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1953.06.15~2025.06·2화

시진핑

시진핑 : 2026년 9월 21일 업데이트

트럼프와 베이징에서 미중정상회담

2017.04~2026.05.15·1화

시진핑 : 대만은 미중의 레드라인

트럼프와 워싱턴에서 미중정상회담

2012.09~2026.10·1화

시진핑 : 아픈데 트럼프와 워싱턴 담판?!

시진핑 : 2026년 9월 21일 업데이트

1
1953년 06월 15일(음력 5월 5일 단오절), 0세 때,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과 어머니 치신 사이에서 태어났다.
2
1953년 06월 15일, 0세 때,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선전부장 겸 정무원 문화교육위원회 부주임인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난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홍이대(紅二代)의 일원으로 분류됐다. 
3
1958년, 5세 때, 시진핑은 베이하이유아원에 다녔다.
4
1959년, 5~6세 때,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국무원 부총리에 임명되면서 고위 간부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됐다.
5
1959년, 6세 때,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부총리가 된 이후 경호원과 주방장·보모가 있는 집에서 여름이면 베이다이허로 휴양을 가고 명절과 주말엔 중난하이의 문화 활동을 즐기며 지냈다.
6
1959년, 6세 때, 시진핑은 주말이나 명절이면 중난하이에서 열리는 창극과 서유기 등 중국 전통 공연을 즐겼다.
7
1960년, 7세 때, 시진핑은 홍색 귀족학교로 불리던 팔일학교에 진학했다.
8
1960년, 7세 때, 시진핑은 고위 관리 자제로서 홍색 귀족학교인 베이징 팔일(八一)학교에 다니며 집단을 우선하고 개인을 종속시키는 엄격한 군사화 기숙학교 생활을 했다.
9
1960년, 7세 때, 시진핑은 기숙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 시중쉰으로부터 자신의 혁명 참여 경위와 자녀들도 자라서 혁명을 해야 한다는 훈화를 반복해서 들었다.
10
1960년, 7세 때,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으로부터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단결을 강조받는 가정교육을 받았다.
11
1961년, 8세 때, 시진핑은 네 살 많은 보시라이가 영국제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누나의 꽃신을 검정 먹물로 칠해 신었다.
12
1962년 09월, 9세 때,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소설 『류즈단』 사건에 연루돼 비판받으면서 더 이상 중난하이 이웃집에 놀러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13
1962년 09월, 9세 때, 시진핑은 가산이 몰수되는 광경을 지켜보고 중난하이에서 나와 한 골목길의 집으로 이사했다.
14
1966년, 13세 때, 시진핑은 청소년 시절이 문화대혁명 시기와 겹쳐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시골로 보내졌으며, 업신여김을 당하고 친구들과 패싸움을 벌이다 도망하는 등 여러 차례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15
1966년, 13세 때, 시진핑은 심문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죄가 얼마나 중한지 되묻고 총살당할 만한지 따져보라고 말했다가 "100번은 총살할 만하다"는 답을 들었다.
16
1966년, 13세 때, 시진핑은 어릴 적 비판대회에 끌려나가 목숨이 경각에 걸리는 등 일찌감치 인정의 냉담함을 겪었다.
17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그해 이를 가볍게 평가하는 발언 실수를 저질렀다.
18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그 발언으로 인해 '현행 반혁명분자'로 몰려 중앙당교에 구금됐다.
19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중앙당교가 개최한 '주자파' 6인 비판대회에서 성인 5명과 함께 단상에 세워진 유일한 미성년자였다.
20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단상에서 무거운 철제 고깔모자를 쓰고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두 손으로 받쳐 들어야 했다.
21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단상 아래 군중이 "때려잡자 시진핑"을 외치는 함성 속에서 강제 동원된 어머니 치신의 목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22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비판대회가 끝난 뒤에도 어머니 치신과 한자리에 있지 못했다.
23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구금돼 있던 어느 비 오는 밤 간수의 부주의를 틈타 탈출해 집으로 향했다.
