않느냐, 정말 이렇게 하겠느냐고 말했고, 경찰이 물러서자 먼저 회전문을 통과해 일부 일행과 함께 국회 경내로 들어갔다.
238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뒤따르던 당직자 10여 명이 경찰의 재통제로 회전문에서 막혔다가 담장을 넘어 합류하는 일을 겪었다.
23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2024년 12월 3일 23시부터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고 위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고 처단한다는 계엄사령관 박안수 명의의 포고령 제1호를 꼼꼼히 읽고 계엄이 위헌·위법이라는 확신을 굳혔다.
24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의료사태를 여·야·의·정 협의체를 통해 풀고자 노력했다.
24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 본관에 들어설 무렵 CBS 라디오 김현정 앵커로부터 방송으로 국민을 안심시킬 메시지를 낼 수 있느냐는 문자를 받고 목숨 걸고 막겠다고 짧게 답했다.
242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이 다음 날까지 이어질 경우에 대비해 김현정 앵커와 짧은 전화 인터뷰를 미리 녹음했으며, 여당 대표와 상의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243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녹음 인터뷰에서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를 국민의힘이 국민과 함께 반드시 막겠다며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즉시 풀리므로 지금부터 그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244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녹음 인터뷰에서 모인 의원들 모두 국민의힘이 앞장서 헌법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히고, 민주당의 탄핵 시도가 무리하더라도 위헌·위법 계엄의 사유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245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녹음 인터뷰에서 체포 위험을 묻자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감수할 일이라고 답하고, 짧은 시간 안에 반드시 막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국민에게 사과와 함께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246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인터뷰를 마친 뒤 김현정 앵커에게서 포고령에 따라 방송국도 계엄군에 장악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서로 몸조심하라는 인사를 나눴다.
247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 본관에 들어갔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은 계엄 소식을 듣고 모인 언론인·보좌진·당직자들로 붐볐으며 나중에 그곳에 500명 이상이 모였다는 말을 들었다.
248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에 들어간 뒤 처음에는 당 대표실로 향했으나, 예결위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자는 의견과 군이 곧 들이닥친다는 박정훈 의원 등의 재촉 속에 해제 요구 의결이 가능한 본회의장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24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본회의장으로 옮긴 지 몇 분 만에 계엄군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깨고 당 대표실 쪽으로 들어왔고, 같은 시각 계엄군과 경찰로 구성된 '한동훈 체포조'가 그의 체포를 시도하고 있었다.
250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다 국회 직원에게 제지당했으나 정성국 의원 등의 항의와 일부 야당 의원들의 거듦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25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1시 58분경 국민의힘 의원 10여 명과 함께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252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민주당 의원 100명 남짓만 있던 본회의장에 들어섰고, 곽규택·김상욱·김성원·김용태·김재섭·김형동·박수민·박정하·박정훈·서범수·신성범·우재준·장동혁·정성국·정연욱·주진우·조경태·한지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18명이 본회의장에 모였다.
253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본회의장에 들어갔을 때 여야 의원이 약 110명으로 해제 의결에 필요한 151명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에서 여야 의원들이 서로 더 모으자고 주고받는 가운데 한동안 늘지 않는 인원을 어떻게 채울지 고심했다.
254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의원 108명만 들어 있는 국민의힘 텔레그램 단체방에 밤 11시 24분경 주진우 의원을 통해 즉시 계엄을 해제해야 하며 민주당은 담을 넘어서라도 들어가고 있다며 계엄해제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당 대표 명의 메시지를 올렸다.
255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0시 30분 무렵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이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한동훈·이재명·우원식 등 10여 명을 체포해야 한다며 위치 추적과 수사관 지원을 요청한 체포 대상에 올랐다.
256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군의 최우선 체포 대상 3명과 최초 체포 대상 14명에 포함돼 있었으나, 처음 계엄 저지 입장을 낼 때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257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방첩사·경찰·군사경찰 각 5명으로 체포조를 짜 달라는 요청을 거듭 받은 경찰 측이 누구를 체포하느냐고 묻자 이재명과 함께 체포 대상으로 지목됐다.
258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1시 59분 경찰청 윤승영 수사기획조정관이 경찰청장에게 방첩사가 한동훈 체포조 5명의 지원을 요청한다고 보고한 체포 대상이 됐다.
25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대표였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당과 아무런 협의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60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유튜버 김어준 등과 함께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위치 추적을 요청하며 건넨 체포 대상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진술의 대상이 되었다.
26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당일 방첩사가 우원식, 이재명과 함께 체포하려고 체포조를 꾸려 체포를 시도한 대상이었으며, 이 사실은 이후 방첩사 군인 단체대화방, 체포조 관련 군경 인사 진술, 조지호 경찰청장 진술 등 수사 결과로 확인되었다.
262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방첩사 출동조 단체대화방에서 기존 구금 인원 배정을 모두 취소하고 모든 팀이 우원식·이재명·한동훈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부터 체포해 포승줄과 수갑을 써서 수방사 구금시설로 옮기라는 최우선 체포 지시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263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여당 대표로서 그날 밤이 가기 전에 계엄을 끝낸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회 본회의에서 해제안을 의결하는 일과 해제 전후 유혈 충돌 없이 고비를 넘기는 일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264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 불안을 덜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 저지에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알리는 메시지를 잇달아 냈다.
265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 11시 5분쯤 국민의힘 당사에 도착했다.
266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사에 닿자마자 가장 먼저 와 있던 기자에게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가 그대로 담긴 영상 메시지를 찍어 달라고 부탁하며, 단독 기사로 쓰지 말고 출입기자 모두와 나눠 달라고 요청했다.
267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그 기자가 영상을 공유하면서 다른 방송사들을 통해서도 곧바로 자신의 메시지를 내보낼 수 있었다.
268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첫 영상 메시지에서 계엄령에 놀랐을 국민에게 잘못된 일은 여당이 곧 바로잡을 테니 안심하라고 당부했다.
269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두 번째 메시지에서 국회 안팎의 군과 경찰에게 지금 잘못 움직이면 인생이 어긋날 수 있으니 앞장서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라고 호소했다.
270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원이 아니어서 의원 단톡방에 들어 있지 않았기에 다른 의원들을 통해 본회의장으로 모여 달라는 글을 단톡방에 거듭 올렸다.
