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애플

1960~1968·1화

1960년 - 1967년 : 잡스 가족의 사과나무집

스티브 잡스 : 애플 창립 50주년과 스티브 잡스의 유산

2025.11.12~2026.04.06·1화

스티브 잡스 : 애플 창립 50주년과 스티브 잡스의 유산

LIFE COUNT

0~2011.10.05·1화

스티브 잡스 : 스티브 잡스의 경험과 통찰

라이프 브리핑

0~2011.10.07·2화

스티브 잡스 : 스티브 잡스의 성장 과정

스티브 잡스 : 스티브 잡스의 성장 이야기

스티브 잡스 : 스티브 잡스의 경험과 통찰

잡스는 실패와 성공을 통해 비즈니스 전략을 재정립했다.

1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청중이 원하는 주제로만 곧바로 질의응답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먼저 10~15분 동안 NeXT의 근황과 새로운 컴퓨터 회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자신의 실수와 상처(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청중에게 더 유용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2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국방부 CIO인 폴 스트라스먼과 최근에 대화를 나누며 걸프전의 교훈이 '최고의 소프트웨어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임을 파악했다.
3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폴 스트라스먼이 국방부에 가기 전 저술한 '컴퓨터의 비즈니스 가치'라는 두껍고 지루한 책을 끝까지 읽어내고 그 안에서 유용한 통찰을 발견했다.
4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책을 통해 성공한 기업과 덜 성공적인 기업 모두 정보 기술에 수익의 2%를 지출한다는 직관에 반하는 조사 결과를 확인했다.
5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덜 성공적인 기업은 관리 생산성에 투자하고 성공적인 기업은 운영 생산성 애플리케이션에 투자한다는 내용을 읽고 큰 불쾌감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6
1984년 01월 24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인생 첫 10년을 바쳐 만든 PC와 Mac이 운영 생산성이 아닌 관리 생산성 향상에만 기여했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깨닫고 좌절감을 느꼈다.
7
1990년 00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의 운영 파트를 자동화할 수 있는 앱을 동네 컴퓨터 가게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PC와 Mac이 운영 생산성을 공략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8
1984년 01월 24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Macintosh를 출시할 당시 비트맵 디스플레이와 레이저 프린터는 예상했지만, 데스크톱 퍼블리싱이 Mac의 가장 강력한 강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실패를 겪었다.
9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Mac 출시 후 9~12개월이 지나서야 데스크톱 퍼블리싱 산업이 데스크톱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뒤늦게 파악했다.
10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존 마케팅 전략을 고수할 수 있었지만 전체 마케팅 및 비즈니스 전략을 데스크톱 퍼블리싱에 집중하도록 변경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이것이 결국 Mac을 미국 기업 시장에 진입시키는 트로이 목마가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11
1985년 09월 12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를 처음 시작할 당시 자신들이 맞춤형 운영 애플리케이션 구축에 어떤 경쟁 우위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12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혁신적인 객체 지향 소프트웨어인 NextStep을 개발할 당시 타겟 고객을 Lotus, Adobe, Word Perfect 등 패키지(shrink-wrapped) 앱 개발자로 설정했다.
13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전략을 전면 수정한 결과 회사를 작년 대비 약 4배 성장시키는 성과를 달성했다.
14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연 중 청중들에게 Mac 사용 여부와 NeXT 사용 여부를 손들어 보게 한 뒤, NeXT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확인하고 이 불리한 비율을 바꾸고 싶다고 발언했다.
15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경쟁사인 Sun 시스템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지만 일반인도 쉽게 다룰 수 있는 NextStep 소프트웨어를 앞세워 그들을 시장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16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Sun 시스템을 고려 중인 기업들을 찾아가 경쟁사가 2년 걸릴 앱을 Next에서는 90일 만에 구축할 수 있어 엄청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1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숙적인 Sun이 NeXT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빨리 시도할수록 비용이 적게 들겠지만 이미 자신들을 꺾기엔 불가능한 시점을 지났다고 단언했다.
18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는 18개월마다 변하기 때문에 경쟁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드웨어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다고 분석했다.
19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과거 마이크로소프트가 Mac을 따라잡는 데 8~9년이 걸린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NeXT의 진정한 경쟁자가 나타나려면 최소 4~5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20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현재 영업 사원 수나 광고 예산 면에서 경쟁사(Sun 등)와 규모로 경쟁할 수 없다는 회사의 한계를 강연 중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경험을 했다.
