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1970.04.13~2026.08.28·2화

케빈 워시 : 도널드 트럼프의 제롬 파월 지우개

케빈 워시 : 2026년 8월 29일 업데이트

잭슨홀 데뷔전

2026.05.13~2026.08.28·1화

케빈 워시 : 잭슨홀 데뷔전에서 물가 우려 강조

2026년 08월 29일 토요일

케빈 워시 : 2026년 8월 29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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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월 13일, 0세 때, 케빈 워시는 뉴욕주 올버니의 부촌 라우던빌에서 유대인 기업인 아버지 로버트 워시와 기자인 어머니 주디스 워시 사이에서 세 자녀 중 막내 아들 케빈 맥스웰 워시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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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7세 때, 케빈 워시는 뉴욕주 레이섬의 셰이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공화당에 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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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0세 때, 케빈 워시는 대학생 시절 백악관 법률고문실과 연방하원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학생회 활동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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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2세 때, 케빈 워시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통계학 중점)을 전공해 공공정책학 학사 학위를 우등으로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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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2세 때, 케빈 워시는 스탠퍼드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하버드 로스쿨 진학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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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5세 때, 케빈 워시는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Cum Laude)으로 졸업하며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시장경제학 단기 코스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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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5세 때, 케빈 워시는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실무 대신 뉴욕의 모건 스탠리 인수합병(M&A) 부서에 입사해 금융 경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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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0세 때, 케빈 워시는 조지 W. 부시의 대선 캠페인에 1000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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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0세 때, 케빈 워시는 모건 스탠리에서 채권·주식 파이낸싱과 자본시장 거래 구조화를 지원하는 핵심 인물로 부상하며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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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1세 때, 케빈 워시는 모건 스탠리에서 입사 6년 만에 상무이사(Executive Director)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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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31세 때, 케빈 워시는 모건 스탠리 본사에서 근무하던 중 세계무역센터 붕괴를 목격했고, 이 경험을 계기로 민간 부문을 떠나 공직으로 투신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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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2세 때, 케빈 워시는 공직 입문을 위해 7년간 근무한 모건 스탠리를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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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2세 때, 케빈 워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사무총장 겸 대통령 경제정책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돼 금융시장·은행·증권사 규제 및 소비자 보호 정책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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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2세 때, 케빈 워시는 사반스-옥슬리법 제정 과정에서 행정부 측 실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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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2세 때, 케빈 워시는 스탠퍼드에서 만난 에스티 로더 컴퍼니 상속녀 제인 로더와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로더 가문 별장에서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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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4세 때, 케빈 워시는 조지 W. 부시의 재선 캠페인에 추가로 1000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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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35세 때, 케빈 워시는 부시 행정부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공석에 케빈 워시 임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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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7일, 35세 때, 케빈 워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경제학자 랜달 크로스너와 함께 연방준비제도 이사로 지명돼, 역대 최연소 이사 기록을 세웠다. 이 시점 정부윤리청 신고서에는 부부 자산이 6530만 달러로 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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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4일, 35세 때, 케빈 워시는 상원 은행주택도시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월가 경력이 연준 통화정책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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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6일, 35세 때, 케빈 워시케빈 워시와 크로스너의 지명을 20대 0으로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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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7일, 35세 때, 케빈 워시는 음성표결로 케빈 워시의 연준 이사 임명을 최종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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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4일, 35세 때, 케빈 워시는 딕 체니 부통령 주재로 아이젠하워 행정사무소 빌딩에서 연준 이사 취임 선서를 하며 백악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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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35세 때, 케빈 워시는 FOMC 회의에 처음 참석해 시장 유동성 위험에 대해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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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5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 이사로 재직하며 헤지펀드 규제 강화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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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5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 이사로 재직할 당시 민감하고 모호한 사안은 한 번 더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체크 스윙' 원칙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인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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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36세 때, 케빈 워시는 세계 금융위기 공포가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시장 유동성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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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36세 때, 케빈 워시는 FOMC 회의와 별도 연설을 통해 금융 시장의 유동성 문제와 자산 가격 거품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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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7세 때, 케빈 워시는 벤 버냉키 의장의 양적완화 정책이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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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7세 때, 케빈 워시는 FOMC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장기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동료 이사들에게 기존 투자은행 비즈니스 모델이 더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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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7세 때, 케빈 워시는 베어스턴스의 JP모건체이스 매각 