271
2024년 12월 03일, 51세 때, 한동훈은 해제 표결 직전 뒤늦게 본회의장에 들어선 이재명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다가오자, 인사하지 말라는 주변 의원들의 말에도 그와 악수를 나눴다.
272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미리 녹음해 둔 CBS 라디오 인터뷰가 계엄이 해제된 날 아침에 방송됐다.
273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0시 1분 페이스북에 자신이 본회의장에 있고 군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다며 군경은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하거나 부역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렸고, 젊은 군경에게 지시를 따르지 않을 명분을 주려고 부역하지 말라는 강한 표현을 거듭 썼다.
274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진입했다는 소식 속에 의원들에게 본회의장으로 와 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원내대표와 원내수석 등에게도 직접 연락해 어떻게든 오라고 했으며, 본회의장에 있던 의원들에게도 다른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275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해제 장면에서 국민의힘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나라와 보수와 당이 산다며 의원들을 전화로 설득했다.
276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원내대표의 당사 집결 공지를 보고 본회의장을 떠날지 고민하던 의원들에게 해제 표결에서 역할을 못 하면 당과 보수정치가 무너진다며 자신을 믿고 남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277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경찰과 시민들에 막혀 국회에 들어오기 어렵다는 의원들의 말을 당직자에게서 전해 듣고 야당 의원들은 들어오고 있으니 계엄을 막으러 간다고 말하면 시민들이 길을 열어 줄 것이라며 어떻게든 들어오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278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이 본회의장에 오려고 국회 담을 넘으려 한다는 보고를 받고 다칠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담장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전화로 말렸다.
279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0시 6분경 우재준 의원을 통해 당 대표 지시이니 본회의장으로 와 달라는 메시지를 의원 단체방에 올렸다.
280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0시 7분경 박정하 당 대표 비서실장을 통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본회의장으로 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같은 시각 우재준 의원을 통해 각자 최대한 방법을 찾아서라도 와 달라는 메시지를 단체방에 올렸다.
281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원내대표가 당사로 모이라고 공지하고 조정훈 의원 등이 이에 호응하는 메시지를 올리자 0시 9분경 박정하 비서실장을 통해 다시 본회의장으로 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282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사 집결 공지와의 혼선을 막으려 우재준 의원에게 당 대표 지시라는 표현을 써 달라고 했고, 0시 10분경 당 대표 한동훈 명의로 본회의장으로 모두 모이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283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서범수 사무총장에게 원내대표실에 있는 의원들만이라도 본회의장으로 오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서범수는 여러 차례 언성을 높이며 통화했다.
284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본회의장 집결 지시가 원내대표 측의 당사 집결 메시지와 여러 차례 충돌하면서 본회의장에 올 뜻이 있던 의원들 일부가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을 겪었다.
285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휴대폰으로 뉴스 생방송을 보다가 계엄군 특수부대원들이 렌즈 4개짜리 고가 야간 투시경을 쓴 것을 확인했고, 계엄군이 표결을 막으려 국회 전기를 끊을 수 있다고 판단해 더 다급해졌다.
286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함께 있던 의원들에게 전기를 끊을 것 같으니 시간이 없다고 말했고, 설마 그러겠느냐는 반응에 오늘 밤 설마는 없다며 최대한 많이 모여 버티고 전기가 끊기면 손으로라도 표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287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본회의장 뒤편에 모인 국민의힘 의원들과 계엄 해제를 논의하며 야당 측과 서로의 인원을 합쳐 151명을 넘길 수 있는지 확인했고, 원내대표실에 모인 의원들에게 본회의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을 계속 보냈다.
288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0시 30분경부터 본회의장 의원 수가 151명을 넘어 국민의힘 18명을 포함해 최종 190명에 이르는 것을 지켜봤다.
289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군과 대치하던 당직자와 보좌관들 사이에서 계엄군에게 '한동훈 체포조'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상황에 놓였다.
290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불체포특권이 없으니 정족수가 찼으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 몸을 피하라는 몇몇 의원의 권유를 받았으나, 투표권도 불체포특권도 없는 당 대표로서 야당 172명과 국민의힘 18명이 있는 본회의장에 남았다.
291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이 계엄법에도 따로 명시돼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292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본회의장에 들어온 지 한참 지난 0시 55분경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도착해 다가오자 악수 장면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 피하라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조언을 들었으나, 일부러 인사를 피하는 것은 졸렬해 보인다며 이재명과 짧은 격려를 주고받고 악수했다.
293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정족수가 찼는데도 계엄 통고 부재와 안건 준비, 표결 시스템 오류로 표결이 늦어지자 국민의힘 3선 김성원 의원을 통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신속한 진행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
294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군인들이 들어온다며 빨리 표결하자는 외침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성원 의원에게 수기로라도 투표하자고 의장에게 다시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295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0시 49분 본회의가 열린 뒤 원내대표 방침과 민주당과의 공동 표결을 두고 고민하던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지금 나가거나 표결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고 설득했고, 국민의힘 18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296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1시 1분 본회의장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는 현장에 있었다.
297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새벽 1시 8분 페이스북에 국회 결의로 계엄이 실질적 효력을 잃었으니 군과 경찰 등 모든 국가기관은 위법·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며 지시를 거부해 생기는 법적 책임에서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298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해제 요구안 통과 직후 본회의장 문을 막았던 집기를 잠시 치운 사이 국민의힘 의원 18명과 로텐더홀로 나가 계엄군을 막던 기자들과 짧은 문답을 나눈 뒤 다시 본회의장으로 돌아갔다.
299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해제 요구 결의가 통과된 직후 국무회의를 거치기 전까지 계엄이 유효하다는 1955년 대법원 판례를 담은 지라시와 관련 기사가 돌자 본회의장의 법조인 출신 의원들과 대통령 측이 국무회의를 미루며 계엄을 유지하거나 2차 계엄에 나설 가능성을 논의했다.
300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흩어지지 말고 본회의장에 함께 있자고 제안했고, 당 대표까지 당사로 모이자는 원내대표 등의 의견에 계엄군 진입과 2차 계엄 가능성을 들어 본회의장에 남아야 한다고 맞섰다.
301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본회의장에 남은 의원들과 휴게 공간 소파 주변에 모여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송석준 의원 등도 그곳에 합류했다.