21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당장 경쟁사와 정면 승부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3~4년 동안 NeXT를 10억~2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먼저 성장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경쟁 제품이 나오기 전에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만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2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현재 자신들의 삶을 고객과 시간을 보내고 NextStep을 개선하여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데 온전히 쏟아붓고 있다고 발언했다.
23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청중들의 출신 분야를 조사하던 중 다수가 컨설팅 분야에서 왔다고 답하자 "내 두뇌는 낭비하기엔 너무 중요하다"며 컨설팅 출신을 깎아내리는 농담을 던져 가벼운 충돌을 유발했다.
24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컨설턴트가 당신의 시스템을 사용해 단기간에 앱을 구축해주는 것이 왜 나쁘냐"는 한 청중의 항의성 질문을 받았다.
25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청중의 항의를 부드럽게 넘길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유용한 컨설턴트는 NeXT 컴퓨터의 판매를 돕는 사람들뿐이라고 뼈 있는 농담으로 대답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지 도구만 빌려 쓰고 과시하는 컨설팅 방식에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6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컨설턴트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컨설팅이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방금 전의 입장을 번복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청중과의 갈등을 진정시키고 무언가를 오랫동안 소유하며 책임지지 않는 것의 한계를 진지하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2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Sun이나 타 대기업과 비교해 직접적인 영업사원 수와 광고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뼈아픈 실패와 열세를 군말 없이 인정했다.
28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규모의 한계로 당장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 향후 3~4년간 철저히 제품 개선에 집중해 압도적인 품질 우위를 확보한다는 장기 전략을 선택했다. 이유는 규모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29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전략 달성을 위해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NeXTSTEP 운영체제를 개선하는 데 할애했다.
30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세운 전략적 기반이 이해가 되는지 청중들에게 질문하며 반응을 살피는 강연 소통을 진행했다.
31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연 도중 월스트리트 출신 청중들이 손을 들자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32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조 회사 출신 청중들이 손을 들자 "훌륭하다"며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33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컨설팅 회사 출신 청중들이 손을 들자 갑자기 "나쁘다", "내 마음은 낭비하기엔 너무 중요하다"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34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안만 하고 실행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을 방관할 수 있었지만, 이를 꼬집어 "실수로 인한 상처를 입어봐야 배울 수 있다"며 컨설턴트들의 한계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행동을 선택했다. 이유는 책임 없는 제안은 배움과 가치 창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5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본인이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직접 경험하지 않은 컨설팅 지식을 '스테이크' 대신 '2차원적인 바나나 사진'에 비유하여 비판했다.
36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불황 시기에 컨설턴트들은 고정 자산이 아닌 가변 비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고당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3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STEP을 다른 플랫폼에 이식해 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을 자체 플랫폼 고수 정책을 핑계로 거절할 수 있었지만, 이를 전격 수락하여 인텔 486 기반 플랫폼으로 포팅하는 작업을 선택했다. 이유는 고객의 강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38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타사 하드웨어에 포팅되는 486용 NeXTSTEP을 자사 하드웨어용과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고 완전히 동일한 앱, UI, 개발 환경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39
1993년 05월 25일, 3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인텔 486용 NeXTSTEP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995달러로 책정하고 정식 출시에 박차를 가했다.
