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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07.14~2025.03.31·1화하워드 러트닉
하워드 러트닉 : 엡스타인 의혹과 사퇴 압박
2026.02.09~2026.04.08·1화하워드 러트닉 : 엡스타인 의혹과 사퇴 압박
9.11 테러의 희생자
2001.09~2026.09.11·1화하워드 러트닉 : 9.11 테러 25주년의 눈물
2026년 09월 13일 일요일
하워드 러트닉 : 9.11 테러 25주년의 눈물
40세 때인 2001년 9월 11일 친동생을 포함해 동료 658명을 한꺼번에 잃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0년 동안 유족들의 의료 보험을 책임졌고 유족 자녀들을 자신의 회사에 취업시켰으며 매년 9월 11일마다 하루 동안의 회사 수익을 전부 기부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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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00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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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00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참사 직후 유족들에게 지급되던 급여 지급을 전격 중단해 유족의 생계를 끊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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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11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아들 카일의 유치원 입학 첫날 등원을 직접 챙기기 위해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의 캔터 피츠제럴드 본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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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11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북쪽 타워가 무너진 직후 불타는 건물을 향해 달려가 동료들을 찾았으나 본사에 출근했던 직원 960명 중 658명이 전원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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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11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같은 사고로 캔터 피츠제럴드 104층에서 근무하던 친동생 게리 러트닉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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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12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여동생 에디스(에디) 러트닉에게 유족을 지원할 새 자선단체 운영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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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13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살아남은 런던 지사와 해외 인력을 동원해 47시간 만에 전산망을 복구하고 시장에 복귀해 거래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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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14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참사 사흘 뒤 TV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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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14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사재 100만 달러를 기부해 캔터 피츠제럴드 구호기금(Relief Fund)을 설립하고, 향후 5년간 회사 수익의 25%를 유족에게 지급하며 10년간 의료보험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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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01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5천 명이 참석한 첫 추모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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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9월 11일, 41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매년 9월 11일을 '자선의 날'로 지정해 하루 수익 전체를 기부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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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0월 00일, 43~4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이 이끄는 BGC파트너스는 유로브로커스를 인수해 세계무역센터에서 61명의 직원을 잃은 유로브로커스 유족들까지 구호기금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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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12일, 5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9·11 10주년을 맞은 '자선의 날' 행사에서 하루 약 1,200만 달러를 모금했으며(누적 모금액 약 7,700만 달러), "10주년을 맞아 올해 자선의 날이 특히 뭉클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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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0월 00일, 51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허리케인 샌디 피해 지원을 위해 1,000달러씩 담긴 선불카드 총 1,000만 달러어치를 뉴욕 19개 초등학교 가정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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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0월 00일, 54~5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이 유족 자녀들에게 "성인이 되면 캔터 피츠제럴드에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던 약속에 따라 9·11 희생자 자녀 57명이 캔터 피츠제럴드·BGC파트너스에 채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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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00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도널드 트럼프 대선 캠프의 정권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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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00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폭스 방송 '굿데이 뉴욕'에 출연해 '자선의 날' 행사를 소개했으며, 이 행사에는 JD 밴스 상원의원(당시), 앤디 로딕, 빅터 크루즈, 지몬 혼수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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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9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트럼프 당선인으로부터 미국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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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8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 상원의 인준투표(찬성 51 대 반대 45)를 통과해 상무장관으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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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21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 상무부 장관으로 공식 취임해 미국 내 공급망 재건과 해외자본 유치를 목표로 한 관세·투자압박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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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9월 11일, 6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이 된 하워드 러트닉은 9·11 24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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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반도체·배터리·AI 인프라 기업들을 상대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압박하며 "미국에서 팔려면 관세를 내든지 공장과 자본을 미국에 바치든지 선택하라"는 방침을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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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텍사스의 가스복합화력발전과 AI 에너지 인프라 확충을 명분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등 반도체 기업들에 현지 발전 인프라 지분투자와 생산시설 확충을 요구하며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건을 까다롭게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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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서 열린 G20 혁신장관회의 도중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제품에 대한 표적화되고 신중한 관세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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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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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반도체 제조업 투자와 관세를 연계하는 고강도 정책 구상 보도 내용에 대해 "정확히 맞다"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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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혁신적 의약품을 미국에서 생산하고 최혜국대우 가격을 시행한 기업들에 관세 감면 혜택을 준 전례를 들며 반도체에도 유사한 방식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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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TSMC의 애리조나 2,650억 달러 규모 반도체 공장과 마이크론의 2,500억 달러 규모 메모리 공장 등 5,000억 달러가 넘는 투자 유치 성과를 트럼프 관세 정책의 효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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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위한 1조 2,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확보했다고 밝히며 취임 당시 2%에 못 미쳤던 미국의 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이 40%를 향해 가고 있고 인텔이 성공하면 50%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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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대만 정부가 다음 주 미국에 대한 200억~3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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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 G20 혁신장관회의에서 세계무역센터 철골을 녹여 만든 1인치 정사각 조각을 각국 대표단에게 선물하며 "동생 게리 러트닉과 나의 657명의 동료를 추모하며"라는 문구를 새긴 상자에 담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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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0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9·11 25주년 전날 조종사 단체와 함께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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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1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9·11 테러 25주년 추도식에 참석해 추모비 앞에서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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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1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관하는 워싱턴 펜타곤 추도식 대신, JD 밴스 부통령이 트럼프를 대신해 참석한 뉴욕 그라운드제로 25주년 추도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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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1일, 6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뉴욕 추도식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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