302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무회의가 서둘러 열리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전화해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에 다른 목소리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요청했고 꼭 그러겠다는 답을 들었다.
303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새벽 1시 53분경 페이스북에 대통령에게 국민과 국회의 뜻을 존중해 곧바로 헌법에 따라 계엄 해제를 선포해 달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글을 올렸다.
304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해제 요구 결의 후 약 3시간 반이 지난 새벽 4시 27분경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해제 입장을 발표하는 것을 지켜봤다.
305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계엄 해제 발표 뒤 함께 국민 앞에 서자고 제안해 조경태·박정훈·곽규택·안상훈·정성국·유용원·신성범·정연욱·우재준·김상욱·주진우·한지아·장동혁·서범수·김형동 의원과 김종혁 최고위원 등과 본회의장 밖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
306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브리핑에서 위헌·위법한 계엄 상황에 대해 여당으로서 사과하고 김용현 국방부장관의 즉각 해임 등 관계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307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모든 상황이 끝난 새벽 5시 17분에야 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집에 전화했다.
308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아침 7시 국민의힘 긴급최고위원회를 소집했고, 회의가 열릴 때까지 한 시간 반 동안 사태 수습 방안을 고민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30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계엄을 막으려 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라는 프레임 공격을 계속 받았다.
310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을 새운 탓에 비상최고위원회의를 오전 9시나 10시로 미루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국민이 아침에 여당의 수습 노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며 오전 7시 개최를 고수했다.
311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최고위원회의에 앞서 남아 있던 의원·당직자들의 의견을 듣고, 구체적 내용 없이 계엄을 평론하는 식의 메시지는 안 된다는 다수 의견에 뜻을 같이했다.
312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박정하 비서실장과 서범수 사무총장 등에게 계엄이 위법하며 대통령이 직무를 계속해서는 안 되고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장관 등 관련자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되 그 과정에서 나라의 질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 입장을 12월 14일 국회 탄핵안 가결 때까지 유지했다.
313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입장에는 대부분 동의하되 속도와 방식에 이견이 있자 이를 추후 논의로 미루고 한 시간 뒤 최고위원회의에서 낼 당 대표 메시지에 먼저 집중하자고 제안했으며, 메시지는 짧아야 한다는 서범수 사무총장에게 이런 때를 겪어 봤느냐고 되물어 함께 허탈하게 웃었다.
314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첫 메시지에 내각 총사퇴, 비상계엄 책임자 규명, 국방부장관 즉각 해임 요구를 담기로 정했고, '비상계엄 책임자' 대신 '대통령'을 명시하자고 했으나 반대가 많아 다수 의견을 따랐다.
315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친윤계의 반발 가능성에도 국민의힘을 계엄과 분리하려면 대통령 탈당을 요구해야 한다고 보고 짧은 논의 끝에 탈당 요구를 결정했으며, 대통령이 받아들이겠느냐는 질문에 그러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답했다.
316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일부 최고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아침 7시 열린 비상최고위원회의 첫 발언에서 12월 3일의 반헌법적 계엄은 지울 수 없는 역사가 됐다며 집권당 대표로서 국민에게 사과했다.
317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최고위원회의 발언에서 국무위원 전원 총사퇴, 계엄 추진·실행 책임자 엄중 문책, 국방장관 즉각 해임을 요구하고 5시간 비상계엄으로 나라가 멈출 뻔했다며 대통령의 탈당을 정중히 요구했으며, 민생·경제·외교 혼란 수습에 당력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318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유혈사태 없이 금방 정리됐으니 조용히 넘기자며 대통령 탈당 요구에 반발하는 중진 의원과 최고위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자며 44년 만의 계엄이라고 답했다.
319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비상최고위원회의 몇 시간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그의 계엄 비판과 책임자 추궁에 대한 공개 반발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당 대표·원내대표·중진들이 대통령을 만나 계엄 이유를 직접 듣자는 의견을 접했다.
320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후 2시 총리공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경제부총리, 박성재 법무부장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김주현 민정수석,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호영 국회부의장, 김기현·권성동·권영세·윤재옥·나경원 의원, 추경호 원내대표 등과 회의를 했다.
321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총리공관회의에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정진석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에게 계엄을 정말 몰랐는지 물어 모두 몰랐다는 답을 들었고, 참석자 전원에게 대통령이 누구와 계엄을 준비했는지 물었으나 모른다는 답만 들었다.
322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무회의에서 왜 말리지 못했느냐는 물음에 정족수 11명이 영문도 모른 채 모였고 반대가 많았지만 대통령이 결정했다며 자리를 떴다는 답을, 몸으로라도 막았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통령이 순식간에 발표해 겨를이 없었다는 답을 들었다.
323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총리공관회의에서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물러나되 아침에 그가 요구한 대로 사임이 아닌 해임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의원들도 있었으나, 그가 요구한 대통령 탈당과 내각 총사퇴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으며 대통령을 서둘러 만나기로 하고 그날 오후 만나겠다는 대통령의 연락을 받았다.
324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후 5시 총리공관회의에 모였던 정치권 인사들과 함께 대통령을 면담했고, 대통령으로부터 2년 반 동안 이어진 민주당의 탄핵 남발 등 상황 전체를 전시·사변에 준하는 상황으로 보고 계엄을 했다는 말을 길게 들었으나 부정선거 의혹은 언급되지 않았다.
325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 면담에서 중진 의원 몇 명이 민주당 폭거를 중심으로 계엄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자고 제안하자 대통령이 다음 날 담화를 하겠다고 답하는 자리에 있었으나, 이튿날 중진들이 부작용을 이유로 입장을 바꿔 담화는 열리지 않았다.