과정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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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38세 때, 케빈 워시는 NYU 로스쿨 글로벌 경제정책 포럼에서 유동성 부족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며 신용 중개 기능 붕괴가 핵심이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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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38세 때, 케빈 워시는 인플레이션이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매파적 성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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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38세 때, 케빈 워시는 금융위기 절정기에 연준과 월스트리트 은행권 사이의 핵심 연락책 역할을 수행하며 리먼 브라더스 파산 대응과 AIG 구제금융, 모건 스탠리의 은행지주회사 전환(특례 면제 승인 포함) 과정에 관여해 회사를 파산 위기에서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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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8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이 채권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 정책 도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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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8세 때, 케빈 워시는 벤 버냉키 의장의 지시로 시스템적 금융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거시 건전성' 규제개혁 위원회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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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8세 때, 케빈 워시는 포춘지가 선정한 '40세 미만 영향력 있는 40인' 20위에 이름을 올렸다. 
39
2009년 9월, 39세 때, 케빈 워시는 고용 지표 회복을 기다리기보다 연준이 선제적으로 유동성 회수(출구 전략)에 나서 금리 인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매파적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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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39세 때, 케빈 워시는 공개 연설과 인터뷰에서 위기 상황이 완화된 뒤에도 중앙은행이 계속 위기처럼 행동하면 시장 왜곡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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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0세 때, 케빈 워시는 공개 연설에서 대차대조표의 지속적 확대가 미래 통화정책 여력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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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40세 때, 케빈 워시는 뉴욕 비즈니스 이코노믹스 협회 연설에서 금융위기의 원인이 시장 실패뿐 아니라 규제 실패와 정부 정책 오류에도 있다며 각국의 규제 개혁 공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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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40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의 2차 양적완화(QE2)에 회의론을 제기하며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통화정책만으로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지만, 이사회 표결에서는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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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40세 때, 케빈 워시는 대차대조표를 점진적으로 축소·폐지해 양적완화에 따른 기대인플레이션 심리를 잡고 금리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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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0일, 40세 때, 케빈 워시는 QE2 정책 기조에 반발해 임기를 남겨두고 사임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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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1세 때, 케빈 워시는 마크 앤드리슨과의 디너파티에서 비트코인 백서를 처음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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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31일, 40세 때, 케빈 워시는 QE2 정책에 반발해 잔여 임기 7년을 남기고 연준 이사직에서 공식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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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1세 때, 케빈 워시는 퇴임 전후 발언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재정정책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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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1세 때, 케빈 워시는 퇴임 후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의 방문연구원 겸 경영대학원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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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1세 때, 케빈 워시는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에서 파트너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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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6일, 42세 때, 케빈 워시는 미국 물류기업 UPS의 이사회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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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9일, 44세 때, 케빈 워시는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함께 자산 가치만 상승하는 경제 구조의 위험성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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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6세 때, 케빈 워시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경제 자문 겸 '전략정책포럼' 멤버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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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6세 때, 케빈 워시는 본인과 배우자의 자산 총액이 약 20억 달러로 알려졌고, 배우자 제인 로더의 순자산은 포브스 기준 20억 달러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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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0일, 47세 때, 케빈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과 연준 의장직 면접을 봤으나, 높은 금리·인플레이션 매파 견해를 고수해 제롬 파월에게 밀리는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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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8세 때, 케빈 워시는 재닛 옐런의 연준 의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후임 후보로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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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8세 때, 케빈 워시는 '비트코인 변동성의 의미'라는 글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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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9세 때, 케빈 워시는 하버드 동문인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설득으로 쿠팡 사외이사로 영입돼,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과 글로벌 경영 전략 수립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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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5일, 49세 때, 케빈 워시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으며, 트럼프는 그를 연준 의장으로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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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50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이 그해 통화정책 검토에서 최대 고용의 입법 권한을 '광범위하고 포용적인 목표'로 재정의하려 한 것을 비판했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약 1.72%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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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51세 때, 케빈 워시는 민주당이 통과시킨 1.9조 달러 규모의 ARPA 법안이 인플레이션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62
