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 월요일

야만두 오르시 : 2026년 10월 26일 업데이트

1
1967년 06월 13일, 0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우루과이 카넬로네스주 산타로사와 산안토니오 사이의 농촌에서 농업 노동자 파블로 '베베' 오르시와 재봉사 카르멘 '베바' 마르티네스의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 마리아 델 루한이 있었다.
2
1972년 00월 00일, 5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아버지가 척추 질환으로 농사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과 함께 카넬로네스 시로 옮겨 갔다. 부모는 그곳에서 가게를 열었다.
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카넬로네스에서 제110호 '트레스 에스키나스' 학교와 토마스 베레타 고등학교를 다녔다.
4
1982년 00월 00일, 14~15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민속춤을 시작해 26세 무렵까지 시 소속 공연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5
1986년 00월 00일, 18~19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우루과이 공화국 대학교 법학부에 들어가 국제관계를 공부하려 했으나 한 달 만에 그만뒀다.
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중도좌파 계파 베르티엔테 아르티구이스타에서 활동하며 국민투표 소집을 위한 서명 모으기에 참여했다.
7
1990년 00월 00일, 22~23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베르티엔테 아르티구이스타를 나와 한 해 전 창당된 인민참여운동(MPP)에 들어갔다.
8
1991년 00월 00일, 23~24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아르티가스 교사양성원을 마치고 중등 역사 교사 자격을 얻었다.
9
1991년경, 23~24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카넬로네스·플로리다·말도나도주의 중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해 2000년대 초까지 교단에 섰다.
1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말도나도에서 교사로 일하던 시기에 배우이자 발레 무용수인 라우라 알론소페레스를 만나 뒤에 결혼했다.
11
2004년 00월 00일, 36~3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MPP 명부 4번 후보로 하원의원 선거에 나섰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12
2005년 00월 00일, 3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광역전선의 카넬로네스 주지사 후보 마르코스 카람불라의 제1 대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13
2005년 05월 00일, 3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카람불라가 주지사 선거에서 이기자 카넬로네스 주정부 사무총장을 맡았다.
14
2010년 00월 00일, 42~43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카람불라의 재선 뒤에도 2010~2015년 임기 동안 주정부 사무총장 자리를 지켰다.
15
2012년 00월 00일, 44~45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라우라 알론소페레스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루시아와 빅토리오를 얻었다.
16
2015년 03월 00일, 4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연임 제한으로 세 번째 도전이 막힌 카람불라의 뒤를 이어 주지사 선거에 나서려고 사무총장직을 내려놓았다.
17
2015년 07월 09일, 48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37% 득표로 선거에서 이긴 뒤 카넬로네스 주지사에 취임했다.
18
2019년 00월 00일, 51~52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대선 결선에 오른 광역전선 후보 다니엘 마르티네스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으나 마르티네스는 루이스 라카예 포우에게 졌다.
19
2020년 01월 00일, 52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광역전선의 카넬로네스 주지사 단일 후보로 발표됐다.
20
2020년 02월 07일, 52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재선 도전을 위해 카넬로네스 주지사직에서 물러났다.
21
2020년 11월 26일, 53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51.5%를 얻어 재선된 뒤 카넬로네스 주지사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22
2023년 03월 19일, 55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MPP로부터 광역전선 대선 예비후보로 공식 지지를 받았다. 베르티엔테 아르티구이스타가 가장 먼저 지지를 확정한 계파였다.
23
2023년 12월 00일, 56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광역전선 전당대회에서 마리오 베르가라·카롤리나 코세·안드레스 리마와 함께 대선 예비후보로 공식 선포됐다.
24
2024년 02월 00일, 56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파울라 디아스라는 인물로부터 형사 고소를 당했다.
25
2024년 02월 20일, 56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3월 1일자로 효력이 생기는 주지사 사직서를 냈고, 후임은 마르셀로 메테디에라가 맡았다.
26
2024년 04월 00일, 56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경선 경쟁자 마리오 베르가라가 출마를 접고 자신의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 그의 지원을 얻었다.
27
2024년 05월 00일, 56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디아스가 고소 내용이 거짓이었다고 시인하자 비방·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28
2024년 06월 30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광역전선 대선 경선에서 59.1%를 얻어 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29
2024년 7월경 · 57세 무렵, 야만두 오르시는 경선 경쟁자였던 전 몬테비데오 시장 카롤리나 코세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세웠다.
30
2024년 09월 16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콜로니아델사크라멘토 유세에서 48개 항목의 공약을 내놓았다.
31
2024년 09월 23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가브리엘 오도네를 차기 경제재정장관으로 예고했다.
32
2024년 10월 27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대선 1차 투표에서 43.86%로 1위에 올랐으나 과반에는 못 미쳤다.
33
2024년 11월 24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결선 투표에서 국민당의 알바로 델가도를 52.08% 대 47.92%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34
2024년 11월 24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당선인으로서 첫 공개 일정으로 호세 무히카와 루시아 토폴란스키를 찾아갔다.
35
2024년 11월 27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알레한드로 산체스를 대통령 비서실장에 지명했다.
36
2024년 11월 28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만났다. 같은 날 주우루과이 중국대사와도 회동했다.
37
2024년 12월 00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증조부 조반니 오르시가 떠나온 이탈리아 리구리아의 마을 오실리아의 파올라 스카르첼라 시장으로부터 마을에 뿌리를 둔 인물이 높은 자리에 올라 자랑스럽다는 반응과 함께 방문 초청 의사를 전해 들었다.
38
2024년 12월 16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내각 명단 전체를 발표했다. 외교장관 마리오 루베킨, 내무장관 카를로스 네그로, 보건장관 크리스티나 루스템베르그 등이 포함됐다.
39
2025년 02월 02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몬테비데오의 대통령 관저로 옮기지 않고 살리나스의 자택에서 계속 살겠다고 밝혔다.
40
2025년 03월 01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국회 총회에서 선서하고 독립광장에서 루이스 라카예 포우로부터 대통령 휘장을 넘겨받아 우루과이 제43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41
2025년 03월 02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에스테베스 궁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만나 메르코수르·유럽연합 협정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42
2025년 03월 12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동물복지원의 새 로데오(히네테아다) 규정 시행을 180일 미루는 결의에 서명했다.
43
2025년 05월 13일, 57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의 별세에 따라 16일까지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하고 조기를 게양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44
2026년 02월 01일, 58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2월 7일까지 이어지는 첫 중국 국빈 방문을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다.
45
2026년 02월 03일, 58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리창 총리·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과도 만났다.
46
2026년 03월 21일, 58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보고타에서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으로부터 중남미·카리브국가공동체(CELAC) 의장직을 넘겨받고, 회원국들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 역내 후보를 함께 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47
2026년 06월 30일, 59세 때, 야만두 오르시는 파라과이 콘메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서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으로부터 2026년 12월까지의 의장국 대표직을 넘겨받았다.

야만두 오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