40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신규 소프트웨어를 여러 파트너 회사들에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OEM 공급하는 계약 체결을 결정했다.
41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텔, 노벨 등 수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자사를 돕기 위해 몰려드는 현상을 겪었다. 이유는 파트너사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을 두려워하며 NeXTSTEP을 유일한 대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42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Sun 장비 500대를 구매했던 기존 고객들로부터 "장비를 바다에 버리기 싫으니 NeXT 소프트웨어를 돌리게 해달라"는 절박한 요청을 받았다.
43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Sun 장비로의 포팅을 시도했으나, Sun 측이 "돕느니 차라리 눈에 바늘을 찌르겠다"며 협력을 거부하는 극심한 갈등과 견제에 직면했다.
44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Sun의 적대적인 반응에 굴복해 포팅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포팅을 강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그것이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거절한 Sun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방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5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 사업을 접고 순수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하라는 시장의 압박을 수용할 수 있었지만 이를 거절하고 하드웨어 제조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자체 하드웨어 부문이 최고의 장비를 만들 수 있고 여전히 10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46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향후 타사 플랫폼 구동 비율이 압도적으로 늘어나 자사 하드웨어 판매 비중이 20~25%로 쪼그라들더라도, 전체 시장 파이가 커지면 하드웨어 절대 판매량은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사업 예측을 발표했다.
4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 영업 조직 130명이 업무 시간의 90%를 소프트웨어 판매에 쏟고 하드웨어 판매에는 단 10%만 투자하도록 극단적인 영업 비중을 지시했다.
48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존 컴퓨터 유통 채널이 혁신적인 제품의 새로운 수요를 전혀 창출하지 못하고 단순 주문만 처리하는 예상치 못한 한계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49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존 유통 채널이 전화와 페덱스 같은 효율적인 시스템에 밀려 완전히 파괴되고 있는 시장의 변화를 포착했다.
50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유통망에 계속 의존할 수 있었지만, 이를 거절하고 13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고비용 직접 영업 조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고객의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듣고 혁신적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시연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다.
51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접 영업 조직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렴한 소프트웨어 단독 판매 대신, 평균 5,000달러에 달하는 자사 하드웨어를 필수적으로 함께 판매하는 전략을 굽히지 않았다.
52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품이 평범한 개선에 그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단가가 낮은 시스템 소프트웨어 전업 회사는 방대한 시장 교육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53
1992년 01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의 주요 경쟁사로 Sun Solaris, Microsoft, Taligent 3곳을 대중 앞에서 공식 지목했다.
54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때 최고의 유닉스였던 Sun의 소프트웨어가 객체 지향 기술을 도입하지 않아 완전히 뒤처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평가절하했다.
55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과거 운영체제 OS/2를 완전한 실패작이었다고 조롱 섞어 비판했다.
56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NT 운영체제를 단순한 'Windows의 배관 공사'라고 폄하하며, 객체 지향성 부재와 끔찍한 개발 환경 탓에 맞춤형 앱 시장에서 결국 외면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5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IBM과 Apple이 합작해 1995년 출시 예정인 Taligent 프로젝트를 자사를 위협할 최초의 '진정한 경쟁자'로 인정했다.
58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Taligent라는 강력한 연합군의 등장을 심각한 위협으로 느끼고 배척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이를 매우 환영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유는 거대 기업들이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중요성을 공인해 줌으로써 NeXT의 방향성이 옳았음을 시장에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59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가 3~4년의 기술적 우위를 지니고도 훗날 Taligent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면, 그것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이 제 발등을 찍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일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60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STEP을 단순한 운영 체제가 아닌 포괄적인 '운영 환경'으로 정의하고, 유닉스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61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STEP에서 개발된 맞춤형 앱이 Mac이나 Windows에서는 절대 구동되지 않는다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시스템의 한계를 순순히 인정했다.
