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0~2026.09.02·3화이명박
이명박 : 2026년 10월 5일 업데이트
이명박 : 2026년 10월 5일 업데이트(2)
라이프 이슈
이재명 칭찬, 윤석열 비판
2026.03.26~2026.04.12·1화이명박 : 13년 만의 인터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0~2026.09.02·1화이명박 : 노무현 죽음의 MB적 진실
2026년 10월 05일 월요일
이명박 : 노무현 죽음의 MB적 진실
전 대통령 이명박은, 전 대통령 노무현이 임명한 임채진 검찰총장을 유임시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취지로 부탁했지만, 오히려 임채진 검찰이 노무현 일가 수사를 밀어붙였고,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정동기 민정수석에게도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강조했지만, 오히려 노무현은 자신을 지지해줬던 진보 진영으로부터 차갑게 외면 당하다 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1
1996년 04월 00일, 54세 때, 이명박은 제15대 총선 서울 종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같은 선거구에서 맞붙은 노무현은 낙선했다.
2
1996년 08월 00일, 54세 때, 이명박은 15대 총선을 치른 그해 여름 종로구의 한 삼계탕 식당에서 낙선한 노무현 전 의원과 우연히 마주쳤고, 식당 주인이 노무현에게 사무실 용도로 내준 방이 있던 그곳에서 거듭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
3
1996년 10월 07일, 54세 때, 이명박은 15대 총선 선거비용 초과 지출 등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4
1998년 02월 21일, 56세 때, 이명박은 다가오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기 위해 국회의장에게 종로 지역구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5
1998년 07월 21일, 56세 때, 이명박은 자신의 사퇴로 치러진 7·21 종로 보궐선거에서 노무현이 당선되며 자신이 떠난 지역구 의석을 노무현이 이어받는 상황을 맞았다.
6
2007년 11월 24일, 65세 때, 이명박은 17대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총장 대행을 두는 관례 대신 임채진을 새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상황을 맞았다.
7
2007년 12월 19일, 66세 때, 이명박은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며 10년 만의 보수 정권 교체를 이뤘다.
8
2008년 01월 00일, 66세 때, 이명박은 당선인 신분으로 삼청동 안가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을 만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들었으나,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임시키겠다고 답했다.
9
2008년 01월 00일, 66세 때, 이명박은 임채진 총장이 유임 이유를 묻자, 정권이 바뀌면 검찰이 전 정권을 겨냥할 것이니 그 자리에 남아 노무현 대통령을 보호해 달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10
2008년 02월 25일, 66세 때, 이명박은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취임식이 끝난 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자들에게 인사했다.
11
2008년 03월 00일, 66세 때, 이명박은 취임 직후 대검찰청 강당을 찾아, 과거 자신을 수사한 검사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지난 일은 따지지 않겠지만 검찰이 더 이상 정치에 끌려다니지 말고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12
2008년 03월 07일, 66세 때, 이명박은 취임 전 민정수석 내정자였던 검찰 출신 이종찬 변호사와 의견을 나눠 정한 방침대로, 외청장 인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어청수 경찰청장·한상률 국세청장의 유임을 확정했다. 이유는 법이 정한 임기를 지키는 것이 법치의 기본이며 전 정권을 겨냥한 사정에 국정 역량을 쓰지 않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3
2008년 03월 19일, 66세 때, 이명박은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검사도 임관 때 정치적 중립과 사명을 스스로 다짐하는 선서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14
0000년 00월 00일, 66세 때, 이명박은 검찰이 만든 선서 문안을 민정수석이 재가를 받겠다며 가져오자 문건을 열어보지 않고 돌려주며, 스스로 다짐하라는 뜻이었지 대통령 승인을 받을 일이 아니니 검찰이 자율로 정하라고 지시했다.
15
0000년 00월 00일, 66세 때, 이명박은 광우병 사태가 정점에 이른 2008년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화문에 사무실을 내고 싶다고 요청하자, 시위가 매일 열리는 곳이라 불편할 것이니 다른 장소가 낫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16
2008년 07월 00일, 66세 때, 이명박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를 떠나며 핵심 기록이 담긴 하드디스크와 e지원 시스템을 봉하마을로 옮겨간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가 나서지 말고 소관 기관인 국가기록원이 절차에 따라 조용히 돌려받도록 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17
2008년 07월 00일, 66세 때, 이명박은 한상률 청장 체제의 국세청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투입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특별세무조사를 시작하면서, 광우병 사태와 겹친 시점 때문에 보복성 조사를 지시했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
18
2008년 07월 19일, 66세 때, 이명박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시스템 전체를 돌려주지 않고 기록물 하드디스크 14개와 백업본 14개 등 28개만 분리해 봉하마을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직접 가져가는 상황을 맞았다.
19
2008년 10월 31일, 66세 때, 이명박은 자신의 제안을 계기로 검찰이 자체적으로 문구를 다듬은 '검사선서'가 대통령령으로 제정·시행되는 결과를 맞았고, 이 선서는 이후 서울중앙지검 로비 등 전국 검찰청에 걸렸다.