2021년 4월 21일, 51세 때, 케빈 워시는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과다한 화폐 발행과 정부의 과다 지출이 겹칠 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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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2세 때, 케빈 워시는 존 코건과 함께 계몽주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논문을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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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2세 때, 케빈 워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소매용 CBDC가 미국의 프라이버시 정신에 반한다고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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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4세 때, 케빈 워시는 현재를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 경제와 연준 기관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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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4세 때, 케빈 워시는 트럼프 퇴임 후 입장을 바꿔, 그해 가을 연준의 금리 인하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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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54세 때, 케빈 워시는 AI가 미국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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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54세 때, 케빈 워시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차기 행정부의 재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고, 이후 트럼프가 다른 후보들에 대한 우려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재무장관·연준 의장 후보로 함께 거론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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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54세 때, 케빈 워시는 AI 주도 디스인플레이션과 낮은 정책금리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철학에 적극 동조하기 시작했고, 연준이 '녹색화' 그룹에서 탈퇴하며 입장을 바꾼 데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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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IMF 연설 또는 그룹 오브 서티(G30) 컨퍼런스 연설에서 현대 중앙은행이 기후변화 등 '금지품목'을 거래하며 정치화되었다고 비판하고, 연준의 전면적 개혁('레짐 체인지')과 제도적 중립성 회복, '최대 고용'의 '포용적 고용' 재정의에 대한 문제 제기, 데이터·경제전망 과의존 관행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 동일 발언이 자료에 따라 IMF 연설과 G30 연설로 각각 다르게 표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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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스승인 존 테일러 교수와의 인연이 있는 스탠퍼드 후버연구소 연설에서 테일러 준칙으로의 회귀를 강력히 주장하며 연준의 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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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과 백악관 간의 긴밀한 조정을 옹호해 시장에서 트럼프의 '통화정책 쌍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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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스콧 베센트와 함께 제롬 파월의 후임 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공식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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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CNBC·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통해 연준의 근본적 체제 변화인 '레짐 체인지'와 목표 물가 3% 상향 가능성, 재무부와의 새로운 협약 필요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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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AI 혁명이 생산성을 높여 인플레이션 없는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며 '재발명된 리더'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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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폭스 비즈니스에 출연해 연준의 금리 정책을 비판하며 강력한 인플레이션 대응을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고려 중인 차기 연준 의장 최종 후보 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77
2025년 11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 위원들을 향해 "머리를 깨버려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던지며 연준 개혁의 저승사자를 자처했다.
78
2025년 11월 16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 "The Federal Reserve's Broken Leadership"에서 AI를 "우리 생애 가장 생산성을 높이는 물결"로 규정하고, AI발 생산성 향상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완충 장치이자 디스인플레이션 효과를 낼 수 있어 금리 인하를 정당화할 수 있다며, 연준이 전통적인 성장-인플레이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고 중앙은행가들이 AI에 베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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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55세 때, 케빈 워시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미국 리더십에 맞서도록 위치시키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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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8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제롬 파월 의장의 금리 동결 결정 직후 재무부와 연준의 '새로운 협약'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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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9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갖고 연준 의장 후보 인터뷰를 완료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의 지명 배팅 확률이 93%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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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제롬 파월의 뒤를 이을 제17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자로 공식 지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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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지명 직후 이해상충 문제 해결을 위해 보유 중이던 약 130억 원 상당의 쿠팡 주식을 전량 매각하며 사외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84
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공직 인준을 앞두고 본인과 배우자의 자산 총액을 27억 달러로 신고했다.
85
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가 전해지자 금융시장의 긴축 우려로 국제 금·은 가격이 폭락했다.
86
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노벨상 수상자 등 학계로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칠 정치적 동물"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험난한 인준 투쟁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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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central casting에서 나온 것 같다"는 평가에, 그랬다면 더 나이 들고 회색 머리에 시가를 물고 나타났을 거라고 유머러스하게 응답했다.
88
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의 큰 대차대조표가 위장된 재정정책이라고 판단하며, 중앙은행이 위기 시엔 의혹의 여지를 두고 봐야 하지만 평상시 통화·규제 정책 수행에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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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확정되면 개혁 지향적 연준을 만들고, 최고 인재들이 최고의 업무를 수행할 환경을 조성하며, 더 나은 데이터와 새로운 이해로 실제 인플레이션율을 파악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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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달러가 글로벌 경제의 핵심이며 달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재무장관의 업무, 금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연준 의장의 업무라고 역할을 구분해 설명했다.
91
2026년 1월 31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와 트럼프의 정책 대리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인준 국면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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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1일, 55세 때, 케빈 워시가 지배구조위원장으로 있던 쿠팡에서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고 로저스 CEO가 경찰 조사를 받으며, 이 사안이 그의 인준 과정과 리스크 관리 능력을 둘러싼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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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일, 55세 때, 케빈 워시는 '유동성 축소'를 예고하는 행보로 삼성전자 등 기술주와 경기 민감주를 포함한 글로벌 자산 시장의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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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5세 때, 케빈 워시는 연방 판사가 파월 수사 관련 대배심 소환장 여러 건을 기각했음에도 지니 피로 연방검사가 수사를 계속 추진해 자신의 지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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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4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69페이지 분량의 재산신고서에 솔라나·dYdX·옵티미즘·폴리마켓·대퍼랩스 등 20개 이상의 크립토 관련 자산을 포함해 순자산 1억 3천만 달러를 신고하며 연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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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6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워런 상원의원으로부터 1억 달러 이상의 투자 내역 공개를 거부했다는 지적을 받고, 해당 자산들을 취임선서 전 처분하기로 한 합의를 재확인했다.
