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0~2009.05.23·1화

노무현 : 2026년 9월 4일 업데이트

근조, 노무현

1960~2002.12.18·1화

노무현 : 근조, 노무현

2004년 3월 9일 - 2004년 5월 14일 :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안

2003.09.05~2024.03.19·4화

2004년 3월 9일 - 2004년 3월 11일 : 정면돌파 기자회견

2004년 3월 11일 - 2004년 3월 12일 : 대우건설 사장의 투신 자살

2004년 3월 12일 - 2004년 3월 13일 : 노무현 탄핵소추안 통과

2004년 3월 12일 - 2004년 5월 14일 : 일주일 동안의 잠과 63일 동안의 칩거

노무현 없는 노무현 정신

2002.04.27~2024.05.24·1화

노무현 없는 노무현 정신

시대를 관통하는 노무현의 정치 철학

2026.04.01~2026.04.05·1화

노무현 : 시대를 관통하는 노무현의 정치 철학

노무현의 정치 정신과 유산의 재조명

2026.04.02~2026.04.07·1화

노무현 : 노무현의 정치 정신과 유산의 재조명

라이프 북 카운트 : 노무현 평전 by 윤태영

1946.09.01~2009.05.23·5화

봉하마을의 돌콩

우월감과 자부심 사이에 선 소년

농협 직원을 꿈꾸다

하얀 눈과 군대 생활

사법시험 사이에 핀 사랑

2026년 09월 04일 금요일

우월감과 자부심 사이에 선 소년

1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어머니가 교사인 큰형수에게 부탁해 마련한 입학금을 큰형수가 큰형님에게 돌려달라고 하자 자존심이 상한 큰형님이 돈을 돌려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가 "여름 복숭아 농사를 지어 입학금을 내겠다"고 사정했으나 거절당하는 상황을 겪었다.
3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교감으로부터 "농사나 배우라", "큰아들이 대학 나와도 백수건달인데 뭐 하러 공부시키냐"는 비교육적 발언을 듣고 화가 나 원서를 찢어버리고 나왔다.
4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나가는 길에 교감으로부터 "저런 놈 공부시켜봐야 깡패밖에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5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다음 날 학교를 찾아가 비교육적 언사를 문제 삼아 항의한 큰형님 덕분에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6
1959년, 12세 때, 노무현은 중학교 진학 이후 사춘기에 접어들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늘어 공부를 소홀히 했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적지 않았으며 삐딱한 차림으로 불량스러운 멋을 내보이기도 했다.
7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앞두고 진영중학교에서도 열린 찬양성 글짓기대회를 부당하다고 여겨 백지를 내자고 급우들을 선동했고, 급우들 모두가 백지를 내도록 했다.
8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답안지에 '우리 이승만(택)통령'이라 쓰고 이름을 적어 냈고, 이를 감독하던 여자 선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9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괘씸죄에 걸려 교무실에서 종일 벌을 섰고, 벌을 서던 중 교감으로부터 "이놈 역적 아니야? 역시 못된 놈은 할 수 없구먼"이라는 면박을 들었다.
10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반감이 커져 반성문을 쓰지 않고 집으로 도망쳤고, 이를 안 큰형님으로부터 "네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면 끝까지 당당하게 버틸 일이지 왜 살그머니 도망을 왔느냐"는 질책을 들었다.
11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다음 날 지각해 주임 선생에게 이끌려 사택으로 가 반성문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반성의 반 자도 쓰지 않고 백지동맹의 자초지종만 적어 냈다.
12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주임 선생이 "너, 이승만 대통령이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하냐"고 묻자 "옛날에는 독립운동을 한 훌륭한 분이었으나 지금은 독재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13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주임 선생이 누가 그렇게 가르쳤냐고 묻자 "형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주임 선생이 반성문을 다시 쓸 것을 강요했으나 끝까지 쓰지 않았다.
14
1961년, 14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3학년 재학 중 몸이 좋지 않아 1년간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15
1962년, 15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3학년 시절 부일장학생 시험에 합격해 장학금을 받았다.
16
1962년, 16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가난한 집안 형편을 고려해 돈 버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자신과 집안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5급 공무원(현 9급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어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채 관련 서적을 사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17