62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7~8년간 일했던 마이크 슬레이드를 NeXT의 마케팅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63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1995년경 첫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탈리전트(Taligent)를 NeXT의 최초 진정한 경쟁자로 지목하고 이들의 존재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64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IBM과 애플이 탈리전트를 통해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중요성을 인정해 준 덕분에, 현재 해당 기술을 유일하게 보유한 NeXT가 오히려 엄청난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65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향후 3~4년간 NeXT가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분야를 독점할 것이라 확신하며, 만약 탈리전트와의 경쟁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철저히 NeXT 스스로의 자멸(shot ourselves in the foot) 때문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66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Step 내에 유닉스 운영 체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며, NextStep을 단순한 운영 체제가 아니라 운영 환경(Operating Environment)으로 포지셔닝했다.
6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Step 환경에서 코드를 다른 환경보다 더 빨리 작성하게 만드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대신 개발자가 작성해야 할 코드의 절대량을 다른 환경의 20% 수준으로 대폭 줄이는 전략으로 노선을 번복했다.
68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이 코드를 적게 작성하고 가장 쉽게 유지보수할 수 있도록, NeXT가 지난 6년 동안 축적해 온 객체(Objects)들을 NextStep과 함께 배포했다.
69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NeXT 전용 하드웨어에만 NextStep 구동을 제한할 수 있었지만, 여러 하드웨어 플랫폼에서 실행되도록 486으로 NextStep을 이식(Porting)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앱 개발자들이 풍부한 객체 커뮤니티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70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양한 플랫폼 지원으로 인해 운영체제 파편화(fracturing)가 발생할 것이라는 청중의 지적을 부인할 수 있었지만 파편화가 일부 발생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이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과도기(transition)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71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중대형 기업 고객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 NeXT의 커스텀 애플리케이션 개발 능력을 트로이 목마처럼 전면에 내세웠다.
72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연에 참석한 청중들에게 졸업 후 계획을 묻고, 기술적 지식을 갖춘 훌륭한 인재들을 위한 일자리가 항상 열려 있다며 즉석에서 채용을 제안했다.
73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받고, 자신은 평생을 애플에서 보내고 싶었기에 자신의 퇴사로 인해 자신과 애플, 그리고 고객 모두가 패배자가 된 뼈아픈 결과를 초래했다고 회고했다.
74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회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맥(Mac)을 출시할 때마다 매우 행복해하며, 특히 파워북(Power Books)을 괜찮은 제품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75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과거 애플 내부에서 차세대 진지한 컴퓨터 회사가 되려는 진영과 컴퓨터계의 소니(Sony)가 되려는 진영이 극심하게 갈등했으며, 결국 소니가 되려는 진영이 승리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76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데스크톱 파워 유저를 위한 고급 하드웨어 자원을 줄이고 휴대용 기기와 소비자 제품으로 방향을 튼 탓에, 데스크톱 시장 상위 3분의 1을 차지하는 사용자들이 극심한 갈증을 느끼는 상황을 NeXT의 큰 기회로 분석했다.
7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시스템 7(System 7)이 혁명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점진적 개선에 그치고, IBM의 OS/2가 새로운 차원을 열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완전히 실패하는 상황을 관측했다.
78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대기업들이 미션 크리티컬 커스텀 앱에 대해 요구하는 바를 수렴한 후, 마케팅 부사장 마이크 슬레이드와 긴밀히 협력하여 NeXT의 마케팅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정의했다.
79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연 기준 약 3개월 전) 하드웨어 설계, 엔지니어링, 제조, 전 세계 유통 및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하드웨어 부서(Hardware Division)를 신설했다.
