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과 아저씨들의 맞다이

2021~2025.01.02·1화

민희진과 아저씨들의 맞다이

LIFE CHOICE : 맞다이의 댓가

2000.05~2024.08.27·16화

민희진1 : 샤이닝 f(민희진) 시대

민희진2 : 40대의 상장 준비와 번아웃

민희진3 : 40세 K팝 천재에게 주어진 3가지 선택지

민희진4 : 뉴진스 엄마와 뉴진스 오너 사이

민희진5 : 민희진의 브랜드와 방시혁의 시스템

민희진6 : 회사 대 회사와 개인 대 회사의 차이

민희진7 : 로우 코스트와 하이 리스크 그리고 뉴진스

민희진8 : 멀티레이블의 맹점은 방리더쉽의 한계

민희진9 : 화성에서 온 방과 금성에서 온 민

민희진10 : 완벽주의자들의 완벽한 감정 싸움

민희진11 : N팀이 뉴진스라고 불리게 된 그날

민희진12 : 비즈니스맨으론 패착 프로듀서로선 행운 사업적으론?

민희진13 : 그래선 안 됐던 선택

민희진14 : 뉴진스를 향한 마음은

민희진15

민희진16

뉴진스 : 엔제이지로서 연예 음악 광고 활동 금지

2024.01~2025.03.21·1화

뉴진스 : 엔제이지로서 연예 음악 광고 활동 금지

민희진 : 낫 오케이 뉴진스

2025.10.16~2025.12.29·1화

민희진 : 낫 오케이 뉴진스

민희진 : 어도어와의 431억 손해배상 소송과 갈등 심화

2026.03.05~2026.04.06·1화

민희진 : 어도어와의 431억 손해배상 소송과 갈등 심화

민희진 : 어도어와의 431억 손배소와 법적 갈등

2026.03.15~2026.04.06·1화

민희진 : 어도어와의 431억 손배소와 법적 갈등

민희진 : 하이브와의 극한 갈등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

2026.03.15~2026.03.28·1화

민희진 : 하이브와의 극한 갈등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

2025년 03월 21일 금요일

민희진5 : 민희진의 브랜드와 방시혁의 시스템

2019년에도 민희진 대표의 브랜드 가치는 방시혁 의장도 득달 같이 연락할 만큼 이미 대단했지만 브랜드와 시스템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민희진 대표는 이수만 회장이 만든 시스템에서 방시혁 의장이 만든 시스템으로 갈아타면서 뉴진스라는 꽃을 피워낼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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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창업의 길과 동업의 길 중 동업을 선택한 건 민희진 대표 스스로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덕분에 민희진 대표는 성공으로 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방시혁 의장이 겪었던 10년의 시행착오를 우회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민희진 대표는 방시혁 의장과의 동업을 통해 하면서 방시혁 의장이 14년 동안 구축한 빅히트의 아이돌 제작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연습생을 선발하고 곡과 춤을 뽑아내고 비쥬얼로 포장하고 홍보하고 유통시키는 모든 것은 시스템이고 곧 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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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의장이 BTS를 만들 때 확보한 투자금은 30억 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글램으로 대부분 날리고 겨우 10억 원을 더 받아서 BTS를 성공시켰죠. 지금이야 BTS가 글로벌 넘버1이이지만 2013년 데뷔 당시만 해도 이른바 중소돌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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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민희진 대표는 2002년 케이팝 업계에 발을 디딘 뒤로 한 번도 중소돌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당대 1등 대기업들만 거쳐왔죠. 중소 기획사의 설움은 잘 알지도 구태여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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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민희진 대표가 2019년에 창업을 했다면 그때서야 알게 됐을지도 모르죠. 방시혁 의장이 JYP를 나와서 견뎌야 했던 스타트업의 설움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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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민희진 대표는 거인의 어깨 위에 계속 올라타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수만 회장의 어깨에서 방시혁 의장의 어깨로 갈아탄 것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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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민희진 대표가 2019년에 창업을 했다면 그때서야 알게 됐을지도 모르죠. 방시혁 의장이 JYP를 나와서 견뎌야 했던 스타트업의 설움을 말이죠. 그렇지만 민희진 대표는 거인의 어깨 위에 계속 올라타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수만 회장의 어깨에서 방시혁 의장의 어깨로 갈아탄 것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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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이라는 브랜드 가치는 2019년 이미 상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방시혁 의장도 득달 같이 연락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브랜드와 시스템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브랜드가 꽃이라면 시스템은 줄기죠. 자본이 뿌리고요. 민희진이라는 브랜드 역시 결국 SM엔터테인먼트라는 줄기와 뿌리가 피워낸 꽃인 겁니다. 줄기도 뿌리도 없이 혼자서 피어날 수 있는 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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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꽃들은 그걸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나 하이브처럼 굵은 줄기에서 피어난 꽃들은 피어나는 걸 당연하다 여기기 쉽죠. 신인 사원부터 대기업에서만 일해 온 사람들 중 일부가 흔히 하는 실수죠. 외주 하청 업체에 일을 맡기는 것을 자신의 실무 능력으로 여기니까요. 그러다 조직 밖으로 나왔을 때 자신의 무능을 깨닫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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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의장 덕분에 민희진 대표라는 꽃은 계속 꽃길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민희진 대표 입장에선 자갈길이었을지도 모르죠. 뉴진스라는 컨셉트를 창조해내기 위해 치열한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테니까요. 그런데 그것도 꽃길일 수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만 느낄 수 있는 것도 누군가한텐 사치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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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4년차였던 2009년 방시혁 의장은 서울 삼성동 미켈란 오피스텔에 틀어박혀서 홈플러스 CM송과 현대자동차 CM송을 쓰고 있었습니다. 빅히트에서 IP를 생산할 수 있는 건 대표 방시혁 뿐이었으니까요. 이런 게 자갈길입니다. 방시혁 의장은 2010년엔 MBC의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 출연합니다. 누군가는 방송 타서 정말 좋았겠다고 생각하기 쉽겠죠. 이것도 본질은 대중적 인지도를 쌓기 위한 업무의 연장이었습니다. 총 맞은 것처럼을 들어봤어도 작곡가가 방시혁인건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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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방시혁 의장과 동업하지 않았다면 민희진 대표 역시 그렇게 얼굴부터 팔아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소녀시대는 알아도 민희진이 비쥬얼 디렉터인 건 SM팬덤이 아니면 잘 모를 때였으니까요. 방시혁 의장이 공중파에 나갔다면 민희진 대표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을지도 모르죠. 이런 과정을 건너뛰고 뉴진스의 크리에이티브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꽃길입니다.

민희진4 : 뉴진스 엄마와 뉴진스 오너 사이

민희진6 : 회사 대 회사와 개인 대 회사의 차이

민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