24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비에 흠뻑 젖은 채 떨며 어머니에게 배고프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25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자신을 먹이거나 재우는 대신 어머니 치신이 상사에게 자신의 탈출을 신고하러 비를 무릅쓰고 나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26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더는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누나 안안과 남동생 위안핑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27
1966년 12월, 13세 때, 시진핑은 배고픔과 절망 속에 빗속의 밤길로 뛰쳐나갔다.
28
1968년, 15세 때, 시진핑은 다섯 명이 60도 배갈 열 병을 마신 자리에서 끝까지 흐트러진 언행을 보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29
1968년, 15세 때, 시진핑은 지인들과 두루 어울리면서도 친구를 만날 때조차 유독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30
1969년, 16세 때, 시진핑은 내려가지 않으면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상산하향으로 농촌에 내려가기로 했다.
31
1969년, 16세 때, 시진핑은 어머니와 상의한 뒤 아버지 고향인 산시성 푸핑현 단춘향의 습씨 마을에 의탁해 농사일을 하려 했으나, 후환을 두려워한 친척들의 냉담한 태도에 발길을 돌렸다.
32
1969년, 16세 때, 시진핑은 산시성 옌촨현 량자허로 내려가 하향 생활을 시작했으나 생활이 힘들어 다시 도망쳤다.
33
1969년, 16세 때, 시진핑은 베이징으로 돌아왔다가 붙잡혀 역류 인구로 분류돼 학습반에 구금된 채, 베이징 하이뎬구의 하수관 매설 작업에 동원되는 육체노동에 시달렸다.
34
1969년, 16세 때, 시진핑은 하방(下放)당했을 때 순자(荀子)의 전집 스무 권을 독파해 상당 부분을 암기할 정도로 읽었다.
35
1969년, 16세 때, 시진핑은 상산하향(上山下鄕)으로 산베이(陝北)의 먼 지역에서 친척 없이 지내며 단결에만 의지해야 했다.
36
1969년, 16세 때, 시진핑은 '나는 황토의 아들'이라는 글에서 아버지가 말한 단결의 도리를 산베이 생활 중 크게 체험했다고 회고했다.
37
1970년, 17세 때, 시진핑은 이모부 웨이전우로부터 군중 속으로 들어가 단련할 기회를 찾으라는 타이름을 받았다.
38
1970년, 17세 때, 시진핑은 이모부의 타이름에 심기일전해 다시 량자허로 내려가 땅을 일구고 석탄을 나르며 똥지게를 지는 생활을 했다.
39
1970년, 17세 때, 시진핑은 이모부 웨이전우의 타이름을 받아들여 옌촨현으로 내려가 기층생활을 하며 틈날 때마다 입당 신청서를 냈다.
40
1970년, 17세 때, 시진핑은 한겨울 얼음이 반쯤 언 흙탕물에 제일 먼저 바짓가랑이를 걷고 맨발로 들어갔다.
41
1970년, 17세 때, 시진핑은 둑을 쌓다가 허리와 다리를 다쳤다.
42
1970년, 17세 때, 시진핑은 석 달 동안 기름 한 방울 맛보지 못하다 돼지고기 배급이 이뤄지자 고기 한 점을 칼로 베어내 날로 먹었다.
43
1972년, 19세 때, 시진핑은 반당 분자로 낙인 찍힌 아버지 시중쉰의 영향으로 입당 신청에서 거듭 좌절을 겪었다.
44
1972년 08월, 19세 때, 시진핑은 거듭된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입당 신청서를 냈다(통산 열 번째).
45
1973년, 20세 때, 시진핑은 열 번째 신청 끝에 입당이 허용됐다.
46
1973년, 20세 때, 시진핑은 산시성 옌촨현 량자허에서 여전히 하향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47
1973년 12월, 20세 때, 시진핑은 옌촨현 량자허대대의 당지부 서기가 됐다.
48
1974년 12월, 21세 때, 시진핑은 옌촨에서 열린 제4차 중국공산주의청년단 단원대표대회에 참석했다.
49
1979년, 25~26세 때, 시진핑은 대학을 졸업한 뒤 겅뱌오 중앙군사위 비서장의 비서로 근무하던 시기에 주영대사 커화의 딸 커링링과 결혼했다.
50
1982년, 28~29세 때, 시진핑은 영국 유학 문제를 둘러싼 커링링과의 갈등 끝에 타협에 실패했고, 커링링이 홀로 영국으로 떠나며 이혼했다.
51
1982년, 29세 때, 시진핑은 영국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발전을 추구하려던 커링링(柯玲玲)과 가치관 차이로 첫 결혼에 실패했다.
52
1982년, 28~29세 때, 시진핑은 이혼의 아픔을 안고 허베이성 정딩현의 기층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53
1982년, 28~29세 때, 시진핑은 베이징을 떠나기 전 청대 시인 정판교의 시 '죽석'의 글귀를 "기층에 깊이 들어가 꽉 놓지 않으니, 군중 속에 뿌리내렸네"로 바꿔 자신의 의지를 다졌다.
54
1982년 겨울, 29세 때, 시진핑은 정딩현 당서기로서 동료 자다산을 현 문화국 국장에 앉히려 했다.
55
1982년 겨울, 29세 때, 시진핑은 문화국에 당조를 두지 않는 예외를 만들어 자다산의 임명을 강행했다.
56
1983년, 30세 때, 시진핑은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로 근무했다.
57
1986년, 33세 때, 시진핑은 펑리위안과 처음 만났으며, 인민해방군 소속 가수였던 그녀는 이때 펑퍼짐하고 헐렁한 군복 차림이었다.
58
1989년 09월, 36세 때, 시진핑은 펑리위안과 나란히 사진에 담겼다.
59
1990년, 37세 때, 시진핑은 푸젠성에서 근무할 때 부인 펑리위안을 동석시켜 리펑 총리를 초청했다.
60