80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지붕 아래에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두 가지 비즈니스를 모두 성공시키기 위해, 소프트웨어 부서(Software Division)를 명확히 분리하여 창설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81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텔에서 12년간 유럽 재무와 내부 감사 등을 맡았던 마르셀 가니(Marcel Ghani)를 새로운 CFO로 영입했다.
82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연 시점으로부터 약 1주일 전, 피터 반 카일렌버그(Peter Van Kylinberg)를 신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했다.
83
1978년 00월 00일, 2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Lisa) 컴퓨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약 1억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며 새로운 기술적 창문을 여는 것이 매우 비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84
1988년 00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첫 제품인 큐브(Cube)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출시한 탓에 1만 대만 판매되며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85
1990년 00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큐브의 판매 실패 이후 개발 과정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기존 전략을 수정하고 제품 방향을 번복해야 했다.
86
1983년 01월 19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Lisa) 프로젝트가 대규모 실패로 끝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매킨토시(Macintosh) 개발로 방향을 대폭 수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87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2와 애플3의 개발 과정에서는 리사와 매킨토시의 경우와 정반대로 경로 수정을 하는 모순된 번복을 경험했다.
88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창업 초기에 제품을 오직 고등 교육 기관에만 판매하도록 제한하는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고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89
2007년 01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제품의 마진을 남길 수 있었지만 최대한 큰 폭으로 할인하여 고등 교육 기관에 매킨토시를 판매하는 선택을 했다. 이유는 대학이 제품 개선에 대한 훌륭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향후 채용할 수 있는 똑똑한 인재들을 교육하는 훌륭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90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Next)에서 미국 내 약 350개 캠퍼스에 컴퓨터를 공급하여 워크스테이션 판매 1위와 매킨토시에 이은 전체 컴퓨터 판매 2위를 달성했다.
9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MIT의 프로젝트 아테나(Project Athena)가 상업적 소프트웨어 개발과 학계 환경의 불일치로 인해 연구 프로젝트로만 남고 상업화에 실패했다고 분석하며, 넥스트는 대학의 공용 컴퓨터 랩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고 밝혔다.
92
2007년 03월 07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원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본능적으로 즉시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었지만, 향후 10년을 함께할 팀을 구축하기 위해 직원이 실수로부터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장기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자신의 경영 방식을 바꿨다.
93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경영진 사이에서 의견 불일치가 있을 때 억지로 동의를 강요할 수 있었지만, 8명으로 구성된 넥스트의 정책 팀(policy team) 멤버들이 방에 모여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유는 억지로 동의하게 하면 결국 나중에 갈등이 표출되기 때문이었다.
94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장기간에 걸쳐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길을 고집하는 직원에게 "우리는 의견이 맞지 않으니 당신은 팀에서 나가라"고 말하며 해고하는 경험을 했다.
95
1989년 0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업계에서 가장 고도로 자동화된 공장과 우수한 VLSI 디자인 그룹을 활용하여 경쟁사인 선(Sun) 제품의 절반 가까운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96
1988년 00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시장 추세에 맞춰 가볍고 작은 휴대용 기기를 만들 수 있었지만, 오히려 휴대성을 포기하고 파워와 성능에 최적화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넥스트의 주요 고객들이 휴대성과 상극인 빠른 속도, 대용량 스토리지와 메모리, 고속 네트워킹, 그리고 다중 작업을 위한 고품질 대형 컬러 디스플레이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9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재직 시절 매킨토시 공장의 설계, 건설, 운영을 직접 주도하여 당시 업계 최고의 공장을 만들어냈다.
98
1984년 01월 24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매킨토시 공장을 시찰하던 중, 수천만 달러를 들여 도입한 거대한 소형 부품 저장·검색 시스템과 번인(burn-in) 시스템이 결국 돈을 묶어두고 품질 피드백을 지연시키는 '최첨단 창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뼈아픈 실수를 경험했다.
