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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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 2026년 9월 4일 업데이트

근조, 노무현

1960~2002.12.18·1화

노무현 : 근조, 노무현

2004년 3월 9일 - 2004년 5월 14일 :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안

2003.09.05~2024.03.19·4화

2004년 3월 9일 - 2004년 3월 11일 : 정면돌파 기자회견

2004년 3월 11일 - 2004년 3월 12일 : 대우건설 사장의 투신 자살

2004년 3월 12일 - 2004년 3월 13일 : 노무현 탄핵소추안 통과

2004년 3월 12일 - 2004년 5월 14일 : 일주일 동안의 잠과 63일 동안의 칩거

노무현 없는 노무현 정신

2002.04.27~2024.05.24·1화

노무현 없는 노무현 정신

시대를 관통하는 노무현의 정치 철학

2026.04.01~2026.04.05·1화

노무현 : 시대를 관통하는 노무현의 정치 철학

노무현의 정치 정신과 유산의 재조명

2026.04.02~2026.04.07·1화

노무현 : 노무현의 정치 정신과 유산의 재조명

라이프 북 카운트 : 노무현 평전 by 윤태영

1946.09.01~2009.05.23·5화

봉하마을의 돌콩

우월감과 자부심 사이에 선 소년

농협 직원을 꿈꾸다

하얀 눈과 군대 생활

사법시험 사이에 핀 사랑

2026년 09월 04일 금요일

하얀 눈과 군대 생활

1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어머니가 교사인 큰형수에게 부탁해 마련한 입학금을 큰형수가 큰형님에게 돌려달라고 하자 자존심이 상한 큰형님이 돈을 돌려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가 "여름 복숭아 농사를 지어 입학금을 내겠다"고 사정했으나 거절당하는 상황을 겪었다.
3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교감으로부터 "농사나 배우라", "큰아들이 대학 나와도 백수건달인데 뭐 하러 공부시키냐"는 비교육적 발언을 듣고 화가 나 원서를 찢어버리고 나왔다.
4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나가는 길에 교감으로부터 "저런 놈 공부시켜봐야 깡패밖에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5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다음 날 학교를 찾아가 비교육적 언사를 문제 삼아 항의한 큰형님 덕분에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6
1959년, 12세 때, 노무현은 중학교 진학 이후 사춘기에 접어들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늘어 공부를 소홀히 했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적지 않았으며 삐딱한 차림으로 불량스러운 멋을 내보이기도 했다.
7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앞두고 진영중학교에서도 열린 찬양성 글짓기대회를 부당하다고 여겨 백지를 내자고 급우들을 선동했고, 급우들 모두가 백지를 내도록 했다.
8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답안지에 '우리 이승만(택)통령'이라 쓰고 이름을 적어 냈고, 이를 감독하던 여자 선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9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괘씸죄에 걸려 교무실에서 종일 벌을 섰고, 벌을 서던 중 교감으로부터 "이놈 역적 아니야? 역시 못된 놈은 할 수 없구먼"이라는 면박을 들었다.
10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반감이 커져 반성문을 쓰지 않고 집으로 도망쳤고, 이를 안 큰형님으로부터 "네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면 끝까지 당당하게 버틸 일이지 왜 살그머니 도망을 왔느냐"는 질책을 들었다.
11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다음 날 지각해 주임 선생에게 이끌려 사택으로 가 반성문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반성의 반 자도 쓰지 않고 백지동맹의 자초지종만 적어 냈다.
12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주임 선생이 "너, 이승만 대통령이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하냐"고 묻자 "옛날에는 독립운동을 한 훌륭한 분이었으나 지금은 독재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13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주임 선생이 누가 그렇게 가르쳤냐고 묻자 "형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주임 선생이 반성문을 다시 쓸 것을 강요했으나 끝까지 쓰지 않았다.
14
1961년, 14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3학년 재학 중 몸이 좋지 않아 1년간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15
1962년, 15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3학년 시절 부일장학생 시험에 합격해 장학금을 받았다.