326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한 중진 의원이 김용현 국방부장관 해임을 건의하자 대통령이 지시를 따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해임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대통령이 자신과 군인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327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에게 계엄을 언제부터 누구와 준비했는지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고, 민주당의 국정 발목잡기로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말과 누구도 묻지 않은 국회 해산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328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에게 정치인 체포조 보도가 사실인지, 민주당 때문이라면 왜 여당 대표를 체포하려 했는지 물었고, 체포를 시도한 적이 없으며 그랬다면 방첩사를 동원했을 텐데 동원하지 않았다는 답과 체포했다면 포고령 위반 혐의였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329
2024년 12월 04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 면담에서 계엄 종료 뒤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당선인 측 내정자에게 계엄을 자유민주주의 수호 조치로 설명했고 미국도 공감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계엄이 알려지지 않은 북한 도발 같은 안보 상황 때문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330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동원해 탄핵보다 나은 길을 찾으려 했으나 그와 뜻을 같이한다고 알려진 의원들조차 다수가 1차 탄핵안은 부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331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예상되는 극심한 혼란과 탄핵 트라우마가 큰 지지자들을 고려해 탄핵보다 나은 길을 최선을 다해 찾되 실패하면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332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1차 탄핵 표결을 이틀 앞둔 목요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혼란을 줄이려 질서 있는 조기퇴진 방안을 추진한다는 전제 아래 대통령 책임 추궁, 계엄 관계자 즉각 직무 배제,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다.
333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공개 발언에서 당 대표로서 7일 표결 예정인 1차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도록 힘쓰겠다고 밝히며, 대비 없는 혼란으로 국민과 지지자가 입을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334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같은 최고위 발언에서 자신의 입장이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을 감싸려는 것이 아니며 계엄 선포 직후부터 국민의 분노에 누구보다 먼저 동참했다고 말했다.
335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최고위원회에서 이번 사태에 직접 가담한 군 관계자들을 당장 직무에서 배제하고, 위헌·위법 계엄에 가담하면 즉시 처벌받는다는 점을 보여 군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336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최고위원회 발언 끝머리에서 당 대표나 최고위원회와 상의하지 않고 의원총회가 공개 박수나 거수로 당론을 정해 대표와 최고위에 따르게 하는 방식은 불합리하다며, 당론을 정하기 전에 대표에게 미리 알리고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337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최고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민심을, 보수 정치인으로서 지지자들의 마음을 함께 헤아리겠다고 말했다.
338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1차 탄핵안 부결 노력 발언 이후 여론과 야당으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고, 반대로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339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비공개로 요구했어야 한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았다.
340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군 핵심 관여자 배제 등을 전날을 포함해 대통령에게 비공개로 먼저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비공개·공개 요구에도 대통령은 그날까지 계엄에 관여한 핵심 군인들을 직무에서 빼지 않았다.
341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외신의 계엄 보도를 분석한 당 대표실 당직자들로부터, 외신 보도에 오류와 비약이 많고 특수부대가 국회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장면 위주라 유혈 쿠데타나 경제·사회 혼란처럼 비칠 수 있으니 외국 언론과 인터뷰하는 편이 좋겠다는 건의를 받았다.
342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자신들은 계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계엄 저지에 맨 먼저 나선 당 대표가 외신에 설명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343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주한미군이 주둔한 최우방 미국의 언론과 먼저 인터뷰하기로 정했다.
344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저녁 무렵 CNN과 인터뷰했으며, 시작에 앞서 CNN 측에 한국은 계엄을 겪었지만 몇 시간 만에 바로잡아 안정을 되찾았으니 안심하고 투자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아직 어느 언론과도 하지 않은 계엄 관련 단독 인터뷰에 응한다고 설명했다.
345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인터뷰에서 외신이 피상적으로 물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미국인 기자가 12월 3일 밤 그가 국민의힘 의원들과 국회로 가 경찰의 저지를 뚫고 들어간 일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질문하며 그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346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기자로부터 다른 나라 사례에 비춰 볼 때 여당이 앞장서 계엄을 막은 점이 가장 놀라웠다는 말을 들었다.
347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의 2차 계엄 가능성에 대한 상세한 질문에 그런 우려를 알고 있지만 2차 계엄만큼은 반드시 막겠다고 답했다.
348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인터뷰에서 계엄 당일과 수습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 여당이 짧은 시간 안에 헌법 절차에 따라 유혈 없이 계엄을 막아냈고 신속한 해제는 연대로 위기를 민주적으로 풀어 온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과 저력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349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인터뷰에서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알지만 한국은 문제를 즉각 해결했다며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 투자하고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다.
350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인터뷰 도중 틈틈이 담당 미국인 기자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기자로부터 선진국인 한국에서 계엄령이 나왔다는 첫 소식에 크게 놀랐다는 말을 들었다.
351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기자에게 영어로 "We stopped the martial law in just a few hours"라고 말하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불가능했을 만큼 몇 시간 만에 계엄을 막아낸 사실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352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기자로부터 개인적으로도 그 일을 대단하게 보며, 여당 대표가 의원들과 국회로 가 계엄을 막은 점이 흥미로워 인터뷰를 청했다는 말을 들었다.
353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보도에서 집권당 대표로서 사태를 바로잡을 책임을 느껴 당사에서 의원 10명가량을 모아 군이 국회를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국회로 향했고, 경찰관들의 저지를 뚫고 들어가 동료들과 함께 계엄 해제 결의에 만장일치로 참여한 인물로 소개되었다.
354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늦은 밤 신뢰할 만한 당 관계자로부터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이 계엄과 관련해 대통령에게서 받은 불법 지시를 정치권과 언론에 공개적으로 폭로할 예정이라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35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홍장원 국정원 1차장과 일면식이 없었고 그 뒤로도 연락한 적이 없어, 12월 3일 밤 홍장원이 그에게 체포 계획을 알려 줬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356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관계자를 통해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의 제보 내용을 상세히 전해 들었는데, 계엄 당일 대통령이 선포 전 밤에 전화하겠다고 한 뒤 선포 직후 국정원이 방첩사령부를 지원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체포 대상 명단을 건네며 위치 추적을 요청하고 체포 후 군 수감시설에 가둘 계획이라고 말했으나 홍 차장은 이를 따르지 않았으며, 여인형이 경질되지 않은 상황을 보며 2차 계엄을 걱정한다는 내용이었다.
357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체포한 정치인 등을 군 수감시설에 가두려 했다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구체적 계획을 홍장원 차장 측 제보로 처음 알게 되었다.
358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제보 내용을 놓고 깊이 고민하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낙관적인 성격이라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친 일이 평생 거의 없던 그에게 드문 일이었다.
359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늦은 밤 홍장원 차장 관련 제보를 주요 당직자들과 상의했고, 당직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360
2024년 12월 05일, 51세 때, 한동훈은 예정에 없던 긴급최고위원회를 이튿날 아침에 열기로 하고 소집했다.
