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 죽음의 순간
1905~2003.04.03·5화장국영 : 죽음의 순간1
장국영 : 죽음의 순간2
장국영 : 죽음의 순간3
장국영 : 죽음의 순간4
장국영 : 죽음의 순간5
장국영 : 영원한 시대의 아이콘 장국영을 추억하며
2026.03.18~2026.04.08·1화장국영 : 영원한 시대의 아이콘 장국영을 추억하며
장국영 : 영결식에서
1900~1985·5화장국영 : 영결식에서1
장국영 : 영결식에서2
장국영 : 영결식에서3
장국영 : 영결식에서4
장국영 : 영결식에서5
2025년 04월 01일 화요일
장국영 : 영결식에서3
장국영, 홍콩을 사랑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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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이 떠난 4일 후인 지난 5월 5일 저녁 8시, 장국영이 투신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서 팬들의 조촐한 추도식이 열렸다. 저마다 하나씩 양초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둘 장국영의 사진과 꽃이 수북이 쌓인 만다린 호텔의 한켠에 서서 세 번씩 절을 하고 꽃을 바쳤다.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은 없었다. 한 홍콩인은 충혈된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괴질이 걱정됐지만 추모식이 열린다기에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그를 보며 자랐다. 마음이 아프다.” 다른 홍콩인은 “난 그의 팬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를 이대로 떠나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의 죽음이 괴질 같은 것에 묻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자리가 항상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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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모인 사람 중 많은 이들은 20~30대였다. 구룡에서 왔다는 30대 사내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국영은 군자(君子)였다. 그는 부유하면서도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 각박해진 요즘의 홍콩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힘들 일이다. 예전의 홍콩은 가방을 어떤 자리에 둔 채,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밤길이 무서워 산책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이 그립다.” 홍콩 영화계에서는 더 이상 스타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홍콩 사회가 문화적으로 이미 자기 기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홍콩인은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장국영의 죽음이 마음 아픈 건 그가 홍콩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홍콩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사스가 무엇인가. 중국 대륙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외지인이 홍콩에 부려놓은 병이다. 이제 홍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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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작은 오디오를 든 사내가 장국영의 노래를 틀어주기 시작했다. 약속된 행사였다. 그들은 역시 장국영의 히트곡인 ‘당년정’과 ‘야반가성’ ‘홍안백발’ 같은 노래들을 따라 불렀다. 자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멀리까지 전해지진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년정’을 조용히 따라 불렀다.
장국영 : 영결식에서2
장국영 : 영결식에서4

장국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