1992년 10월, 39세 때, 시진핑은 제14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막을 앞두고 아버지 시중쉰이 정치보고 초안 속 덩샤오핑 이론 찬양 문구를 문제 삼아 나서려 하자 샤먼시 부시장 신분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만류해 충돌을 막았다.
61
1995년, 42세 때, 시진핑은 푸젠성 근무 시 상사였던 샹난이 실각한 후에도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인사를 다니며 챙겼다.
62
1995년, 42세 때, 시진핑은 정딩현 시절 동료 자다산과 뤼위란이 병에 걸리자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푸젠성에서 허베이성으로 몇 차례 병문안을 왔다.
63
1996년, 43세 때, 시진핑은 산베이 지역에서 함께 농사일을 했던 뤼허우성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두 차례 돈을 보냈다.
64
1997년, 44세 때, 시진핑은 뤼허우성의 건강이 나빠지자 그를 푸젠성으로 데려와 치료를 받도록 도왔다.
65
2002년 10월, 49세 때, 시진핑은 저장성 대리성장이 되었다.
66
2002년 10월, 49세 때, 시진핑은 저장성 대리성장이 되자 자싱(嘉興)의 난후(南湖)를 찾아 홍선(紅船)을 둘러보았다.
67
2002년 11월, 49세 때, 시진핑은 저장성 당서기로 있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부인 펑리위안을 동석시켜 장쩌민 국가주석을 초청했다.
68
2007년 03월, 53세 때, 시진핑은 상하이시 당서기가 되었다.
69
2007년 03월, 53세 때, 시진핑은 상하이시 당서기가 된 뒤 상하이의 1차 당대회와 2차 당대회 유적지를 살펴보았다.
70
2007년 03월, 53세 때, 시진핑은 상하이시 당서기에 취임했다.
71
2007년 10월, 54세 때, 시진핑은 상하이를 시찰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독대해 자신을 차세대 지도자로 삼기로 한 당 중앙의 결정을 통보받았다.
72
2007년 10월, 54세 때, 시진핑은 제17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서열 6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73
2007년 10월, 54세 때, 시진핑은 과거 반혁명분자로 몰려 구금됐던 중앙당교의 교장으로 취임했다.
74
2007년 10월, 54세 때, 시진핑은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덩씨 집안과의 화해를 위해 위정성에게 덩푸팡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덩푸팡은 건강을 이유로 여동생 덩룽과 매제 허핑을 대신 내보냈다.
75
2008년, 54~55세 때, 시진핑은 전국 조직부장 회의에서 관리 선발 기준으로 "덕과 재능을 겸비하되 덕을 우선한다"고 밝혔다.
76
2009년, 55~56세 때, 시진핑은 당시 중앙당교 교장으로서 관례에 따라 가오양의 유체 고별식에 참석해야 했지만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77
2009년 02월, 55세 때, 시진핑은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멕시코를 방문해 화교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외국인이 우리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말했다.
78
2009년 11월 16일, 56세 때, 시진핑은 친한 지인들에게 "우리는 제5세대가 아니다. 우리는 혁명세대의 뒤를 이은 제2세대다"라고 말했다.
79
2009년 11월 16일, 56세 때, 시진핑은 지인들에게 "나는 세 단계로 권력을 잡을 것이다. 먼저 장쩌민의 힘을 이용해 후진타오를 완전히 은퇴시킨다. 이어 후진타오가 휘두르는 복수의 칼날이 장쩌민을 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지들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고 말했다.
80
2010년 06월, 57세 때, 시진핑은 국가부주석으로서 라오스를 방문해 현지에서 준비한 생일 케이크를 받고 자신이 태어난 날이 단오절이라고 말했다.
81
2010년 10월, 57세 때, 시진핑은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류사오치의 부하였던 중앙서북국 서기 출신 류란타오의 탄신 100주년 좌담회에 참석해 축사를 발표했다.
82
2010년 10월 25일, 57세 때, 시진핑은 같은 연설에서 '정의'라는 단어를 아홉 차례 언급했다.
83
2010년 10월 25일, 57세 때, 시진핑은 "60년 전 발생한 그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다. 조선 내전이 터진 후 미국 트루먼 정부는 제멋대로 병사를 보내 무장간섭에 나서 조선에 대한 전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84
2010년 10월 25일, 57세 때,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 정부의 여러 차례 경고에도 삼팔선을 넘어 중·조 변경의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육박하며 항공기로 중국 동북 변경지역의 도시와 농촌을 폭격하는 등 전화가 중국 영토에까지 미쳤다"고 주장했다.
85