361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CNN 기사 South Korea's ruling party leader calls for suspension of president's powers in dramatic reversal에 인터뷰가 실렸고, 기사는 Maturity of South Korea's democracy라는 중간제목 아래 그의 발언을 전했으며 미 동부시간 오전 8시 23분에 갱신되었다.
362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긴급최고위원회 시작에 앞서 최고위원 등 참석자들에게 제보 내용과 그 신빙성, 심각성을 설명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한 참석자는 없었다.
363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긴급최고위원회 대표 발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당일 주요 정치인들을 반국가세력으로 지목해 고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체포를 지시하고 정치인 체포에 정보기관까지 동원한 사실, 체포한 정치인들을 과천의 수감장소에 가두려 한 구체적 계획을 신뢰할 만한 근거로 파악했으며 앞으로 여러 경로로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364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긴급최고위원회에서 전날에는 혼란 방지를 위해 탄핵안 부결에 힘쓰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불법에 가담한 군 인사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하지 않고 계엄이 잘못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을 고려하면 2차 계엄 위험을 막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조속히 정지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꿔 밝혔다.
365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긴급최고위원회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한 최고위원이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면 왜 안 되느냐고 따지자, 불법계엄을 실행한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계속 쥐는 것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2차 계엄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366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긴급최고위에서 2차 계엄을 막으려면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발언했고, 언론은 이를 근거로 7일 탄핵안이 가결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367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긴급최고위원회 직후 대통령실로부터 그날 독대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368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정오 무렵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했는데, 처음 동석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청했으며, 그동안 여러 번 독대를 청했던 그가 비상대책위원장과 당 대표가 된 뒤 대통령과 단둘이 마주 앉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369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독대에서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의 체포 관련 제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체포 시도는 아예 없었고 홍 차장의 말은 거짓이며 그가 민주당과 연관되고 좌파와 가까워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370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독대에서 대통령이 체포 시도를 부인하자 더 따지지 않고, 2차 계엄 우려를 풀려면 인사조치가 필요하다며 직무배제를 미루는 탓에 2차 계엄 준비설이 퍼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계엄 관여 군인들의 즉각 직무배제를 요청했다.
371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군 인사는 순서에 따라 정상적으로 해야 하고 김용현 장관 후임을 이미 지명했으니 후임이 청문회를 거쳐 임명된 뒤 군 인사를 검토하겠다며 여인형 등 핵심 관여 군인의 즉각 직무배제는 불가하다는 답을 들었다.
372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독대를 마치고 나오면서 대통령실 관계자에게도 방첩사령관 등 계엄 핵심 관여 군인들을 직무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강하게 전달했다.
373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독대를 마치고 돌아온 지 1시간쯤 뒤 여인형 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의 직무배제 발표를 접했는데, 발표 직전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요청대로 직무배제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 안도했으며, 이 세 사람은 며칠 뒤 모두 내란죄로 구속되었다.
374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용산 독대 후 국회로 돌아와 장시간 이어지던 국민의힘 의원총회와 함께 다음 날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대통령이 탄핵을 대신할 조기퇴진 절차에 동의할지 확인하기 위해 당 차원의 요청사항을 정하는 작업에 나섰다.
375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추경호 원내대표가 쓴 요청안 초안의 핵심을 보완해, 대통령이 임기를 포함한 거취를 당에 맡기고 계엄 수사에 적극 협조하며 조기퇴진 전까지 국정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국무총리에게 국정을 넘긴다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376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추경호 원내대표 초안에 없던 임기라는 단어와 협의 대신 일임이라는 표현을 넣어 조기퇴진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하고 2차 계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담아야 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지켰고, 결국 임기와 일임 표현을 넣은 안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377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저녁 무렵 대통령에게 요구사항을 직접 전하러 가는 추경호 원내대표, 박정하 당 대표 비서실장, 주진우 의원에게 임기 일임 문구는 타협할 수 없다는 다짐을 받아 두었다.
378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용산에 다녀온 의원들로부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처음에는 A4 용지 6장짜리 문건을 내밀었으나 결국 당이 준비한 안으로 보고되었고, 대통령이 한 번 훑어본 뒤 곧바로 좋다며 임기·일임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당에 일임한다를 우리 당에 일임한다로만 고쳤다는 말을 들었다.
379
2024년 12월 06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을 만나고 온 박정하 비서실장으로부터 대통령이 임기 일임, 국정배제, 수사협조 요청을 지나치게 쉽게 받아들였다며 다음 날 탄핵 가결을 막으려 마음에 없는 말을 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들었고, 며칠 뒤 대통령은 공개 약속한 조기퇴진·국정배제·수사협조를 지키지 않았다.
380
2024년 12월 07일, 51세 때, 한동훈은 전날 당이 요청한 내용이 윤석열 대통령의 오전 2분 분량 대국민 담화에 그대로 담기는 결과를 얻었는데, 대통령은 이 담화에서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의 당 일임, 국정운영에서의 퇴진과 당정 공동 책임, 수사 협조, 2차 계엄 불가 약속, 계엄에 대한 사과와 법적·정치적 책임 인정을 밝혔다.
381
2024년 12월 07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후 1차 탄핵안 표결에서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고, 원내 지도부가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 의원 전원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만 참석해 탄핵안은 부결되었으며 이후 거센 비판이 일었다.
382
2024년 12월 07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무총리 공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대통령이 담화에서 한 약속들을 어떻게 이행할지, 곧 질서 있는 조기퇴진 방안을 논의했다.
383
2024년 12월 07일, 51세 때, 한동훈은 이날 아침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로 조기퇴진을 공개적으로 약속하자 그 약속을 믿고, 그날 오후 표결에 부쳐져 부결된 1차 탄핵안에 반대했다.
384
2024년 12월 08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겠다는 약속과 달리 국무회의를 소집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인 일요일 오전 11시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공동담화를 열고, 탄핵은 부결됐지만 대통령은 사실상 국정에서 배제됐고 총리가 국정을 책임지므로 2차 계엄 같은 극단적 행동을 걱정할 필요 없이 국정이 안정적으로 관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385
2024년 12월 08일, 51세 때, 한동훈은 전날 총리 공관에서 회동한 만큼 공동담화 장소를 처음에는 국회로 잡았으나, 계엄을 막지 못한 총리의 국회 출입이 저지될 수 있다는 말이 돌자 당사자들 의견에 따라 당사로 옮겼다.
