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END : 1924-2023

0~2023.11.28·1화

찰리 멍거 : 모든 것을 남긴 대도시 투자법의 전설

찰리 멍거 : 투자 거장의 마지막 시간과 인생 철학

2025.07.24~2026.01.05·1화

찰리 멍거 : 투자 거장의 마지막 시간과 인생 철학

LIFE BOOK

0~1999.02·1화

찰리 멍거 자네가 옳아! writtien by 재닛 로우

LIFE MONEY CHAPTER

2023.10.05~2025·1화

찰리 멍거

2025년 03월 01일 토요일

찰리 멍거 : 모든 것을 남긴 대도시 투자법의 전설

찰리 멍거는 실수와 실패를 거듭했던 평범한 사람도 워런 버핏 같은 천재 곁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99년 생애를 통해 입증했던 대도시의 투자자였습니다.

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큰 아들의 죽음 전까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LA의 멋쟁이 변호사였고, 첫 번째 아내 낸시와 이혼해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으며, 이혼 위자료로 재산의 반을 날렸다.
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이혼하자마자 큰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병원비로 재산의 나머지 반도 날렸고, 큰 아들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독신자 아파트에 사는 빈털터리 이혼남이었을 때 두 번째 아내를 만났으며, 두 번째 아내의 이름도 낸시였다.
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두 아들을 둔 이혼녀 낸시와 결혼하면서 순식간에 네 명의 아이를 두게 됐고, 세상을 떠난 큰 아들까지 더하면 다섯 명이었다.
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3명의 아이를 낳았고, 이때부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다.
6
2023년 11월 28일, 99세 때, 찰리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으로서 별세했다.
7
1993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언제나 워런 버핏의 옆자리를 지켰으며, 포브스가 선정하는 최고의 부자 리스트에 처음 이름을 올렸을 때 “워런과 하도 오래 지내다 보니 난 그저 밑에 붙어 있는 각주인가 했다.”라고 자폭 농담을 했다.
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젊은 시절 소비왕이어서 두 번째 아내 낸시가 가정의 CFO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파산했을 정도였고, 자신이 가장 고마워하는 사람은 두 번째 아내의 첫 번째 남편이라고 종종 농담했다.
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묻자 “버는 것보다 많이 쓰는 나쁜 버릇부터 고치세요.”라고 답했으며, 이는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였다.
1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한동안 손 대는 투자마다 실패했지만 비극에서 일어서고 실패에서 배우면서 워런 버핏의 옆에 설 수 있는 머니 메이저로 거듭났다.
1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투자 그 자체를 즐긴 워런 버핏과 달리 8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돈벌이를 투자의 목적으로 삼았다.
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투자에 뛰어들었고 99세에 이르러 3조3670억 원에 이르는 평생에 걸친 부를 쌓았다.
13
1959년 00월 00일, 35세 때, 찰리 멍거는 공통된 지인의 디너 파티에서 29세였던 워런 버핏을 처음 만났으며, 두 사람은 모두 오마하 출신으로 동향 선후배 사이였다.
14
1959년 당시 두 사람은 모두 친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LA에서 변호사를 하던 찰리 멍거가 잠시 고향 오마하로 돌아온 건 멘토였던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1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이 벤자민 그레이엄의 대체제를 필요로 하던 때에 등장했다.
1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1년에 인물 전기를 수백 권씩 읽는 팔방미인이었고, 워런 버핏은 그를 벤자민 그레이엄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보았다.
1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기업 정보 분석뿐만이 아니라 인문, 사회, 자연과학까지 모든 지식 체계를 통합하는 삼라만상 투자법으로 투자했다.
1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시즈캔디와 코카콜라처럼 워런 버핏을 상징하는 유명한 투자처를 처음 발견했으며, 세상의 흐름과 사람의 동향을 살펴 기업을 찾아내는 역할을 맡았고 워런 버핏은 해당 기업의 가치를 꿰뚫어봤다.
1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처음부터 주식 투자로 부를 쌓은 워런 버핏과 달리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으며, 뒤늦게 투자업에 뛰어들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버핏과 비슷한 투자 인사이트를 얻었다.
20
1960년 당시 LA인구는 80만 명 수준이었다. 지금 LA 인구는 400만 명이다. 하루에 1000명 씩 LA 인구가 증가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주택 개발이 호황이었다.
2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상업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가 부동산PF에 뛰어들어 LA 이곳 저곳의 주택 단지 개발에 참여했다.
2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1959년 워런 버핏을 처음 만난 뒤에도 10년 이상 워런 버핏과의 주식 투자보다 독자적 부동산 투자에 몰두했고, 워런 버핏은 그가 지은 주택 단지들을 멍거빌이라고 불렀다.
2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멍거빌의 부동산PF를 성공시키면서 LA와 캘리포니아 일대에 투자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2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네브래스카 사람들 위주였던 워런 버핏의 투자 조합에 서부 부자들의 네트워크를 연결해줬으며, 1968년 13명으로 결성된 코로나도 투자 모임은 60명까지 늘어났고 대부분 미국의 거부가 됐다.
2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워런 버핏과 함께 60년 동안 연평균 20% 수익률을 유지해 380만%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자기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줘 존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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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블루칩에서부터 될 성 부른 회사를 찾아내고 워런 버핏은 회사의 투자 가치를 계산하는 콤비플레이를 시작했다.
2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과 함께 블루칩의 풍부한 유동성을 탐내 블루칩을 인수했고, 쌓여있는 현금을 활용해서 시즈캔디, 웨스코 파이낸셜, 버펄로 이브닝뉴스, 프리시전스틸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2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가족과의 외식을 즐기면서 블루칩 쿠폰을 모았고, 블루칩 투자를 워런 버핏에게 알려줬다.
2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과 함께 시즈캔디부터 나쁜 회사를 싼 가격에 사서 좋은 회사로 만드는 투자에서 좋은 회사를 좋은 가격에 사서 더 좋은 회사로 만드는 투자법으로 전환했다.
30
1972년 시즈캔디를 인수한 가격은 2500만 달러였다. 원래 시즈캔디 창업주 가족이 요구한 가격은 3000만 달러였다. 처음 협상이 결렬됐었지만 창업주 가족이 다시 2500만 달러에 합의했다. 사실 2500만 달러도 비싸게 샀다는 평가였다. 매출과 영업이익을 고려한 장부가의 3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3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과 함께 큰 추가 투자 없이 지속적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시즈캔디의 온고잉 비즈니스에 집중했고, 시즈캔디 투자는 코카콜라 투자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됐다.
3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이 보지 못한 코스트코 투자를 찾아냈고 평생 동안 코스트코 투자를 자랑스러워했다.
3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비행기 납치를 당해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물으면 코스트코의 위대함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농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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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도 코스트코에 투자하도록 열심히 설득했지만 워런 버핏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3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코스트코가 회원제이면서 저가 판매 방식이고 창고형 소매점이라 저비용 구조라는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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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와 코스트코로 가족의 가장 큰 부를 쌓았다.
37
“그는 모든 것을 남겼다.”
3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찰리 멍거는 평범한 사람도 워런 버핏 같은 천재의 곁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99년 생애를 통해 입증했다.

찰리 멍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