20
2008년 12월 04일, 66세 때, 이명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 구속되고 이듬해 노무현의 아들과 조카사위, 권양숙 여사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이 사안을 본격적으로 주시하게 됐다.
21
2008년 12월 29일, 67세 때, 이명박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임채진 검찰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법무부·법제처·국민권익위원회의 2009년 업무보고를 받았다.
22
2009년 00월 00일, 67세 때, 이명박은 정부 핵심 인사 몇 명을 통해 수사가 불가피하더라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지키며 조용히 진행하라는 뜻을 검찰에 간접적으로 전했다.
23
2009년 04월 00일, 67세 때, 이명박은 업무보고를 마친 원세훈 국정원장을 붙잡아, 권양숙 여사를 부산의 호텔에서 조사했듯 노무현 전 대통령도 소환하지 말고 봉하마을 인근에서 방문조사하는 것이 맞다며, 서울대 법대 1년 선배로서 임채진 총장에게 이 뜻을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24
2009년 04월 00일, 67세 때, 이명박은 서울고검장 출신인 김경한 법무부 장관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가 지나치니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대한 예우받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25
2009년 04월 00일, 67세 때, 이명박은 정동기 민정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우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26
2009년 04월 00일, 67세 때, 이명박은 검찰이 공개 소환 방침을 고수해 봉하마을 방문조사 요청이 무산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 출석을 받아들이자, 상경길에 취재진을 피할 수 있도록 대통령 전용 KTX를 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정중히 사양하는 답을 들었다.
27
2009년 04월 30일, 67세 때, 이명박은 대신 청와대 경호 버스를 제공하겠다고 다시 제안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그 버스로 봉하마을에서 서초동 대검찰청까지 이동했다.
28
2009년 05월 23일, 67세 때, 이명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른 아침 추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긴급 의료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했고, 서거 보고를 받은 뒤 믿기 어렵고 비통한 일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29
2009년 05월 24일, 67세 때, 이명박은 유족이 원한 국민장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유로 정부 일각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민장을 의결했다.
30
2009년 05월 25일, 67세 때, 이명박은 청와대를 통해 봉하마을 조문 계획을 밝혔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현지의 격앙된 분위기를 이유로 만류하자 방문을 접었고, 대신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고인을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했다.
31
2009년 05월 29일, 67세 때, 이명박은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 부부가 함께 참석해 헌화하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32
2009년 05월 29일, 67세 때, 이명박은 헌화하는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에게서 '살인자'라는 외침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사죄하라는 요구를 들었으나, 맞대응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33
2026년 08월 31일, 84세 때, 이명박은 중앙일보에 연재 중인 회고록 '나는 더 큰 대한민국을 꿈꿨다' 제38회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관한 입장을 17년 만에 처음 공개하며,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했고 과잉 수사를 막으려 꾸준히 제동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34
2026년 08월 31일, 84세 때, 이명박은 수사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해 정치적으로 고립시킨 쪽은 민주당과 좌파 언론이었는데, 서거 이후 그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35
2026년 08월 31일, 84세 때, 이명박은 그동안 반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고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6
2026년 08월 31일, 84세 때, 이명박은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지시한 적이 없으며, 한상률 청장의 독대 보고를 받고 크게 칭찬했다는 보도는 사실 확인 없이 퍼진 오보라고 반박했다.
37
2026년 08월 31일, 84세 때, 이명박은 검찰이 1996년 종로 당선 직후 무리한 이유로 자신을 기소해 의원직에서 물러나게 했고 서울시장 시절과 대선후보 시절에도 자신을 압박했다며, 정치 권력에 종속된 검찰에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38
2026년 08월 31일, 84세 때, 이명박은 자신이 '통치'가 아닌 '국가 경영'을 하려고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검찰을 정권의 도구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39
2026년 09월 02일, 84세 때, 이명박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개인 특혜가 아니라 국정 경험과 국제 인맥이라는 국가 자산을 지키는 일이라며, 노무현을 개인적 호감이 아닌 전직 대통령으로서 배려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40
2026년 09월 02일, 84세 때, 이명박은 수사를 이끈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을 자신이 발탁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워싱턴에서 만났다는 이인규의 서술은 기억나지 않고 검찰 인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41
2026년 09월 02일, 84세 때, 이명박은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안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언론 보도로 논란이 된 뒤에야 알았다며, 국정원을 동원한 공작이라는 주장을 부인했다.
42
2026년 09월 02일, 84세 때, 이명박은 검찰이 소환 조사 후 20여 일 동안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사실상 불구속 수사로 방향을 잡은 것은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43
2026년 09월 02일, 84세 때, 이명박은 당시 참모진과 여당 일부 강경파가 좌파 정권 10년간의 수모를 갚자고 했지만, 자신에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복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44
2026년 09월 02일, 84세 때, 이명박은 노무현의 변호인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거 직후에는 정치 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보지 않는다고 했다가 몇 년 뒤 사실상 정치적 타살이라고 입장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45
2026년 09월 02일, 84세 때, 이명박은 좌파 진영이 수사 당시 노무현을 외면했다가 서거 뒤 태도를 뒤집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재임 중 일어난 비극에 대해서는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명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