98
2026년 4월 17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인준 확정 시 취임 선서 전에 금융자산 대부분을 매각하고, 확정 후 90일 이내에 문제가 된 자산을 처분하며, 매각 대금은 현금이나 국채에 가까운 허용 자산에 두기로 서명된 협정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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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0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매각 후 현금·국채 등 허용 자산에만 투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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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0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친트럼프 인사라는 점 때문에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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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1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상원 은행주택도시위원회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연준 포트폴리오 축소를 포함한 개혁안을 지지하고 자신이 '완전히 독립적인' 의장이 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할 수 있는 금리 인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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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1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청문회에서 최근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중앙은행의 무분별한 국채 매입을 통한 시장 유동성 공급을 지목하고, 국채 매입·만기 연장을 하지 않는 대차대조표 축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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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1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청문회에서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와 생산성 향상이 인플레이션 없이도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게 하며, 점진적 공급 확대에 따른 물가 하락 시 금리를 인하해도 인플레이션 부담이 적은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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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1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청문회에서 2021~2022년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금리 정책을 연준의 정책적 실패로 규정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준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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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1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청문회에서 연준의 독립성과 달러 위상 강화를 강조하고, 기존 핵심 PCE 대신 극단적 가격 충격을 제외한 절사평균(트리밍 평균) 물가를 선호한다고 밝혔으며, 연준은 CBDC를 발행할 권리가 없고 이는 나쁜 정책이라고 답했다.
106
2026년 4월 21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청문회 직후 미국 법무부가 파월 의장에 대한 형사절차를 종료한다고 발표하면서 인준 확인 절차에 청신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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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2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종전의 이론과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뉴 노멀' 시대에는 선제안내(포워드 가이던스)가 오히려 시장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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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6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상원 공화당 의원들이 파월 수사에 대한 불만을 공개 표명하는 가운데 틸리스 상원의원의 반대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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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9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톰 틸리스 상원의원이 반대를 철회한 뒤 상원 은행주택도시위원회에서 13대 11의 정당별 표결로 인준안을 통과시켜 본회의 진출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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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3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미국 상원에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인준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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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2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연준 의장 겸 이사로 취임 선서를 했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만장일치로 그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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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7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의장 취임 후 첫 FOMC 회의를 주재하며 기준금리를 3.50~3.75%로 만장일치 동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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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7일, 56세 때, 케빈 워시가 이끈 FOMC는 정책결정문에서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해온 '완화 편향' 문구를 삭제해, 다음 조정이 인상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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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7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기자회견에서 이날 공개된 수정 경제전망(SEP) 점도표에 자신의 금리 전망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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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9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기자회견에서 향후 금리 인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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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취임 후 100일째를 앞둔 시점에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주최로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심포지엄(주제: "금융 혁신: 결제 및 정책에 대한 시사점")에서 의장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개막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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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잭슨홀 연설에서 "우리의 책무 중 하나인 물가 안정 측면에서 볼 때 관련 지표들이 더욱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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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같은 연설에서 "기저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향해 명확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65개월 동안 지속된 높은 물가의 책임은 온전히 중앙은행에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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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다만 "중기 인플레이션 기대 지표들은 대체로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현재의 금융 여건을 "긴축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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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연설에서 인공지능(AI)이 생산성과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짚으며, 이와 관련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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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연설에서 정상적 경제 상황에서 선제안내(포워드 가이던스)를 최소화하고 실시간 데이터에 기반해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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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는 혼조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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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8일, 56세 때, 케빈 워시가 매파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은 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기준 9월 FOMC 금리인상 확률이 45.7%(10월 51%, 12월 74%)로 반영됐다.

케빈 워시 : 도널드 트럼프의 제롬 파월 지우개

케빈 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