16
1962년, 16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가난한 집안 형편을 고려해 돈 버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자신과 집안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5급 공무원(현 9급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어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채 관련 서적을 사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17
1962년, 16세 때, 노무현은 큰형님 노영현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강권하자 결국 큰형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부산상고 진학을 택했다.
18
1963년 03월 02일, 16세 때, 노무현은 지금의 개성고등학교인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처지였고, 상고를 졸업해 농협에 취직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었다.
19
1963년 03월, 16세 때, 노무현은 말쑥한 차림의 은행원이 된 자신을 꿈꾸기 시작하며 그것을 가난에서 벗어나는 성공의 첫걸음으로 여겼다.
20
1963년 03월, 16세 때, 노무현은 진영읍을 떠나 부산 곳곳을 전전하며 3년 내내 하숙, 자취, 입주 가정교사, 빈 공장 숙직실 등 한 푼이라도 싼 곳을 찾아 다녔고, 영주동 작은누님 집에 신세를 진 날도 많았다.
21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초량동에 사는 급우의 집에서 식사 신세를 지거나 가끔 기숙했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학교 인근 '아세아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잠을 잤다.
22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미래의 꿈보다 현실의 고통에 아파하며 공부와 먼 길을 걷기 시작해 때로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도망가기도 했고 술과 담배도 배웠으며, 성적이 형편없이 추락해 중간도 되지 못하는 수준이 됐다.
23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힘겨움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절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넓은 세상에 송곳 하나 꽂을 땅조차 없습니다"라며 원망 섞인 하소연의 편지를 썼다.
24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독서실 총무의 지나친 기강 잡기에 반발해 독서실 책상 위에 올라가 총무의 횡포를 규탄하는 연설을 했고, 이 일로 독서실 분위기가 바뀌면서 총무와의 관계는 오히려 좋아졌다.
25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이 독서실 총무였던 부산상고 1년 후배 최도술과 인연을 맺어, 훗날 그를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국회의원 시절에는 보좌관으로, 대통령 재임 때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각각 함께했다.
26
1965년 11월, 19세 때, 노무현은 졸업을 앞두고 있던 초겨울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 학교 교실에서 두 밤을 혼자 지내며 밤새 이를 악물고 떨면서 추위를 견뎠고, 다음 날은 이가 아파 밥을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27
1963년, 16세 때, 노무현은 방학이면 진영으로 돌아와 이미 환갑을 넘긴 부모님이 산기슭을 개간해 고구마를 심고 취로사업에도 나가며 고구마순을 팔아 생계를 잇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저녁은 거의 매일 메밀죽으로 때웠으며 마음속에 큰형님에 대한 원망이 솟구치기도 했다.
28
1963년, 16세 때, 노무현은 가끔 봉화산에 올라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본 가난한 봉하마을의 풍경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한편, 사자바위에 올라서는 화포천에 이르는 진영의 벌판과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를 보며 가난을 버텨내야 할 이유를 찾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29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3학년이 되어서야 그동안 흐트러졌던 정신적 자세를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30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부모님을 모셔야겠다고 마음먹고 정신을 바짝 차려 농협 입사를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31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3학년 3반(1~4반이 취업반)으로 입사시험 대비 아침 보충수업을 받았으며, 부기도 잘하고 일반상식도 많아 정규수업 시간이 임박해서야 교실에 들어가곤 했다.
