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0화

LIFE COUNT

1954~2016.12.01·1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수아 올랑드

1
1954년, 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프랑스 센마리팀 주 루앙에서 출생했다.
2
1968년, 14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가족과 함께 루앙에서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으로 이사했다.
3
2007년, 53세 때, 사회당은 대선 후보로 존재감 없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신 세골렌 루아얄을 선택했다.
4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선 출마를 앞두고 다이어트를 통해 14kg을 감량하고 안경테를 둥근 테에서 각진 테로 바꾸어 외양의 변화를 꾀했다.
5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우유부단한 말하기 스타일을 버리고 날선 공방이 가능한 스타일로 화법을 변신했다.
6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51.6%를 득표하여 니콜라 사르코지를 꺾고 프랑스 제2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7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추진한 긴축정책 대신 경기부양과 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정책 방향을 선택했다.
8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재산 100만 유로 이상의 부유층에게 75%의 최고세율을 부과하는 방침을 시행했다.
9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취임 100일이 지난 시점에 국민의 절반 이상으로부터 불만 섞인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이 20~30%대로 추락했다.
10
2013년 4월,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의 고율 과세 정책으로 인해 벨기에 귀화를 신청했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여론에 밀려 귀화 신청을 전면 철회했다.
11
2013년,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선 당시의 경기부양 공약과 달리, 국가부채가 GDP의 90%에 달하는 경제 상황으로 인해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노선을 번복했다.
12
2013년 5월 및 11월,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의 지지율이 24%에서 일부 조사에서는 15%까지 추락하며 임기 초반에 레임덕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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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일본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하던 중,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발언했으나 일본과 중국을 헷갈려 비판을 받았다.
14
2013년,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의 집권 여당인 사회당이 프랑스 하원 재보궐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UMP)에 패배했다.
15
2013년 12월 16일,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프랑스 유대인 단체 대표자 회의에서 알제리를 방문하고 돌아온 내무장관을 두고 "무사히 돌아온 게 다행이다"라고 발언하여 알제리 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16
2014년,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의 집권 여당인 사회당이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 각각 대중운동연합(UMP)과 국민전선(FN)에 패배했다.
17
2014년 1월,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여배우 쥘리 가예트와 밀회를 즐기며 이탈리아제 오토바이(피아지오 MP3)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가십지 '클로저'를 통해 폭로되었다.
18
2014년 1월,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사생활 보호 성명을 냈으나 폭로 내용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19
2014년 9월,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이 빠진 사람(Les Sans-Dents)'이라고 경멸했다는 폭로를 당해 지지율이 하락했다.
20
2014년 9월 28일,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의 집권 여당이 상원의원 선거에서 중도우파와 국민전선에 패배하며 총 4연패의 선거 결과를 기록했다.
21
2015년 1월,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발생 1시간 만에 현장에 나타나 경찰특공대(RAID)와 대테러 헌병특수부대(GIGN)를 동시 투입하는 강수를 두어 인질범들을 사살했다.
22
2015년 1월,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전 세계 정상 45명을 엘리제궁으로 불러 '국가단합'을 내세웠으며, 이로 인해 지지율이 19%에서 34~40%로 상승했다.
23
2015년 3월 22일,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과 국민전선에 참패하며 테러 대응으로 얻은 인기가 일시적이었음을 확인했다.
24
2015년 7월,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러시아의 식품 맞제재로 인해 프랑스 농업이 타격을 입고 농부들이 대거 파업하는 상황을 겪었다.
25
2015년 7월 23~26일,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외교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의원단이 크림 반도를 방문했다.
26
2015년 11월,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파리 테러 발생 후 계엄령을 선포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으나, 이에 대한 과잉 대처 논란으로 지지율이 요동쳤다.
27
2015년 12월 7일,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의 집권 여당 사회당이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20% 초반의 득표율로 3위에 머물며 폭망했다.
28
2015년 12월 13일,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지방선거 2차 투표에서 국민전선의 집권을 막기 위해 사회당 지지자들에게 공화당에 표를 던지라고 연설하여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29
2016년 1월,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재선 계산과 국가주의적 성향을 반영하여 프랑스 초등학생 모두가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30
2016년 7월,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전속 이발사에게 매달 9,900유로의 봉급을 준 사실이 확인되어 '이발사 게이트'로 조롱받았다.
31
2016년 9월 24일,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칼레의 난민촌 '정글'을 완전히 폐쇄하고 난민을 전국에 분산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32
2016년 10월 말,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의 지지율이 4%라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당내에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33
2016년 11월 7일,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르몽드 기자들에게 국가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야당으로부터 탄핵 결의안을 제출받았으나,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34
2016년 12월 1일,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통령직 재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프랑수아 올랑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