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 1994년 : 소니 비주류의 비주류

1960.12.22~1994.12.03·2화

1960년 - 1983년 :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소니인

1984년 - 1994년 : 소니 전성기에 소니 비주류로 입사한 미국식 일본인

히라이 가즈오 : 샐러리맨의 신화, 소니를 살린 히라이 가즈오

2012.01.08~2025.04.21·1화

히라이 가즈오 : 샐러리맨의 신화, 소니를 살린 히라이 가즈오

1994년 - 2009년 :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구하기

1994~2009.09·2화

1994년 - 1999년 :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아메리카의 해결사

2003년 - 2009년 : “플레이스테이션3는 게임기다”

2009년 - 2014년 : 소니 구하기

1983~2014.12·2화

2009년 - 2012년 : 백투베이직은 칸토

2012년 - 2014년 : 매디슨과 바이오를 팔다

2014년 - 2019년 : 소니 졸업하기

1989~2020·2화

2014년 - 2017년 : 적자 탈출 소니

2017년 - 2019년 : 박수 칠 때 떠난 위기의 리더쉽

LIFE COUNT

1960.12.22~2021·1화

히라이 가즈오

2025년 03월 09일 일요일

2014년 - 2017년 : 적자 탈출 소니

히라이 가즈오는 제품에선 칸토를 목표로 했고 경영에선 ROE를 지표로 세웠고 결국 2015년 소니를 흑자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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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2014년 2월 2차 중기경영계획에서 매출액 대신 ROE를 핵심 KPI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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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3년 후에 10% 이상의 ROE를 목표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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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E를 핵심 KPI로 내세운 것은 요시다 켄이치로의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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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1인인 히라이 가즈오는 경영 목표인 KANDO를 세웠고 2인자인 요시다 켄이치로는 경영 규율인 ROE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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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를 뜻하는 ROE를 내세운 건 도쿄통신공업 시절 회사 설립 취지서에 1항으로 정했던 “쓸데없이 규모의 크기를 쫓지 않는다”라는 베이직으로 소니를 되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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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소니를 3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분사를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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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분은 게임, 영화, 음악처럼 투자를 늘려서 더 크게 성장시켜야 하는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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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분은 디지털 이미지 센서처럼 꾸준한 투자로 안정적인 수익을 일으켜야 하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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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분은 TV와 모바일처럼 공격적 투자를 하기보단 적자를 피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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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켄이치로는 각 3개 부문별로 ROE에 이어 ROIC를 추가 KPI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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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본이익율은 ROIC는 자기자본이익률은 ROE와 함께 경영효율성을 추구하는 2대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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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부동산 판매 중개 업체 소니부동산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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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히라이 가즈오는 70년 만에 처음으로 소니의 무배당 정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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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에게 무배당 정책 발표를 조언한 사람은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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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TV 부문은 2014년부터 11년 만에 흑자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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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소니는 고화질 프로세서 X1을 탑재해서 4K 고화질 TV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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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2015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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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2015년 워크맨 전설을 썼던 소니의 오디오와 비디오 사업 부문도 분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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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부동산에 AI를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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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부동산과 일본 야후는 매도자와 매수자를 연결시켜주는 오우치다이렉트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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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생명보험 사업을 시작했던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의 전례에 따라서 소니부동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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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토토키 히로키는 소니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를 흑자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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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키 히로키는 2016년 소니의 각종 기술을 총동원한 고스펙 스마트폰인 엑스페리아를 통해 고급화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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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소니에서 전자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서 60%로 낮아졌고 직원수는 9만 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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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AI 로보틱스 영역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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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소니가 1999년 발매했다가 2006년 판매를 중단한 아이보를 부활시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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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에게 로봇은 칸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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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1995년부터 플레이스테이션2과 플레이스테이션3를 개발했던 가와니시 이즈미에게 아이보 개발팀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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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P회라고 불리는 프레지던트회의를 연간 1회 이상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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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 프로토타입은 P회에서 첫 번째로 공개됐을 때부터 내부적인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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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소니는 로봇 개발 발표했고 2017년 새로운 아이보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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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는 2017년 11월 1일 공개됐고 2018년 1월 11일 판매 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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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2017년 11월 애써 아이보를 부활시킨 건 소니가 더 이상 생존에 급급한 회사가 아니라 이런 로봇개도 개발할 수 있는 여유로운 회사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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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말 소니는 보유하고 있던 영화 IP의 가치를 재평가했고 1121억 엔을 감손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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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1989년 콜럼비아픽쳐스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영화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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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비디오와 DVD와 블루레이 등의 영상 기술과 결합되면서 소니가 보유한 영화 IP의 가치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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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넷플릭스가 영상 유통의 중심을 온라인으로 바꿔놓으면서 소니의 영화IP가 지닌 가치도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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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로 접어들자 소니가 보유한 비디오, DVD, 블루레이 판권의 가치도 떨어졌고 패키지 판매 수익도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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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2020년대 영상 시대를 준비하면서 소니 창고에서 영상 재고를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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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의 재건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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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발 OTT혁명에서 소니픽쳐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1번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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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도쿄 소니 본사의 실질적인 경영은 2인자인 요시다 겐이치로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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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 CEO로 CBS와 폭스TV 출신인 앤서니 빈시퀘라를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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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가즈오는 앤서니 빈시퀘라를 통해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의 재건에 성공했다.

2017년 - 2019년 : 박수 칠 때 떠난 위기의 리더쉽

히라이 가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