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우창록 : 2026년 10월 12일 업데이트

1
1953년 00월 00일, 0세 때, 우창록은 경상북도 경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2
1961년 00월 00일, 8세 때, 우창록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영화 '검사와 여선생' 이야기를 접하고 검사가 되기를 꿈꿨다.
3
1964년 00월 00일, 11세 때, 우창록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서울에서 부임한 교사로부터 성적이 좋으면 학비 부담 없이 진학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초등학교만 마치려던 계획을 접고 상급 학교 진학을 택했다.
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우창록은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장학금을 받으며 경주 문화중학교와 문화고등학교를 다녔다.
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우창록은 경주 문화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에 합격해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6
1974년 00월 00일, 21세 때, 우창록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7
1974년 00월 00일, 21세 때, 우창록은 제1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는 대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우창록은 사법시험 합격 이후 대학원에서 조세법을 공부했다.
9
1976년 00월 00일, 23세 때, 우창록은 사법연수원을 제6기로 수료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0
1976년 00월 00일, 23세 때, 우창록은 사법연수원 동기 58명 가운데 변호사로 진로를 정한 4명 중 한 사람이었다.
11
1976년 00월 00일, 23세 때, 우창록은 해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1979년까지 군 복무를 했다.
12
1979년 00월 00일, 26세 때, 우창록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변호사로 들어가 조세 소송을 맡기 시작했다.
13
1980년 00월 00일, 27세 때, 우창록은 한국비교법학회지에 한국 회사 청산·파산법을 개관한 영문 논문을 실었다.
14
1982년 00월 00일, 29세 때, 우창록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세법 체계 정비·개선 연구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15
1983년 00월 00일, 30세 때, 우창록은 미국 워싱턴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법학석사(LL.M.) 학위를 받았다.
1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우창록은 미국 유학 기간에 골프를 처음 배웠다.
1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우창록은 워싱턴대학교 법학대학원이 주는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받았다.
18
1984년 00월 00일, 31세 때, 우창록은 미국 UC 버클리 로스쿨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냈다.
19
1984년 00월 00일, 31세 때, 우창록은 미국 법률회사 쿠데르 브러더스의 뉴욕사무소에서 일했다.
20
1984년 00월 00일, 31세 때, 우창록은 한국인을 위한 조세피난처 활용 방안을 다룬 영문 논문을 한국비교법학회지에 발표했다.
21
1990년 00월 00일, 37세 때, 우창록은 조세연구원 자문위원을 맡아 2003년까지 활동했다.
22
1992년 00월 00일, 39세 때, 우창록은 중요 사건을 두고 회사와 견해가 갈리자 김앤장을 떠나 서울 반포동 법원 인근에 '우창록 법률사무소'를 열고 독립했다.
23
1992년 00월 00일, 39세 때, 우창록은 현대그룹 계열사의 1000억 원대 법인세 사건에서 국세청을 상대로 전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내며 조세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24
1994년 00월 00일, 41세 때, 우창록은 율촌합동법률사무소를 세워 대표변호사가 됐고, 사무소 이름은 사법연수원 시절 스승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지어 주었다.
25
1995년 00월 00일, 42세 때, 우창록은 뉴질랜드의 한 로펌을 둘러본 경험에서 훗날 사무실 카페를 여는 착상을 얻었다.
26
1997년 00월 00일, 44세 때, 우창록은 외환위기 직전 윤세리·강희철·정영철·한봉희·한만수 변호사 등과 함께 법무법인 율촌을 창립하고 대표변호사를 맡았다.
27
1997년 00월 00일, 44세 때, 우창록은 율촌을 세우면서 자신의 돈과 에너지, 시간의 20% 이상을 사회공헌에 쓰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28
1997년 00월 00일, 44세 때, 우창록은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가 되어 2018년까지 재임했다.
29
1999년 00월 00일, 46세 때, 우창록은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2011년까지 활동했다.
30
2000년 00월 00일, 47세 때, 우창록은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31
2001년 00월 00일, 48세 때, 우창록은 서울대학교 학술지 '법학'의 편집위원을 맡아 2004년까지 일했다.
32
2003년 00월 00일, 50세 때, 우창록은 제37회 납세자의 날을 맞아 올해의 세정 협력자로 뽑혀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33
2006년 00월 00일, 53세 때, 우창록은 한국세법학회 회장에 올라 2009년까지 학회를 이끌었다.
34
2006년 00월 00일, 53세 때, 우창록은 아시아법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2011년까지 재임했다.
35
2007년 00월 00일, 54세 때, 우창록은 서울대학교 교수평의원회 의원으로 2011년까지 활동했다.
36
2007년 08월 00일, 54세 때, 우창록은 율촌의 베트남 호찌민시 사무소 개설을 이끌었다.