386
2024년 12월 08일, 51세 때, 한동훈은 한덕수 총리와의 공동담화를 두고 민주당과 당내 친윤 그룹으로부터 당 대표가 총리보다 먼저 발언한 순서와 당사라는 장소를 문제 삼은 공격을 받았고, 권력 장악 시도, 대통령 놀이, 네가 대통령이냐는 식의 비난에 집요하게 시달렸다.
387
2024년 12월 08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이 손을 떼고 총리가 국정을 맡는 구상 자체가 불법이며 제2의 내란이라는 민주당의 공격을 받았으나,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시기 민주당이 대통령의 국정 이탈과 총리의 국정 전담을 강하게 요구했던 사실이 보도되면서 그 공격은 흐지부지되었다.
388
2024년 12월 09일, 51세 때, 한동훈은 질서 있는 조기퇴진의 구체안을 만들고 의원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국민의힘 정국안정화 TF를 꾸렸고, 자신이 직접 설득하기보다 TF의 객관적 검토를 거친 안으로 TF가 설득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보아, 평소 그와 같은 정치적 입장을 낸 일이 드물던 3선 이양수 의원에게 위원장을 맡겼으며 TF에는 정희용, 서지영, 김소희, 안상훈, 박수민 의원 등이 계파에 치우치지 않게 참여했다.
389
2024년 12월 09일, 51세 때, 한동훈은 이양수 TF 위원장에게 질서 있는 조기퇴진안이 국민 눈에 탄핵보다 합리적으로 보이려면 탄핵에 걸리는 기간과 비슷하거나 더 짧아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고, 이 위원장은 이를 참고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390
2024년 12월 10일, 51세 때, 한동훈은 아침에 이양수 의원으로부터 정국안정화 TF의 질서 있는 조기퇴진안, 곧 1안 2월 퇴진·4월 대선과 2안 3월 퇴진·5월 대선을 보고받았고, 임기단축 개헌을 통한 퇴진은 지금 상황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도 함께 들었다.
391
2024년 12월 10일, 51세 때, 한동훈은 이양수 의원이 의원총회 연단에서 TF안을 발표한 뒤 여러 의원이 이재명 재판 확정 전에 대선을 치르게 된다며 1년 이상 늦추자고 주장하자, 옆자리의 박정하 비서실장과 서범수 사무총장에게 늦추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바람이 아니라 어떻게 늦출지를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392
2024년 12월 10일, 51세 때, 한동훈은 저녁에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대통령이 자진사퇴할 뜻이 없어 보이며 물러나지 않고 탄핵 절차에서 끝까지 다투려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12월 7일 대국민 공개 약속을 뒤집는 것이었다.
393
2024년 12월 10일, 51세 때, 한동훈은 직간접으로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대통령의 진의를 물었고, 마지막 기회를 갖고 싶고 자진사퇴할 생각은 없으며 결국 탄핵으로 가더라도 당이 더는 막을 수 없을 때까지 몇 번이고 탄핵을 부결시켜 달라는 뜻이라는 답을 들었다.
394
2024년 12월 10일, 51세 때, 한동훈은 저녁부터 이튿날인 11일까지 당 대표실 등에서 계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의원들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의견을 나눴다.
395
2024년 12월 10일, 51세 때, 한동훈은 같은 기간 상임고문 등 당 원로들과도 대화하며 의견을 구했다.
396
2024년 12월 11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대통령이 다시 계엄을 선포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2차 탄핵 표결이 잡힌 토요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탄핵으로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다.
397
2024년 12월 11일, 51세 때, 한동훈은 직무정지는 필요하지만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니 당 대표가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가결만 되게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398
2024년 12월 11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이 곧 체포·구속되면 사실상 직무가 멈출 테니 당이 탄핵의 정치적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는 전망과, 욕을 먹더라도 끝까지 버티며 강성 지지층을 지키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전달받았다.
399
2024년 12월 11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초 이날 입장을 밝힐 계획이었으나 의견을 더 충분히 듣기 위해 발표를 미루고 하루 종일 의견을 들었다.
400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전 9시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하던 중 그동안 출근하지 않던 대통령이 관저에서 대통령실로 출근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날 아침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에 대통령이 조기퇴진할 뜻이 없다는 보도가 실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401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당 대표실로 돌아와 입장 발표를 준비한 뒤, 오전 9시 반 대국민 입장 발표에서 집권 여당 대표로서 당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한 데 대해 깊이 사죄하고, 계엄 이후 국정 혼란을 최소화할 길을 찾는 과정에서 탄핵 찬반을 고민하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답답함을 드린 점을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402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입장 발표에서 국방장관이 내란죄로 구속되었고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에 대통령이 주도적 공범으로 적시되었으며, 그제 국회에 나온 군 장성들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물리력으로 막으라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 등 여러 불법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는 점을 짚었다.
403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입장 발표에서 당이 계엄 직후 반대 입장을 내고 군경의 국회 진입이 시작되자 지시 불복종을 호소했으며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에 앞장섰고, 이후 국민과 원로, 여러 정치인의 의견을 들어 탄핵보다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질서 있는 조기퇴진을 모색했으나, 그 전제인 대통령의 거취 일임과 달리 대통령이 조기퇴진에 응할 뜻이 없음을 최근 확인했고 이는 임기 문제를 당에 맡기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밝혔다.
404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입장 발표에서 대통령을 군 통수권 등 국정에서 즉시 배제해야 하고 조기퇴진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즉각적인 직무정지가 필요하며 유효한 방법은 탄핵 절차뿐이라고 밝히고, 국민의힘 의원 모두가 다음 탄핵 표결 때 본회의장에 나가 각자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405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입장 발표 직후 당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의 제명 또는 출당을 위한 긴급 윤리위원회 소집을 지시했고,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그날 밤 열렸다.
406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입장 발표 직후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곧 12월 7일의 2분짜리 담화와 달리 야당의 폭거와 부정선거 의혹 확인을 계엄 이유로 내세우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 담화를 보고, 신속한 직무정지가 더 절실하며 법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탄핵뿐이라고 결론지었다.