99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공장을 설계할 때 일반적인 방식대로 창고를 둘 수 있었지만, 애플 시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어떤 종류의 창고도 두지 않고 부품이 공장 바닥의 사용 지점으로 매일 배달되는 진정한 JIT(Just-In-Time) 방식을 선택했다. 이유는 불량 부품이 들어왔을 때 즉각 발견하고 생산을 멈춰서 공급업체와 품질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100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매킨토시 제조에 대해 배우고 공정을 구축할 때,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스티븐 라이트(Steven Wright)를 고용하여 조언을 들었다.
101
1981년 02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Mac) 공장을 걷다가 수천만 달러를 들여 도입한 소형 부품 저장 및 검색 시스템과 번인(burn-in) 시스템이 결국 거대한 첨단 창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경험을 했다.
102
1985년 09월 12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NeXT)를 설립하면서 기존의 창고형 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지만 어떠한 형태의 창고도 두지 않는 진정한 JIT(Just-In-Time) 공장을 만들기로 선택했다. 이유는 창고가 생산적인 목적에 쓰일 돈을 은행에서 빌려와 물건과 함께 묶어두는 나쁜 공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3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Mac) 제조에 대해 배우기 위해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 스티븐 라이트(Steven Wright)를 고용했다.
104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티븐 라이트 교수와 처음 만나 제조업을 '필요악으로 보는 1단계'부터 '경쟁 우위의 기회로 보는 5단계'까지 분류하는 관점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105
1996년 12월 2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회사들이 소프트웨어를 대하는 태도를 평가하며 넥스트(NeXT), 애플(App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세 곳만이 소프트웨어에서 출발해 거꾸로 작업해 나가는 5단계 회사라고 발언했다.
106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공장 구축을 하드웨어 문제가 아닌 소프트웨어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10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장 운영을 위해 일반 제조 인력을 고용할 수 있었지만 R&D 부서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공장으로 이동시키기로 선택했다. 이유는 공장이 단지 '로봇이라는 흥미로운 입출력 장치가 달린 소프트웨어 문제'일 뿐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108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공장으로 보내기 위해 보너스를 주고, 달래며, 만약 싫어지면 다시 R&D로 돌아올 수 있다고 약속했다.
10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봇을 통제하기 위해 하드웨어가 아닌 공장의 소프트웨어를 먼저 구축하기 시작했다.
110
2007년 01월 09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1세대 로봇을 도입할 때 하드웨어와 제어 소프트웨어가 모두 포함된 턴키(turnkey) 방식으로 스펙을 정해 구매했다.
111
2007년 01월 09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턴키 방식으로 구매한 1세대 로봇이 제대로 작동은 했지만 우아하지 않고 품질 정보 시스템과 연동할 수 없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불만을 느끼는 실패를 경험했다.
1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2세대 로봇을 도입할 때 또다시 턴키로 구매할 수 있었지만 하드웨어만 외주로 제작하게 하고 소프트웨어는 넥스트 컴퓨터를 이용해 객체 지향 방식으로 직접 작성하기로 선택했다. 이유는 로봇과 공장 품질 시스템을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제어하기 위해서다.
11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본을 30~40차례 방문하며 현지 공장들을 견학했고, 그들이 두려움 없이 필요한 로봇을 직접 엔지니어링하고 제작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114
1983년 06월 15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봇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이 비쌀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외부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1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최신 세대의 로봇을 도입할 때 외부에서 완성품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부품만 외부에서 깎아오게 한 뒤 직접 조립하고 소프트웨어까지 완성하여 자체 제작하기로 선택했다. 이유는 그것이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매우 진보된 로봇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116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서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주요 부품 자동화 공정으로 컴퓨터를 생산하여 일본 등지에 수출했다.
117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본의 파트너사인 캐논(Canon)의 매우 엄격한 품질 감사를 통과하여 재고를 직접 배송(shipped to stock)하는 고품질 공급업체로 인정받았다.
118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장 작업자에게 라인을 직접 변경할 권한을 부여하자는 제안을 일부 수락했다. 이유는 숙련된 작업자들이 스스로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19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링 부서의 CAD 시스템 데이터를 T1 네트워크를 통해 15분 거리에 있는 프리몬트 공장으로 전송하여 로봇 배치 및 비전 시스템 프로그램을 자체 컴퓨터로 연산하고 최적화하는 프로세스를 확립했다.