37
2007년 10월 09일, 54세 때, 우창록은 율촌이 해외투자·방송통신·환경규제·문화산업 분야를 중점적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38
2007년 10월 26일, 54세 때, 우창록은 율촌이 장기적으로 중앙아시아·러시아·동유럽에도 사무소를 낼 계획이라고 밝히고, 설립자에게 권한이 쏠린 로펌은 설립자 퇴진 뒤 흔들릴 수 있다며 파트너 회의의 토론으로 결정하는 운영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설명했다.
39
2007년 10월 26일, 54세 때, 우창록은 모교 고교 장학회 이사로서 해마다 장학금과 행사 비용을 기부하고 있었다.
40
2008년 00월 00일, 55세 때, 우창록은 재단법인 서울법대장학재단 이사가 됐다.
41
2010년 00월 00일, 57세 때, 우창록은 대한민국교육봉사단(씨드스쿨) 이사장에 취임했다.
42
2010년 00월 00일, 57세 때, 우창록은 재단법인 농협재단 이사를 맡아 2016년까지 재임했다.
43
2010년 00월 00일, 57세 때, 우창록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수여하는 백로상을 받았다.
44
2011년 00월 00일, 58세 때, 우창록은 대한중재인협회 회장을 맡아 2012년까지 협회를 이끌었다.
45
2011년 07월 21일, 58세 때, 우창록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추천한 변호사 5명에 포함됐다.
46
2012년 00월 00일, 59세 때, 우창록은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 이사장에 취임했다.
47
2012년 00월 00일, 59세 때, 우창록은 율촌의 회장(Chairman) 직함을 맡았다.
48
2012년 00월 00일, 59세 때, 우창록은 월간중앙이 시상한 대한민국 CEO 리더십 대상을 받았다.
49
2013년 00월 00일, 60세 때, 우창록은 대한중재인협회 명예회장이 됐고,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고려학원 감사를 맡아 2015년까지 활동했다.
5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우창록은 모교 장학 사업인 문화장학회에 1억 원을 내놓고 학교법인과 문화장학재단 이사를 맡았으며, 학생과 경주 시민을 위한 서울솔로이츠앙상블 초청 음악회를 해마다 후원했다.
51
2015년 00월 00일, 62세 때, 우창록은 한국골프산업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52
2015년 03월 00일, 62세 때, 우창록은 서울 대치동 율촌 사무실 안에 86석 규모의 카페 '까페 여율'을 열었다.
53
2016년 05월 02일, 63세 때, 우창록은 수임 변호사에게 큰 몫을 주는 지분 제도 없이 기여도에 따라 성과를 나누고 칸막이 없이 협업하는 율촌의 운영 방식을 소개했다.
54
2018년 09월 00일, 65세 때, 우창록은 정관상 정년인 65세에 맞춰 경영권을 윤용섭·강석훈·윤희웅 변호사의 3인 공동대표 체제로 넘겼다.
55
2019년 01월 23일, 66세 때, 우창록은 은퇴 뒤에도 현역 변호사로 계속 일하며 연명치료 분쟁이나 공익재단 출연 같은 고령층 법률 서비스를 개척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56
2019년 01월 31일, 66세 때, 우창록은 율촌 대표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됐다.
57
2020년 00월 00일, 67세 때, 우창록은 사단법인 온율 이사장을 맡아 2021년까지 재임했다.
58
2020년 00월 00일, 67세 때, 우창록은 경주시문화상 특별상을 받았다.
59
2020년 02월 21일, 67세 때, 우창록은 노후 준비와 재산 정리, 자녀 간 분쟁 예방처럼 은퇴 세대를 법률가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인생 2막 과제로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60
2020년 05월 28일, 67세 때, 우창록은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법대 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임기 2년의 제38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61
2021년 03월 26일, 68세 때, 우창록은 서울 강서구 기아대책 사옥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손봉호 전 이사장의 뒤를 이어 희망친구 기아대책 이사장에 취임했다.
62
2021년 04월 13일, 68세 때, 우창록은 서울중앙교회 장로로 시무하고 있었다.
63
2024년 00월 00일, 71세 때, 우창록은 Asia Business Law Journal이 선정한 한국 100대 변호사 ICON에 이름을 올렸다.
64
2024년 07월 05일, 71세 때, 우창록은 검사 탄핵 추진에 대해 탄핵 사유를 찾기 어렵다며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65
2024년 07월 05일, 71세 때, 우창록은 이재명 대표의 재판 진행을 다음 대선을 겨냥한 재판 지연 전략으로 해석했다.
66
2024년 07월 05일, 71세 때, 우창록은 채상병 사건의 출발점이 군사법원법상 군이 수사할 수 없는 사안을 수사단장이 수사한 데 있다고 보고, 공수처가 외압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67
2024년 07월 05일, 71세 때, 우창록은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의 성공 요인으로 역사와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유치 전략을 꼽았다.

우창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