407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당 대표 자격으로 발언하며 오늘 오전 국민께 윤석열 대통령 직무정지를 위한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고 그 이유는 대통령이 조기퇴진 등 거취를 당에 맡길 뜻이 전혀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방금 나온 대통령 담화는 그런 담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미리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408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원총회에서 대통령 담화가 상황을 반성하기보다 합리화하며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라고 평가하고, 민주주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담화가 나온 만큼 당이 대통령 직무를 조속하고 합법적으로 정지시키는 데 나서야 한다며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하자고 제안했는데, 내란 자백이라는 대목은 미리 준비한 표현이 아니었다.
409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원총회 발언 도중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몇몇 의원들이 자리에서 반말로 고성을 지르며 특히 사실상 내란 자백이라는 대목을 두고 격앙된 비난을 퍼붓는 항의를 받았다.
410
2024년 12월 12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 제명·출당을 위한 윤리위원회 소집을 두고 중진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으며, 반대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막으려면 당이 쪼개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411
2024년 12월 13일, 51세 때, 한동훈은 밤에 새로 선출된 권성동 원내대표를 외부에서 만났고, 탄핵을 한 번 더 부결시키자는 권 원내대표에게 가결이 필요하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일 줄 알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으며, 권 원내대표는 그의 뜻이 확고함을 알고 더 설득하지 않았다.
412
2024년 12월 13일, 51세 때, 한동훈은 같은 자리에서 1차 표결 때처럼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데 모여 본회의장에 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모든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당당하게 표결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권성동 원내대표도 이에 동의했다.
413
2024년 12월 13일, 51세 때, 한동훈은 탄핵에 찬성하려는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겠다는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강압만 아니라면 자유민주주의 정당에서 그런 설득은 허용될 수 있다고 답하면서 소속 의원 전원의 표결 참여를 거듭 강조했다.
414
2024년 12월 13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랫동안 그에게 조언해 온 국정·정치 경험이 많은 한 인사로부터 표결 전에 꼭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를 받았고, 통화에서 대통령은 어차피 탄핵될 테니 내일 나서지 말라, 계엄을 막고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대표직에서 쫓겨나면 당이 극단주의자들의 놀이터가 되어 보수와 나라가 어려워진다는 호소를 들었다.
415
2024년 12월 13일, 51세 때, 한동훈은 그 인사에게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비롯한 국가권력으로 자기방어에 나서 공권력끼리 충돌하는 내전 같은 상황이 올 수 있고, 대통령이 조기 사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한 이상 막을 길은 가결뿐이니 자신이 겪을 어려움은 감당하겠다고 답했다.
416
2024년 12월 13일, 51세 때, 한동훈은 뉴욕타임스 기사 Opposition Grows to South Korea's President as He Faces Impeachment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 대표로서 탄핵을 지지한 인물로 소개되었고, 기사에는 그가 금요일 국회 사무실을 나서는 사진이 실렸다.
417
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2차 탄핵 표결이 있는 토요일 아침 국회로 출근하다 본관 정문 앞에서 탄핵 가결을 촉구하며 1인 피켓시위를 하던 김상욱 의원을 보고, 추운 날씨에 두르고 있던 붉은색 머플러를 풀어 말없이 걸어 주었는데, 당 대표 취임 100일에 지지자들이 선물한 그 머플러를 김 의원은 나중에 사연을 알고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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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에 들어서며 표결을 앞둔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뜻은 이미 분명히 밝혔고 오늘은 모두가 대한민국과 국민만 생각해야 하며 자신도 그러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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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 사무실로 찾아온 뜻을 같이해 온 의원들로부터 탄핵이 가결되면 장동혁 최고위원 등이 사퇴해 최고위원회를 무너뜨릴 테니 대비하라는 말을 들었고, 여러 경로로 장 의원에게 사퇴하더라도 가결 당일이 아니라 며칠 여유를 두어 달라고 요청해 동의를 받았다거나 장 의원 본인이 사퇴설은 낭설이며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전언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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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표실을 찾은 의원과 당직자들에게 오늘은 대한민국과 국민만 생각하자며, 대통령이 조기 사퇴 약속을 어긴 이상 탄핵은 피할 수 없고 부결되면 혼란이 커지니 오늘 가결되어야 하며 오히려 부결되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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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후 표결을 앞두고 만나자고 한 중진 의원들로부터 그가 앞장서 찬성할 듯한 의원들을 설득해 주면 가결을 막을 수 있다는 요구를 받았으나, 이미 탄핵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만큼 입장을 바꿀 이유가 없다며 거절하고 드러나지 않게 부결을 위해 뛰어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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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의원 108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하기로 한 가운데 열린 2차 탄핵 표결을 국회 당 대표실에서 혼자 TV로 지켜보며 창밖으로 국회 주변에 모인 찬반 시민들의 함성을 들었고, 탄핵안은 재적 300명 중 찬성 204명, 반대 85명, 기권 3명, 무효 8명으로 가결 요건 200명을 4표 넘겨 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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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탄핵안 가결 뒤 열린 의원총회 분위기가 몹시 험악하니 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의원들의 연락과, 얼마 뒤 의원들이 당 대표를 의총장으로 데려오라며 난리라는 문자를 잇달아 받았고, 박정하 비서실장으로부터 지금 가면 크게 봉변과 모욕을 당할 테니 가지 말라는 만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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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박정하 비서실장이 자신을 대신해 의원들에게 거센 추궁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의총장에 가기로 했고, 가는 동안 가급적 조용히 의원들의 말을 듣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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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총장 연단에 서자마자 거센 야유와 고성을 받았고, 탄핵은 전부 그의 책임이니 사퇴하라, 탄핵 사유인 비상계엄도 그가 대통령에게 맞춰 주지 못해 벌어진 일이니 책임지라는 요구를 들었으며, 여러 의원은 나중에 그렇게 적대적인 의총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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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총에서 연단으로 달려들 듯 뛰쳐나오는 의원, 돌아이라거나 저런 사람을 법무부장관에 앉힌 윤석열이 제 눈을 찌른 것이라는 노골적인 욕설과 비하, 바닥에 물병을 던지는 행동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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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총에서 A 의원으로부터 그를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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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총에서 B 의원으로부터 대표직 수행은 불가능하고 부적절하니 그만둬야 하며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탄핵이 누구 때문이냐는 고함을 들었고, 대통령 뜻대로 하지 않아 탄핵에 이르렀다는 취지에 몇몇 의원이 웅성이며 맞장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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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말을 아끼다가 낮은 목소리로 비상계엄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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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왜 탄핵 반대 당론을 어겼느냐는 C 의원의 추궁에, 최고위원회가 아닌 의총에서 정식 투표도 없이 거수로 당론을 정해 강요하는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여겨 왔고 의총에서 투표권이 없는 원외 당원이 훨씬 많다는 뜻에서 자신이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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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평소 대통령 국정운영에 비판적이던 D 의원이 크게 흥분해 연단 앞까지 나와 물리적 충돌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로 당 대표가 책임지라고 외치고 친윤계 의원 몇 명이 일어나 욕설에 가까운 고성으로 거드는 상황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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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원들도 혼란스러우리라 보고 감정적으로 맞서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은 채 탄핵이 필요했던 이유만 차분히 다시 설명했으나, 그만하고 내려오라는 고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자 결국 연단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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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이 의총장을 떠난 뒤 이른바 친윤계 의원들은 당 대표 사퇴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몰아 그 자리에서 당 대표 사퇴 촉구 결의를 하자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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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총장을 