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자산 15조 대한민국 1등 부자의 사회적 책임

2005~2025.03.18·1화

김병주 : 자산 15조 대한민국 1등 부자의 사회적 책임

1963년 - 1991년 : 도서관에서 자란 투자자

1963.10.08~1991.12·2화

1963년 - 1980년 : 도서관에서 세상을 배운 외로운 아이

1980년 - 1991년 : 골드만삭스를 떠난 MBA입학생이자 재벌에 비판적인 재벌가 사위

1991년 - 2004년 : 인생의 승부처 한미은행 인수전

1990~2004.12.06·4화

1991년 - 1998년 : 기업 상장과 자산 유동화와 채권 발행의 프로페셔널

1999년 - 2000년 : 인생의 승부처 한미은행 인수전

2000년 - 2001년 : 천당과 지옥을 오가다 악당이 된 아빠

2001년 - 2004년 : 칼라일에 7107억 원을 안겨준 바이아웃의 교과서

2005년 - 2013년 : MBK와 파트너스의 성장기

2005~2014.06.25·3화

2005년 - 2007년 : MBK한테 한미는 언제나 기회

2008년 - 2011년 : 한국에선 악수 일본에선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인수

2011년 - 2013년 : 웅진코웨이와 하이마트라는 2개의 전쟁

2013년 - 2019년 : 아시아 정상에 선 MBK의 선택들

1968~2020·3화

2013년 - 2015년 : 3호 펀드와 10주년 그리고 놓친 오비맥주와 잡은 홈플러스

2016년 : 아시아 정상에 선 MBK의 명암은 다방 커피와 동네 케이블

2017년 - 2019년 : 저성장기엔 골프장이고 경쟁에는 SSF 1호지만 틀면 돈 나오는 건 역시 코웨이 정수기

2019년 -2022년 : MBK의 새로운 오퍼링스

1997~2022.12.29·3화

2019년 - 2020년 : 제안할 것이냐 재물이 될 것이냐

2021년 : 투자의 창이 열린 2021년

2022년 : 투자의 창이 닫힌 2022년

2023년 - : 1등 부자 1등 PEF의 무게

2023.01.01~2024.07·1화

2023년 : 고금리엔 줄다리기

2024년 - 2025년

2022~2027·2화

김병주 : 2024년

김병주 : 2025년

2025년 03월 14일 금요일

2005년 - 2007년 : MBK한테 한미는 언제나 기회

자신의 이름을 단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창업한 김병주는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과는 거리를 두려는 미국계 은행과 정반대 입장인 한국계 은행 사이에서 바이아웃 기회를 포착했고 한미캐피털과 쌍용캐피털을 인수합병해서 1년 3개월 만에 1800억 원을 벌어들입니다.

