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0~2026.09·2화

김병주

김병주 : 2026년 9월 9일 업데이트

1963년 - 1991년 : 도서관에서 자란 투자자

0~1991.12·2화

1963년 - 1980년 : 도서관에서 세상을 배운 외로운 아이

1980년 - 1991년 : 골드만삭스를 떠난 MBA입학생이자 재벌에 비판적인 재벌가 사위

김병주 : 자산 15조 대한민국 1등 부자의 사회적 책임

0~2025.03.04·1화

김병주 : 자산 15조 대한민국 1등 부자의 사회적 책임

1991년 - 2004년 : 인생의 승부처 한미은행 인수전

0~2004.12.06·4화

1991년 - 1998년 : 기업 상장과 자산 유동화와 채권 발행의 프로페셔널

1999년 - 2000년 : 인생의 승부처 한미은행 인수전

2000년 - 2001년 : 천당과 지옥을 오가다 악당이 된 아빠

2001년 - 2004년 : 칼라일에 7107억 원을 안겨준 바이아웃의 교과서

2005년 - 2013년 : MBK와 파트너스의 성장기

0~2013.01.02·3화

2005년 - 2007년 : MBK한테 한미는 언제나 기회

2008년 - 2011년 : 한국에선 악수 일본에선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인수

2011년 - 2013년 : 웅진코웨이와 하이마트라는 2개의 전쟁

2013년 - 2019년 : 아시아 정상에 선 MBK의 선택들

0~2019.04·3화

2013년 - 2015년 : 3호 펀드와 10주년 그리고 놓친 오비맥주와 잡은 홈플러스

2016년 : 아시아 정상에 선 MBK의 명암은 다방 커피와 동네 케이블

2017년 - 2019년 : 저성장기엔 골프장이고 경쟁에는 SSF 1호지만 틀면 돈 나오는 건 역시 코웨이 정수기

2019년 -2022년 : MBK의 새로운 오퍼링스

0~2022.11.29·3화

2019년 - 2020년 : 제안할 것이냐 재물이 될 것이냐

2021년 : 투자의 창이 열린 2021년

2022년 : 투자의 창이 닫힌 2022년

2023년 - : 1등 부자 1등 PEF의 무게

0~2024.07·1화

2023년 : 고금리엔 줄다리기

2024년 - 2025년

0~2025.03.26·2화

김병주 : 2024년

김병주 : 2025년

홈플러스 인수부터 포기까지

2015.08.24~2026.10.08·2화

김병주 : 9월 11일 검찰 소환 통보

김병주 : 홈플러스 인수라는 악몽

2025년 03월 14일 금요일

2005년 - 2007년 : MBK한테 한미는 언제나 기회

자신의 이름을 단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창업한 김병주는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과는 거리를 두려는 미국계 은행과 정반대 입장인 한국계 은행 사이에서 바이아웃 기회를 포착했고 한미캐피털과 쌍용캐피털을 인수합병해서 1년 3개월 만에 1800억 원을 벌어들입니다.

1
2005년 3월 41세 때, 김병주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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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01일, 41세 때,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을 떠나서 MBK파트너스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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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일 41세 때, 김병주는 싱가포르 사무실 대신 서울 종로타워를 첫 사무실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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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6일 41세 때, 김병주의 큰 아들 김재민은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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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41세 때, 보고펀드가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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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41세 때, 김병주는 MBK파트너스 1호 펀드를 귬융감독원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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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41세 때,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의 첫 입찰로 대우정밀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효성그룹에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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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41세 때, 금융감독원은 MBK파트너스의 1호 펀드 등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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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3세 때, 이인경이 MBK파트너스 CFO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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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42세 때, 김병주는 쌍용캐피털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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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6월 12일, 42세 때, 김병주는 MBK파트너스가 한국씨티은행의 자회사인 한미캐피탈을 626억 원에 인수하는 거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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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43세 때, 김병주는 현대캐피털과 공동으로 2000억 원에 HK저축은행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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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4세 때, 등록 사모투자전문회사는 44개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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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0월 00일, 44세 때, 김병주는 MBK장학재단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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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43세 때, 김병주와 MBK파트너스는 대만 최대 케이블 TV 업체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를 15억1400만 달러에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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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43세 때, 김병주와 MBK파트너스는 쌍용캐피털이 더해진 한미캐피털을 우리은행에 2711억 원에 매각하는 거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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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 아시아 회장이었고 MBK파트너스를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시장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바이아웃 사모펀드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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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아시아 투자를 뉴욕에서 결정하는 미국계 사모펀드의 방식으론 아시아 시장에서 계속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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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에서 최고경영자의 의사 결정에 일주일 이상 걸리는 병목 현상을 경험했고 작고 빠른 사모펀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에서 배운 사모펀드의 ABC를 MBK파트너스에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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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의 1호 펀드를 1조 원 규모로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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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서울 대신 싱가포르에 자리를 잡으면 추가 LP 확보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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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과 사무실 임대료 혜택도 제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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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정답이 아니며 외환위기 이후 태생된 한국식 자본주의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역할을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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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부재훈과 인척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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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의 아시아 헤드들 거의 모두와 MBK파트너스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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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윤종하, 부재훈과 함께 MBK파트너스 창업 3인방으로서 전체 펀드의 2%를 GP가 출자하라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개인 돈 300억 원을 1호 펀드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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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윤종하, 부재훈과 함께 MBK파트너스 1호 펀드에 국민연금 기관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공개 입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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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아들 김재민의 영어 이름을 자신의 미국식 이름인 마이클 김을 따라서 마이클 김 주니어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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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 :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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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에서 씨티그룹에 매각했던 한미은행의 자회사 중 하나인 한미캐피털을 MBK파트너스가 인수하는 협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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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의 한미캐피털 인수 협상으로 다시 한번 한미은행 관련 자산에서 이름을 올리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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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한미캐피털을 해외은행인 씨티그룹에서 인수해서 국내은행에 매각하는 전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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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씨티그룹이 한미캐피털의 기업 가치를 저평가하는 데서 바이아웃의 기회를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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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한미캐피털과 쌍용캐피털을 합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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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의 빠른 의사 결정 속도로 매각 협상의 주도권을 잡았고 글로벌 사모펀드의 느린 덩치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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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MBK파트너스와 함께 1년 3개월 만에 한미캐피털을 통해 1840억 원의 차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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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병주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 장학사업이라고 말했다.

2008년 - 2011년 : 한국에선 악수 일본에선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인수

김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