나와 기다리던 기자들이 대표직을 이어갈지 묻자 대표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며 국민과 함께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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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의총장을 나서던 중 한 젊은 기자로부터 탄핵 가결로 대표직에서 밀려나게 됐는데 탄핵 찬성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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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그가 의총장을 나온 직후 한 최고위원이 즉시 사퇴하겠다는 신상발언을 한 데 이어 진종오 최고위원, 그리고 예상대로 김재원·김민전·인요한 최고위원까지 사퇴하면서, 지난 7월 당원과 국민 63퍼센트의 지지로 대표가 된 뒤 꾸린 최고위원회가 무너져 대표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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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그 의원총회에서 비상계엄 자체는 비판하지 않으면서 계엄을 막으려 한 일을 잘못으로 몰아가는 일부 참석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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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지도부 붕괴 당시 사퇴했던 진종오 의원으로부터 그 뒤 여러 차례 미안하다는 뜻을 전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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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51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의 직무를 하루라도 빨리 멈춰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뜻으로 2차 탄핵안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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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5일, 51세 때, 한동훈은 '한동훈, 비상계엄 내가 했나, 투표 내가 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날 의총 발언이 앞뒤 맥락이 잘린 채 보도되어 그가 의원들을 자극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것처럼 비쳤으나, 이후 현장을 상세히 다룬 보도로 발언의 취지와 맥락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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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5일, 51세 때, 한동훈은 일요일인 이날 그동안 함께해 온 사람들로부터 최고위원회가 무너져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하지만 비대위원장 임명권이 당 대표에게 있으니 임명을 거부하며 끝까지 버티자는 의견과, 최고위가 무너진 이상 버텨도 비대위 출범 전까지일 뿐 되돌릴 수 없다는 의견을 함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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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5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443
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최고위원회가 무너져 더는 당 대표로서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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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사퇴 입장문에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을 겪은 모든 국민께 사과하고, 2024년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벌어진 데 대한 국민의 분노와 실망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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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사퇴 입장문에서 탄핵으로 마음 아픈 지지자들에게 사과하며 탄핵이 아닌 더 나은 길을 찾으려 애썼지만 이루지 못했고 모두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446
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사퇴 입장문에서 12월 3일 밤 당 대표와 의원들이 국민과 함께 맨 먼저 나서 자당 출신 대통령의 불법계엄을 막아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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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하며 국민과 자신을 비판해 온 국민, 당원 동지, 당직자들에게 차례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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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사퇴 발표에서 탄핵에 찬성한 결정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며,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과 주권자 국민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그 이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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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자나 극단적 유튜버에게 동조하거나 그들이 돈벌이로 퍼뜨리는 공포에 휩쓸리면 보수에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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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민의힘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국회를 떠났으며, 그의 대표 체제는 146일 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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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국회를 나서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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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회를 떠날 때 배웅하러 나온 많은 동료 시민들에게 추운 날 와 줘서 고맙고 자신은 괜찮으며 나라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의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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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몰려든 인파로 차가 나아가지 못하자 다시 차에서 내려, 걱정하지 말고 자신을 지키려 애쓰지 말라며 자신이 여러분을 지키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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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51세 때, 한동훈은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두 달 넘게 일체의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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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9일, 51세 때, 한동훈은 내란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측으로부터 계엄의 밤 본회의장에 들어간 일을 두고 주거 침입과 계엄 포고령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발표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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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경 · 52세 무렵, 한동훈은 진종오 의원과 직접 만나 국민만 바라보고 다시 함께 가자는 데 뜻을 모았고, 진 의원은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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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한동훈은 대표직 사퇴 뒤 함께하고 싶다며 새로 찾아온 여러 의원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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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0월 00일, 52세 때, 한동훈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참석하면 미국 주요 정치인들을 만날 계획이었으나 국내 정치 상황이 어지러워 참석을 고사했고, 초청한 쪽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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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0월 00일, 52세 때, 한동훈은 흩어진 현금·서비스 복지 혜택을 지급 주체는 그대로 둔 채 하나의 앱과 계좌로 모아 총량 안에서 유연하게 돌려쓸 수 있게 하는 '한평생복지계좌' 구상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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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0월 00일, 52세 때, 한동훈은 교육정책을 두고 여러 전문가들과 논의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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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0월 00일, 52세 때, 한동훈은 윤석만과 며칠 동안 가까이 지내며 긴 문답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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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0월 00일, 52세 때, 한동훈은 윤석만과 지내던 기간 주말 아침마다 문을 연 커피숍에 직접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조각케이크를 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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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0월 00일, 52세 때, 한동훈은 윤석만과 맛집을 찾아 함께 택시를 탔고, 식사하며 제로콜라를 곁들여 음악과 영화,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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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11일, 51세 때, 한동훈은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유튜브 채널에서, 총선 공천 당시 용산과 친윤 측이 김민전 교수를 빼고 다른 여성 방송인을 넣으려 하자 비대위원장이던 자신이 김 교수의 전문성을 내세워 이철규 의원과 다퉜다고 공개하면서 그 뒷이야기의 당사자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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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28일, 51세 때, 한동훈은 『국민이 먼저입니다』를 메디치미디어에서 출간했다.

한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