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 죽음의 순간

1905~2003.04.03·5화

장국영 : 죽음의 순간1

장국영 : 죽음의 순간2

장국영 : 죽음의 순간3

장국영 : 죽음의 순간4

장국영 : 죽음의 순간5

장국영 : 영원한 시대의 아이콘 장국영을 추억하며

2026.03.18~2026.04.08·1화

장국영 : 영원한 시대의 아이콘 장국영을 추억하며

장국영 : 영결식에서

1900~1985·5화

장국영 : 영결식에서1

장국영 : 영결식에서2

장국영 : 영결식에서3

장국영 : 영결식에서4

장국영 : 영결식에서5

2025년 04월 01일 화요일

장국영 : 영결식에서4

동성애자 장국영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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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은 종종 집 앞에서 연인 당당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곤 했다. 그는 외출할 때를 제외하면 그리 자주 밖으로 나오지 않는 편이었으나 이웃들에겐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웃 주민들을 취재했다는 홍콩 라디오 방송국의 왕경생 PD에 따르면 이웃 사람들은 장국영을 대단히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차가 더럽혀진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했다. 그의 집이 위치한 홍콩의 부촌 까또리산은 소문대로 단정한 동네였다. 차량 통행도 그리 많지 않았고 장국영의 죽음 이후 몰려든 취재진만 아니었다면 이웃집 기침 소리조차 모두 들릴 만큼 조용한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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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의 유장인 <이도공간>의 나지량 감독이 장국영에 대해 기억하는 것 또한 그가 살고 있던 동네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장국영은 말수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조용하지만 열정을 지니고 있었고 대단히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는 일을 할 땐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했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영화밖에 없었다.” 나지량 감독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친절함은 신인 배우들을 대할 때 잘 들어났다. 그는 신인 배우를 대단히 잘 보살폈다. <색정남녀>를 찍을 때 막 영화에 입문한 서기와 <이도공간>에서의 신인 배우 임가흔까지 그들을 배우로 만든 것이 장국영이었다. 근느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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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성애자였다. 사실 그의 죽음 이후 홍콩 언론들이 그에 대해 ‘제대로’ 전한 것이라고는 ‘그가 게이들의 우상이었다’는 것 정도다. 실제로 장국영은 지난 수년 동안 동성 연인 당당(당학덕)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품위 있는 사생활을 유지해 주변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홍콩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동방일보’의 기자는 “그는 말하자면 홍콩의 동성애 문화를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린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적인 취향을 숨기지 않았다. 그건 과거에 여배우들과 염문설이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당당과의 불화설을 다룰 때도, 사실 그가 게이였다는 것은 더 이상 얘깃거리가 안 됐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당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많은 팬들이 그런 그를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고 말한다. 20대 한 여성 팬은 “그는 게이라기보다는 홍콩 사회에서 남자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장국영 : 영결식에서3

장국영 : 영결식에서5

장국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