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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05.08~2019.01.16·1화존 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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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BOOK : Stay The Course
0~2023·1화존 보글 : Stay The Course by 존 보글
존 보글 :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투자의 성인 존 보글
2019.01.17~2026.04.04·1화존 보글 :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투자의 성인 존 보글
LIFE MOMENT
0~2023·1화존 보글 : 배신의 순간
2025년 03월 21일 금요일
존 보글 : 배신의 순간
44세 때인 1973년 웰링턴 자산운용에서 공동창업자들한테 배신당하고 내쫓긴 존 보글은 처음엔 존 보글의 미친 짓이라고 조롱 당했던 인덱스 펀드로 재기에 도전했고 시장 전체에 투자하면서도 수수료는 투자금의 0.02%인 장기 투자 펀드로 시장을 끝내 이기면서 전략은 구조를 따른다는 자신의 평생 명제를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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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16일, 89세 때, 존 보글은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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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이자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로, 개인 투자자 모두를 위한 금융 발명품인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 월가의 성인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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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31일, 46세 때, 존 보글은 세계 최초의 인덱스 펀드인 뱅가드 펀드를 처음 만들었을 때 월스트리트의 무시를 받았고 보글의 바보짓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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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당시에는 채권조차도 너무 점잖은 투자법이라고 분류되던 시절이었다.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들은 주식에 몰렸고 오로지 신사만 채권을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패시브 펀드는 환영 받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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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지난 30년 동안 액티브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9.7%였고 S&P500을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가 존재했다면 수익률은 11.3%였을 것이라며, 앞으로 30년 뒤에도 패시브 펀드와 액티브 펀드는 똑같은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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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뱅가드를 창업하기 전 웰링턴 자산운용의 젊은 CEO였으나, 믿었던 동업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손실을 그의 탓으로 돌리면서 사내정치에 휘말려 불명예 퇴진했고, 이때 울화가 치밀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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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반격의 수단으로 인덱스 펀드를 구상했고, 단기투자보다 장기투자를 하라는 뜻의 “도넛보단 베이글을 먹어라”, 시장이 격랑에 휩싸여도 항로를 유지하라는 뜻의 “스테이 더 코스” 같은 투자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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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전략은 구조를 따른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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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주식투자와 채권투자를 혼용하는 혼합형 펀드가 대표 상품이던 웰링턴 자산운용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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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35세에 웰링턴 자산운용의 CEO가 된 뒤 고고 시대에 걸맞게 주식 투자 비중을 늘렸고, 이를 위해 공격적인 주식 투자를 주무기로 하는 4인 공동창업자의 신생 자산운용사와 합병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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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4인 공동창업자들이 웰링턴 자산운용 CEO라는 이유로 손실 책임을 자신에게 덮어씌우면서 쫓겨났고, 바뀐 구조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 무기로 인덱스 펀드를 찾아 반격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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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대리인의 문제와 수수료의 문제라는 2가지 약점을 노렸고, 웰링턴 자산운용 CEO에서는 쫓겨났지만 여전히 웰링턴 펀드의 주주이자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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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웰링턴 자산운용과 웰링턴 펀드를 분리하고 웰링턴 펀드가 스스로 자산을 운용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펀드를 대리인에게서 진정한 주주에게 돌려주고 주주들에게 낮은 운용수수료로 더 높은 수익을 제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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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자체적인 운용력을 가진 새로운 펀드의 이름을 영국 넬슨 제독이 나일강 전투에서 탔던 기함의 이름이자 선봉장이라는 뜻의 뱅가드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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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31일, 46세 때, 존 보글은 언론으로부터 “둘 다 역병에 걸렸냐”는 조롱을 받는 가운데 명분을 정당화할 전략을 찾아 1년 동안의 절치부심 끝에 퍼스트 인덱스 인베스트먼트 트러스트라는 인덱스 펀드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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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회전비용과 판매수수료가 거의 없는 인덱스 펀드의 거래비용이 투자금의 0.2%에 불과하도록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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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뱅가드에 S&P500을 추종하면서도 시가 총액 비중으로 종목을 담는 전략을 적용해, 거래수수료는 다소 올라갈 수 있었지만 시장 수익률을 더 정확하게 추종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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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인덱스 펀드 출시를 가로막는 온갖 규제 장벽을 극복했고, 수만 개 이상의 펀드 계좌별로 서로 다르게 운용 수수료를 계산하는 복잡한 산식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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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운용이 필요 없고 투자자가 주주인 뱅가드 펀드로 월스트리트의 대리인 문제를 지적해온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극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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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프린스턴 대학교 스승인 폴 새뮤얼슨에게 대리인 문제를 앞장서 해결한 선봉장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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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로 접어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피터 린치는 1990년을 끝으로 펀드 매니저에서 은퇴했다. 마젤란 펀드는 선장을 잃고 대서양을 헤매기 시작했다. 반면 존 보글이 이끄는 뱅가드 펀드는 창설되고 30년이 지나면서 마침내 대기만성 펀드라는 걸 입증하기 시작헀다. 1988년 자산규모가 10억 달러 이상으로 업계 41위가 됐다. 수익률은 연평균 10% 안팎으로 꾸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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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준 인덱스 펀드의 총자산 규모는 2조4000억 달러다. 전체 주식형 펀드의 25% 이상이다. 인덱스 펀드 시장의 40% 이상을 뱅가드 펀드가 점유하고 있다. 규모가 커지면서 연평균 수익률은 다소 줄었지만 꾸준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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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인덱스 펀드를 통해 투자를 엘리트 스포츠에서 국민 스포츠로 변화시켜 누구나 시장에 투자해 장기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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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자신을 웰링턴 자산운용에서 쫓아냈던 4인방과도 화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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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존 보글은 먼저 손을 내밀었고, 32세에 선천성 심장병을 진단받았지만 심장 이식을 받고도 평생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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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별세하기 6개월 전에 12번째이자 마지막 저서를 남겼다. 제목은 스테이 더 코스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로를 사수라고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보글 함대의 인덱스 함대는 지금도 항로를 사수하고 있다.

존 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