1962년, 16세 때, 노무현은 큰형님 노영현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강권하자 결국 큰형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부산상고 진학을 택했다.
18
1963년 03월 02일, 16세 때, 노무현은 지금의 개성고등학교인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처지였고, 상고를 졸업해 농협에 취직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었다.
19
1963년 03월, 16세 때, 노무현은 말쑥한 차림의 은행원이 된 자신을 꿈꾸기 시작하며 그것을 가난에서 벗어나는 성공의 첫걸음으로 여겼다.
20
1963년 03월, 16세 때, 노무현은 진영읍을 떠나 부산 곳곳을 전전하며 3년 내내 하숙, 자취, 입주 가정교사, 빈 공장 숙직실 등 한 푼이라도 싼 곳을 찾아 다녔고, 영주동 작은누님 집에 신세를 진 날도 많았다.
21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초량동에 사는 급우의 집에서 식사 신세를 지거나 가끔 기숙했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학교 인근 '아세아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잠을 잤다.
22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미래의 꿈보다 현실의 고통에 아파하며 공부와 먼 길을 걷기 시작해 때로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도망가기도 했고 술과 담배도 배웠으며, 성적이 형편없이 추락해 중간도 되지 못하는 수준이 됐다.
23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힘겨움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절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넓은 세상에 송곳 하나 꽂을 땅조차 없습니다"라며 원망 섞인 하소연의 편지를 썼다.
24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독서실 총무의 지나친 기강 잡기에 반발해 독서실 책상 위에 올라가 총무의 횡포를 규탄하는 연설을 했고, 이 일로 독서실 분위기가 바뀌면서 총무와의 관계는 오히려 좋아졌다.
25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이 독서실 총무였던 부산상고 1년 후배 최도술과 인연을 맺어, 훗날 그를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국회의원 시절에는 보좌관으로, 대통령 재임 때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각각 함께했다.
26
1965년 11월, 19세 때, 노무현은 졸업을 앞두고 있던 초겨울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 학교 교실에서 두 밤을 혼자 지내며 밤새 이를 악물고 떨면서 추위를 견뎠고, 다음 날은 이가 아파 밥을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27
1963년, 16세 때, 노무현은 방학이면 진영으로 돌아와 이미 환갑을 넘긴 부모님이 산기슭을 개간해 고구마를 심고 취로사업에도 나가며 고구마순을 팔아 생계를 잇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저녁은 거의 매일 메밀죽으로 때웠으며 마음속에 큰형님에 대한 원망이 솟구치기도 했다.
28
1963년, 16세 때, 노무현은 가끔 봉화산에 올라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본 가난한 봉하마을의 풍경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한편, 사자바위에 올라서는 화포천에 이르는 진영의 벌판과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를 보며 가난을 버텨내야 할 이유를 찾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29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3학년이 되어서야 그동안 흐트러졌던 정신적 자세를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30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부모님을 모셔야겠다고 마음먹고 정신을 바짝 차려 농협 입사를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31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3학년 3반(1~4반이 취업반)으로 입사시험 대비 아침 보충수업을 받았으며, 부기도 잘하고 일반상식도 많아 정규수업 시간이 임박해서야 교실에 들어가곤 했다.
32
1965년 12월, 19세 때, 노무현은 도별로 한 명씩 뽑는 농협 입사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33
1966년 02월, 19세 때, 노무현은 졸업을 앞두고 부산상고가 알선해 준 어망 생산 회사 '삼해공업'(부산시 해운대구 반여동) 취업을 받아들였다.
34
1966년 03월, 19세 때, 노무현은 네 명의 졸업생과 함께 첫 직장에 입사한 지 한 달 뒤 첫 월급으로 2700원을 받았다 — 당시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 1만 원, 공무원 초봉 6000원 수준에 비해 크게 낮은 금액이었다.
35
2003년~2008년, 56~61세 때,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기간(2003~2008년) 중 부당하게 빼앗긴 정수장학회를 유족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역부족으로 원상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장물"이라 표현하며 "거사 자금을 대주지 않았다고 군사쿠데타 세력이 반지를 밀수품으로 몰아 구속한 뒤 재산을 빼앗는 방식으로 보복했다"고 형님에게 들었던 대로 회고했다.

봉하마을의 돌콩

농협 직원을 꿈꾸다

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