32
1965년 12월, 19세 때, 노무현은 도별로 한 명씩 뽑는 농협 입사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33
1966년 02월, 19세 때, 노무현은 졸업을 앞두고 부산상고가 알선해 준 어망 생산 회사 '삼해공업'(부산시 해운대구 반여동) 취업을 받아들였다.
34
1966년 03월, 19세 때, 노무현은 네 명의 졸업생과 함께 첫 직장에 입사한 지 한 달 뒤 첫 월급으로 2700원을 받았다 — 당시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 1만 원, 공무원 초봉 6000원 수준에 비해 크게 낮은 금액이었다.
35
1966년 04월, 19세 때, 노무현은 월급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자 함께 입사한 네 명의 신입사원과 대책을 상의한 끝에 퇴사하기로 결론을 모았다.
36
1966년 04월, 19세 때, 노무현이 사장을 만나 사직 뜻을 밝히자 사장은 월급을 4000원으로 대폭 인상해주겠다고 제안했다.
37
1966년 04월, 19세 때, 노무현은 인상된 4000원에 만족해 회사에 남았으나 노무현은 월급 액수와 관계없이 마음이 뜬 상태여서 다른 친구와 함께 애초 마음먹은 대로 삼해공업을 떠났다.
38
1966년 04월, 19세 때, 노무현은 한 달 반 치 월급 6000원을 손에 쥐고 그 돈으로 기타를 사고 사법시험 도전을 위해 헌 고시책을 몇 권 샀으며, 남은 돈으로는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고향 진영으로 돌아왔다.
39
1966년 05월, 19세 때, 노무현은 뱀산 자락에 토담집을 지어 정식으로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첫걸음을 뗐고, 그 무렵 실직해 집에 와 있던 작은형님이 일을 거들어주었다.
40
1966년 05월, 19세 때, 노무현이 완성되자 아버지가 옥을 다듬는 마음으로 공부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마옥당(磨玉堂)'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41
1966년 05월, 19세 때, 노무현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아 사법시험을 치르기 전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이라는 자격시험을 먼저 통과해야 하는 처지였다.
42
1966년 05월, 19세 때, 노무현은 마옥당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으나 당장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마옥당을 나서 울산의 공사 현장을 찾아갔다.
43
1966년 06월, 19세 때, 노무현은 울산에서 고된 막노동을 견뎌냈지만 일당 180원에서 세끼 밥값 105원을 제하면 겨우 75원이 남았고, 일자리가 없어 공치는 날도 많아 오히려 밥을 굶는 날도 있었다.
44
1966년 06월, 19세 때, 노무현은 인근 밭에서 배를 훔치고 때로는 닭서리도 했다.
45
1966년 06월, 19세 때, 노무현은 밀린 밥값이 2000원 이상이라 일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식당 주인 몰래 울산역으로 도망쳤다.
46
1966년 06월, 19세 때, 노무현은 집안 형편이 여전히 힘겨워 작은형님과 함께 돈을 벌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김해 농업시험장에 들어가 감나무 묘목을 100그루 정도 훔쳐 왔다.
47
1966년 07월, 19세 때, 노무현은 훔친 묘목을 싸 온 신문지를 집에서 풀어 헤치다가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 공고를 발견했는데, 시험일까지 넉 달밖에 남지 않은 7월이었다.
48
1966년 11월, 20세 때, 노무현은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을 치른 뒤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울산의 합숙소를 찾아 예전에 떼어먹었던 밥값을 갚아갈 즈음, 작업 중 큰 목재가 넘어져 얼굴을 맞는 큰 부상을 입었다.
49
1967년, 20세 때, 노무현은 법률 서적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아 사법시험 준비 대신 예비시험 과목을 새로 공부하다가 이듬해 군에 입대했다.
50
1966년 12월, 20세 때, 노무현이 부러지고 입술이 찢어져 병원에 입원했던 노무현은 정신을 차린 뒤 친구를 통해 예비시험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고, 이는 집안의 경사로 이어졌다.
51
1966년, 20세 때, 노무현은 훗날 이때의 심경을 《고시계》 사시합격기에 "4개월 정도의 준비로 예시에 합격하는 행운과 함께 이제까지의 처절한 투쟁은 막을 내렸다"고 적었고, 자신의 예비시험 합격에 자극받아 큰형님은 67년에, 작은형님은 68년에 각각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회고했다.
52
1968년 03월 05일, 21세 때, 노무현노무현은 육군에 입대해 창원 제39사단의 훈병으로 입소했다.
53
1968년 03월 07일, 21세 때, 노무현은 군번 '51053545'를 받았다(이병 월급 390원이던 시절).
54
1968년 03월, 21세 때, 노무현은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부관부에서 첫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시도 때도 없는 '사역 집합'에 시달리면서도 군기가 바짝 든 신병으로 구호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뛰어나갔고, 때로는 연병장에서 클로버를 뽑는 비교적 편한 사역을 맡기도 했다.