1
42세 때2005년 3월 1일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을 떠나서 MBK파트너스를 설립했다.
2
칼라일 그룹 아시아 회장이었던 김병주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시장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바이아웃 사모펀드로 MBK파트너스를 정의했다.
3
김병주는 아시아 투자를 뉴욕에서 결정하는 미국계 사모펀드의 방식으론 아시아 시장에서 계속 경쟁력을 갖게 어렵다고 판단했다. 
4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에서 최고경영자의 의사 결정에 일주일 이상 걸리는 병목 현상을 경험했고 작고 빠른 사모펀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5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에서 배운 사모펀드의 ABC를 MBK파트너스에 적용했다. 
6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의 1호 펀드를 1조 원 규모로 조성했다.
7
캐나다 공공연금과 온타리오 교직원연금과 싱가포르 국부펀드와 국민연금이 MBK파트너스 1호 펀드에 참여했다.
8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1호 펀드의 앵커 펀드로 참여했다.
9
싱가포르 정부는 김병주에게 서울 대신 싱가포르에 자리를 잡으면 추가 LP확보를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10
싱가포르 정부는 세제 혜택과 사무실 임대료 혜택도 제시했다. 
11
2005년 3월 1일 김병주는 싱가포르 사무실 대신 서울 종로타워를 첫 사무실로 선택했다. 
12
2005년 3월 김병주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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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은 세계 10대 경제권에 속하는 지역이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내총생산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경쟁이 비교적 적고 기업 가치는 낮게 평가돼 있다.”
14
"아시아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답은 시장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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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자라는 풀을 꺾어 한국에 가져와 심는다고 그 풀이 자라날 순 없다.”
16
분석=김병주의 MBK파트너스의 핵심 바이아웃 전략은 내수 기업 중 안정적 수익을 내는 소비재 회사를 사들여서 투자 차익을 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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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김병주는 정부가 정책으로 못하는 기업 경영 개선을 시장에서 자본으로 이뤄내기 위해서 MBK파트너스를 설립했다.
18
분석=김병주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정답이 아니며 외환위기 이후 태생된 한국식 자본주의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역할을 하려고 했다.
19
MBK파트너스의 창립 멤버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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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하 : 칼라일 그룹 한국 공동 대표+하버드 MBA 동문.
21
김광일 : 김앤장 법률사무소 파트너로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CPA로 근무했다.
22
부재훈 : 살로몬스미스바니 아시아 지역 투자은행 부장+칼라일 그룹 통신과 미디어 부문 대표=김병주와 부재훈은 인척 관계다. 영어 이름은 제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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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씨USA에서 퍼졌던 미확인 소문=2014년 6월 25일 익명의 네티즌이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여동생 혹은 사촌 여동생의 전 남편이 부재훈 MBK 파트너스 부회장이라는 댓글을 missusa.com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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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현 : 김앤장 법률사무소 인수합병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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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하 : 베인앤컴퍼니 시니어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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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택진 : 칼라일 그룹과 살로만브라더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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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 쿵 : 칼라일 그룹 홍콩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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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사 켄 : 골드만삭스와 아사히 은행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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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스케 스즈나카 : 칼라일 그룹 일본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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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스케 : 미즈호 은행 근무.
31
유 홍페이 : 모건 스탠리 인수합병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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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의 아시아 헤드들 거의 모두와 MBK파트너스를 창업했다. 
33
김병주와 윤종하와 부재훈=MBK파트너스 창업 3인방은 전체 펀드의 2%를 GP가 출자하라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개인 돈 300억 원을 1호 펀드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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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와  윤종하와 부재훈은 MBK파트너스 1호 펀드에 국민연금 기관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공개 입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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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사모펀드 2개와 은행계 사모펀드 2개와 MBK파트너스가 뷰티 콘테스트=공개입찰에 참여했지만 MBK파트너스는 2% 운용수수료라는 글로벌 기준을 제시한 탓에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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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6일 김병주의 큰 아들 김재민은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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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는 아들 김재민의 영어 이름을 자신의 미국식 이름인 마이클 김을 따라서 마이클 김 주니어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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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보고펀드가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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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펀드는 이재우 리만 브라더스 한국 총괄 대표가 주도했다. 
40
보고펀드의 창립 멤버는 다음과 같다.
41
이재우 : 리만 브라더스 한국 총괄 대표. 
42
변양호 :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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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하 : 모건스탠리 한국 지사 기업금융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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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김병주는 MBK파트너스 1호 펀드를 귬융감독원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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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있는 보고펀드의 등록 절차를 먼저 진행했다.  
46
2005년 7월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의 첫 입찰로 대우정밀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효성그룹에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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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은 대우정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인수가격과 우발채무 보증 조건에서 채권단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48
대우정밀은 결국 S&T그룹으로 넘어갔다.
49
2006년 이인경이 MBK파트너스 CFO로 합류했다.
50
2005년 9월 금융감독원은 MBK파트너스의 1호 펀드 등록을 진행했다. 
51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에서 씨티그룹에 매각했던 한미은행의 자회사 중 하나인 한미캐피털을 MBK파트너스가 인수하는 협상을 시작했다.
52
MBK파트너스의 한미캐피털 인수 협상으로 김병주는 다시 한번 한미은행 관련 자산에서 이름을 올리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53
씨티그룹의 개인 소매 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비중이 높은 한미캐피털를 비핵심 자산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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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는 한미캐피털을 해외은행인 씨티그룹에서 인수해서 국내은행에 매각하는 전략을 세웠다.
55
김병주는 씨티그룹이 한미캐피털의 기업 가치를 저평가하는 데서 바이아웃의 기회를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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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 때2006년 6월 12일 김병주는 MBK파트너스가 한국씨티은행의 자회사인 한미캐피탈을 626억 원에 인수하는 거래를 마무리했다.
57
MBK파트너스는 특수목적법인 오세이지 유한회사를 통해 한국씨티은행이 보유한 한미캐피탈 주식 35.07%와 113억2500만 원 어치의 전환사채를 장외거래를 통해 인수했다.
58
MBK파트너스의 한미캐피탈 인수는 김병주의 존재 때문에 칼라일 그룹과의 연관성을 의심 받았다.
59
한미캐피탈 인수의 진짜 의미는 MBK파트너스가 창업 1년 만에 기업 인수 시장에서 일궈낸 첫 승리라는 점이었다.
60
2006년 6월 김병주는 쌍용캐피털을 인수했다.
61
김병주는 한미캐피털과 쌍용캐피털을 합병했다.
62
쌍용캐피털을 합병하면서 한미캐피털의 매출 규모는 607억 원까지 2배 이상 증가했다.
63
2006년 10월 김병주는 현대캐피털과 공동으로 2000억 원에 HK저축은행을 인수했다.
64
HK저축은행은 한솔그룹 계열사로서 저축은행 업계 1위를 차지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부실화되면서 리스크가 높아졌다.
65
분석=한국 금융 시장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생 리스크는 김병주와 MBK파트너스에게도 바이아웃의 기회이자 위험이었다.
66
2007년 7월 김병주와 MBK파트너스는 대만 최대 케이블 TV 업체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를 15억1400만 달러에 인수했다.
67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 인수는 MBK파트너스가 KKR, CVC아시아퍼시픽, 칼라일 그룹, TPG뉴브릿지, 맥쿼리 은행,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와의 경쟁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68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의 빠른 의사 결정 속도로 매각 협상의 주도권을 잡았고  글로벌 사모펀드의 느린 덩치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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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MBK파트너스의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 인수는 한국이 아닌 해외 시장에서 한국 사모펀드가 글로벌 기업 인수 경쟁에서 승리한 최초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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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김병주와 MBK파트너스는 쌍용캐피털이 더해진 한미캐피털을 우리은행에 2711억 원에 매각하는 거래를 마무리했다.
71
김병주와 MBK파트너스는 1년 3개월 만에 한미캐피털을 통해 1840억 원의 차익을 거뒀다.
72
분석=칼라일 그룹 시절 한미은행 바이아웃이 김병주의 인생 승부처였다면 MBK파트너스 초기 한미캐피털 바이아웃은 김병주의 창업 승부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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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칼라일은 한미은행 바이아웃으로 7107억 원을 벌었고 MBK파트너스는 한미캐피털 바이아웃으로 1804억 원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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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등록 사모투자전문회사는 44개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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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2007년 MBK장학재단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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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는 MBK장학재단 설립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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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시작은 태어난 때부터가 아니라 나를 인식하고 움직인 순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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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 장학사업이라고 말했다.

2008년 - 2011년 : 한국에선 악수 일본에선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인수

김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