120
1983년 1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조 시스템과 엔지니어링 데이터를 완벽히 연동시켜 엔지니어링 부서에서 2년 동안 단 하나의 물리적 와이어 랩(wire wrap)이나 프로토타입도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21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개발 시 전통적인 순차적 방식을 따를 수 있었지만 제조 부서가 엔지니어링 첫날부터 개입하는 병렬적 개발 프로세스를 선택했다. 이유는 프로토타입 제작 시 얻은 지식을 버리지 않고 생산까지 그대로 가져가 개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122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장의 제조 인력을 고용할 때 외부의 제조 전문가를 뽑을 수 있었지만 엔지니어들을 고용하여 R&D와 동일한 대우(초기엔 더 높은 급여)를 제공하기로 선택했다. 이유는 제조 인력이 2등 시민으로 취급받지 않고 엔지니어링 부서와 건강한 협력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다.
123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조 인력이 진짜 엔지니어와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초기 몇 년간 설계 엔지니어링 부서보다 제조 부서에 더 많은 박사 학위(PhD) 소지자를 채용해 배치했다.
124
1990년 00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원자재 운송 방식을 직접 통제할 수 있었지만 전적으로 공급업체의 문제로 넘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유는 공급업체가 JIT 일정에 맞춰 트럭이든 비행기든 자체 창고든 알아서 공장에 납품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125
2001년 00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많은 공급업체를 두는 대신 좁고 제한적인 공급업체 기반만을 유지했다.
126
1987년 09월 07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주요 공급업체인 모토로라(Motorola) 등을 비롯한 핵심 협력사들에게 넥스트 컴퓨터를 제공하고 매일 자동화된 통계적 품질 정보를 전송했다.
127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급업체들에게 "우리가 지불한 돈이 부서지지 않으니 당신들이 납품한 부품도 부서져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내세우며 계약에 따른 정시 무결점 납품을 요구했다.
128
1983년 06월 15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Mac) 컴퓨터의 미래에 관한 질문을 받고, 몇 년 후 사람들이 원하게 될 고차원적 작업은 맥이나 DOS/Windows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129
2010년 06월 01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개 석상에서 부품을 트럭으로 운송할지 항공으로 운송할지는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공급업체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규정했다.
130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급업체가 제시간에 부품을 배송할 역량이 부족하다면 자신들의 공장 옆에 자체 창고를 직접 마련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요구했다.
131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많은 공급업체와 거대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좁고 제한된 소수의 공급망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유는 회사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니었고, 소수의 파트너에게 넥스트(NeXT)와의 협력이 주는 엄청난 이점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132
1988년 00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토로라를 비롯한 거의 모든 핵심 공급업체에 넥스트 컴퓨터를 도입하도록 하여, 매일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통계적인 품질 정보를 전송했다.
133
1996년 12월 2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가 '골리앗'은 아니지만 함께 일하기에 매우 가치 있는 '다윗'이라는 점을 어필하여, 공급업체들이 넥스트와 일하기 위해 기꺼이 헌신하도록 만들었다.
134
1993년 00월 00일, 3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내부의 공정 문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졌지만, 자재 공급 문제에 대해서는 공급업체가 합의된 시간 내에 무결점(zero defect) 자재를 제공해야 한다며 책임을 철저히 떠넘겼다.
135
2010년 07월 16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지불한 돈이 고장 나지 않는 것처럼, 공급업체가 납품한 부품도 고장 나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파트너들에게 강력히 내세웠다.
136
2011년 10월 05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향후 행보에 따라 맥(Mac) 시장의 특정 부문은 계속 성장하겠지만, 일부 부문은 미래 성장을 이끌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137
2011년 10월 05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향후 몇 년 안에 사람들이 컴퓨터로 하고자 하는 새로운 작업들을 기존의 맥(Mac)이나 DOS, 윈도우 환경에서는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단언했다.
138
2001년 03월 24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과거에 맥이 출시되면서 DOS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작업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이제는 맥을 넘어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고 대중에게 발언했다.
139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청중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며 캘리포니아로 돌아간다고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