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1957.08.11~2025.12·1화손정의
1914년 - 1973년 : 손의 탈번
1867~1973.04·3화1914년 - 1957년 : 할머니의 리어카
초등학교 선생님 대신 사업가
료마가 가면 정의도 간다
손정의 : 묻고 더블로 가!
2016.12.06~2024.12.16·1화손정의 : 묻고 더블로 가!
도널드 트럼프와 손정의 : 5배 키운 스타게이트
2024.03~2025.01.21·1화도널드 트럼프와 손정의 : 5배 키운 스타게이트
19세에 세운 50년 계획
1974~1980.02·3화맨 몸으로 미국 유학
전자음성번역기로 1억 엔
인베이더 역수입으로 1억 엔
손마사요시 대표의 스타트업 소프트뱅크
1980~1985.10.08·3화첫 사랑과 두 번의 지각과 세번째 결혼식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과 오사카 일렉트로닉스쇼
조신 전기와의 첫 계약
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과 오사카 일렉트로닉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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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21세 때인 1981년 일본 유니손월드를 창업했고+자본금은 1000만 엔이었고+직원은 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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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손월드의 첫 사무실은 일본 후쿠오카 남쪽 오노조시 하카타구 잣쇼노쿠마 거리의 낡은 건물 2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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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손월드에는 뚜렷한 사업 아이템이 없었고+손정의는 25가지 사업 아이템을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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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돈벌이가 될 것인지+어린 나이에도 할 수 있는 것 같은 조건을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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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가 고려한 25가지 사업 아이템 중엔 컴퓨터+광케이블+병원체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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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두 명 뿐인 직원들 앞에서+귤 상자 위에 올라가서 “언젠가 회사 매출액을 두부 세듯이 잇쵸, 니쵸하며 세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지만+두 직원은 두 달 뒤에 모두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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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21세 때인 1981년 1년 동안을 사업 아이템을 찾으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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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다다시는 손정의에게 후쿠오카시를 떠나 도쿄로 와서 사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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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9월 손정의는 후쿠오카를 떠나서 도쿄 고지마치에서 일본 소프트뱅크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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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소프트뱅크 사무실로 비영리단체 일본총합연구소 경영총합연구소 소유 빌딩 2층의 한 켠을 빌려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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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의 자본금 1000만 엔 중 절반을 사무실을 빌려준 경영총합연구소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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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노다 가즈오는 손정의에게 꿈과 뜻의 차이를 가르쳐줬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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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가즈오는 손정의에게 “꿈은 기대지만 뜻은 결의”라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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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손정의는 싸인을 해줄 때면 “뜻을 높게”라고 써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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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한텐 컴퓨터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 자본이 없었고 대신 소프트웨어 도매 유통업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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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PC에서 일본이 미국보다 10년 늦었다고 봤고+미국처럼 소프트웨어 시장이 일본에서도 열릴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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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엔 소프트웨어 유통망 자체가 없었고+손정의는 소프트웨어가 은행처럼 모인다는 뜻에서 서비스명을 소프트뱅크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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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21세 때인 1981년 소프트뱅크를 창업할 때부터 야스모토 마사요시라는 일본 성씨 대신 손마사요시라는 한국 성씨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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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1981년 10월 1000만 엔 자본금 중 800만 엔을 투자해서 오사카 일렉트로닉스쇼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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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오사카 일렉트로닉스쇼의 주인공은 하드웨어 가전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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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소프트뱅크로 소프트웨어 유통업이라는 시대를 앞선 사업 아이템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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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일렉트로닉스쇼에서 마쓰시타=파나소닉 규모의 부스를 설치해놓고+소프트웨어 제작사들과 고객들과 네트워크를 맺기 시작했고+ 소프트뱅크 부스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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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소프트웨어 제작사들에게 전시할 소프트웨어만 가져오면 무료로 전시 공간을 제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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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오사카 일렉트로닉스쇼에서 주목 받았고 부스 크기는 마쓰시타와 소니와 맞먹을만큼 컸지만+소프트하우스라고 불리는 소프트웨어 제작사들과 고객들을 연결시켜줬을 뿐 정작 스스로는 돈을 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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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800만 엔으로 소프트뱅크라는 회사의 이름을 알리는 홍보를 했다고 결론내렸다.
첫 사랑과 두 번의 지각과 세번째 결혼식
조신 전기와의 첫 계약
손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