55
1968년 03월, 21세 때, 노무현은 부관부에서 감당한 '사역 집합'이 주로 일과 없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몰려, 꿀맛 같은 휴식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
56
1968년 03월, 21세 때, 노무현은 클로버를 뽑는 사역 중에는 적당히 눈치를 보며 요령을 피우기도 했다.
57
1968년 11월, 22세 때, 노무현은 눈이 드문 고향과 달리 눈이 많이 내리는 부대에서 그해 첫눈을 마주하자 들뜬 마음에 "와, 눈 한번 멋지게 내린다"고 무심코 탄성을 내질렀다가 선임병에게 혼쭐이 났다.
58
1968년 11월, 22세 때, 노무현은 탄성을 내지른 대가로 선임병에게 혼쭐이 나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고, 내린 눈을 치우는 일이 그토록 극한의 작업인 줄 미처 몰랐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59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부관부에서 담뱃값 정도만 챙길 수 있는 근무를 1년가량 하다가 부대 일부를 전방으로 차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지원해 제12사단으로 옮겨 갔다.
60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호기롭게 자원했지만 막상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자신감을 잃었고, 사방이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첩첩산중에 도착해서야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말을 실감했다.
61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사령부 부관부에서 고생한 경험 때문에 일반 보병중대 배속을 희망했으나, 대대 CP에서 대기하던 중 휴가를 떠나는 선배들이 "중대에서는 근무 중 졸면 목을 베어 간다"며 겁을 준 탓에 결국 대대장 당번병으로 배속되어 건봉산 대대 상황실에서 몇 달 동안 생활했다.
62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대대 상황실 근무 중 철책 근무를 서는 보직은 아니어서 그런대로 나은 편이었지만 휴일 없이 밤을 꼬박 새우고 낮에는 새우잠을 자야 했고, 특히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을 힘겨워했다.
63
1970년, 23세 때, 노무현은 이후 전방 철책 중대로 이동해 중대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마침내 소대까지 내려가 철책과 GP 근무를 마친 뒤 제대했다.
64
1970년, 23세 때, 노무현은 밤중에 철책선 근무를 나갔던 어떤 날 13시간을 근무하며 실탄 80발을 허리에 차고 4킬로그램짜리 M1 소총을 들고 12시간 동안 보초를 섰고, 낮에는 사역과 김치 담그기, 벙커 만들기까지 해야 해 의욕만큼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65
1970년, 23세 때, 노무현은 GP 근무를 4개월 정도 하면서 군기를 경험함과 동시에 그 이상의 전우애도 느꼈는데, 실탄을 지니고 근무해 긴장도가 매우 높았던 가운데서도 동료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66
1968년~1971년, 21~24세 때, 노무현은 군 생활 내내 회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왜 쓸데없는 일을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강하게 느꼈고, 전쟁이 실감 나지 않는데도 박박 기어야 하는 현실을 힘겨워했다.
67
1968년~1971년, 21~24세 때, 노무현은 군대에서 내내 영어책과 법률책을 지니고 다니며 집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인식과 자신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도 불구하고 정작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군대 내 공부는 쉽지 않았다.
68
1968년~1971년, 21~24세 때, 노무현은 정치인 시절 군대 이야기를 곧잘 했는데, 고향을 떠나 처음 사회와 만나는 곳이 군대였던 그 시절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군 생활을 하며 호남 지역에 대한 편견을 처음 접했다고 술회했고, 이는 평생 맞서 싸웠던 지역구도의 일단을 느끼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69
1968년~1971년, 21~24세 때, 노무현은 군 복무 중 월급이 점차 올라 제대할 무렵에는 440원이 되었고, GP 근무를 할 때는 별도 수당도 받았다.
70
1968년~1971년, 21~24세 때, 노무현은 군에 있을 때도 여전히 집안의 막내로 형님들에게 이래저래 신세를 지며 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자주 썼다.
71
1971년 01월, 24세 때, 노무현은 입대 당시 발생한 김신조 사건의 여파로 애초 30개월로 예정됐던 복무기간이 34개월 반으로 늘어난 끝에, 베트남전쟁 참전자가 많아 병장 계급장은 달지 못한 채 상병으로 만기 제대했다.
72
1971년 01월, 24세 때, 노무현은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왔고, 두 형님이 5급 공무원이 된 덕분에 나아진 집안 형편 속에서 다시 사법시험 준비에 몰두하기로 했다.
73
1971년 04월, 24세 때, 노무현은 뱀산의 마옥당을 수리하고 공부에 집중했다.
74
1971년 05월 02일, 24세 때, 노무현은 3급 공무원(현 행정고시) 제1차 시험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사법시험 준비로 전환했다.
75
1971년, 24세 때, 노무현은 법률책을 소설 보듯 마구 읽어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으나 이는 '수박 겉핥기'였음을 깨달았고, 4개월에 걸쳐 전 과목 3회독을 마쳤다.
76
1971년 10월, 25세 때, 노무현은 제14회 사법시험 공고가 나자 마음이 들떠 문제집을 사서 나름대로 밑줄을 긋고 그 부분만 골라 읽으며 시험을 준비했다.
77
1972년, 25세 때, 노무현은 8개월 정도 준비한 끝에 사법시험 제2차 시험에 응시해 평균 50점을 넘는 점수를 받았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이후 다시 대여섯 달을 허비했다.
78
1971년, 24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부산에 나가 있던 진영 한마을 출신 권양숙이 조부의 병구완을 돕기 위해 마을로 돌아오자 재회했다 — 권양숙은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낮에는 직장에 다니는 처지였다.
79
1971년, 24세 때, 노무현은 사법시험 공부를 재개하면서 연애도 시작했는데, 독학으로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도 연애를 병행하려 할 만큼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80
1971년, 24세 때, 노무현은 제대 후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마을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상대방의 단호한 거부에도 8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구애한 끝에 1차 시험 직전에야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으나, 그녀가 결혼 적령기를 넘겼다는 사실과 고시와 연애는 양립할 수 없다는 주변의 중론 사이에서 둘 다 고민에 시달렸고 애정이 깊어질수록 공부 시간에 대한 집착도 강해져 심리적 갈등이 심해졌다.
81
1971년, 24세 때, 노무현은 공부하는 틈틈이 권양숙을 만나 서로 책을 빌려주고 읽은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82
1971년, 24세 때, 노무현은 본격적으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권양숙에게 청혼했으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이후에도 연애는 계속되어 두 사람은 둑길을 밤늦게까지 걸으며 사랑을 나누었다.
83
1971년, 25세 때, 노무현은 동네 앞 들판 건너 산기슭 토담집에서 공부하던 어느 여름 끝 무렵 덮고 잘 담요를 집에서 갖고 나왔다가 마침 둑길을 걷던 권양숙을 만나 함께 걸었는데,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훗날 이야기를 옮긴 일이 있었다.
84
2003년~2008년, 56~61세 때,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기간(2003~2008년) 중 부당하게 빼앗긴 정수장학회를 유족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역부족으로 원상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장물"이라 표현하며 "거사 자금을 대주지 않았다고 군사쿠데타 세력이 반지를 밀수품으로 몰아 구속한 뒤 재산을 빼앗는 방식으로 보복했다"고 형님에게 들었던 대로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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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2008년, 56~61세 때,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군생활을 편안하게 회고할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어려움을 견디며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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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2008년, 56~61세 때,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중 군 시절 이야기를 소개하며, 야전삽 하나와 곡괭이 하나만 받아 벙커를 지으라는 지시에 전쟁 때 쳐놓았던 유자망을 철사 삼고 통나무를 엮어 귀틀집 같은 벙커를 만들었던 일화를 들려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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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1세 때, 노무현은 정치인이 된 후에야 군 생활 중 품었던 회의적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농협 직원을 꿈꾸다

사법시험 사이에 핀 사랑

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