2012년 02월, 58세 때, 시진핑은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해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의 영접을 받았으며, 이 무렵 여러 차례의 만남에서 바이든에게 미국의 정치 시스템 운영, 주지사의 권력, 대통령의 군사·정보기구 권한 등을 물었다.
86
2012년 11월, 59세 때,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되며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87
2012년 11월, 59세 때, 시진핑은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집단주의 지상의 정치신념을 반영했다.
88
2012년 11월, 59세 때,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집권한 직후 대대적인 반부패 운동을 전개했다.
89
2012년 11월, 59세 때, 시진핑은 집권 이후 첫 연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당이나 정부, 군대, 민간, 학계를 가리지 않고 당이 모든 걸 영도한다"고 말했다.
90
2012년 11월 15일, 59세 때,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로 선출되며 집권을 시작했다.
91
2012년 11월 15일, 59세 때, 시진핑은 총서기 취임과 함께 "중국몽(中國夢)"을 내걸었다.
92
2012년 11월 29일, 59세 때, 시진핑은 국가박물관 '부흥의 길' 전시를 참관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처음 제시하고 21세기 중엽까지 이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93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 취임 후 첫 지방 시찰로 광둥성 선전을 찾았다.
94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선전 롄화산 공원의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했다.
95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개혁은 그치지 않아야 하고 개방의 걸음도 멈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96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자신에게 다가서는 군중을 경찰이 막지 못하게 했다.
97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붉은 카펫을 치우게 했다.
98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호텔 스위트룸에 묵지 않았다.
99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군중 속으로 직접 들어가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100
2012년 12월 초, 59세 때, 시진핑은 고위 당원을 대상으로 '8항 규정'(당8조)을 선포했다.
101
2012년 12월, 59세 때, 시진핑은 중앙 정치국 전체 동지에게 회의 간소화·출장 간소화 등 여덟 가지 요구사항(당8조)을 전달했다.
102
2012년 12월 중순, 59세 때, 시진핑은 군부 고위층을 대상으로 금주령 등 '군10조'를 하달했다.
103
2012년 12월, 59세 때, 시진핑은 광둥성 시찰에 나서 "소련의 교훈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104
2012년 12월, 59세 때, 시진핑은 소련 붕괴의 원인으로 정치 부패, 이상과 신념의 동요, 당에 대한 군대의 충성 상실 세 가지를 꼽았다.
105
2012년 12월 26일, 59세 때, 시진핑은 마오쩌둥 탄생 119주년 기념일 자리에서 당 간부가 5000년 우수 문화를 잃어선 안 되고 선배가 확립한 정치제도를 망쳐선 안 되며 조상이 물려준 땅을 작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106
2013년, 60세 때, 시진핑은 전국조직공작회의에서 앞으로 GDP 증가율로 간부를 평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07
2013년, 60세 때, 시진핑은 전국조직공작회의에서 새로운 간부 평가 지표로 민생 개선·사회 발전·환경 보호 등을 제시했다.
108
2013년 01월 05일, 59세 때, 시진핑은 중앙당교에서 약 300여 명의 고위 당원을 상대로 "개혁개방 후의 역사 시기로 개혁개방 전의 역사 시기를 부정할 수 없고, 개혁개방 전의 역사 시기로 개혁개방 후의 역사 시기를 부정할 수 없다"고 연설했다.
109
2013년 03월, 59세 때, 시진핑은 브릭스(BRICS) 국가 미디어와의 집단 인터뷰에서 "쇠를 두드리려면 먼저 자신부터 단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110
2013년 03월, 59세 때, 시진핑은 모스크바국제관계학원 연설에서 "각국은 자기 발전의 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신발이 맞고 안 맞고는 자기 발로 신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111
2013년 03월 19일, 59세 때, 시진핑은 중국을 방문한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과 회동했으며, 이 자리에 리커창 총리는 배석하지 못했다.
112
2013년 04월, 59세 때, 시진핑은 형식주의·관료주의·향락주의·사치바람의 '4풍'을 깨자며 정풍운동을 시작했다.
113
2013년 04월, 59세 때, 시진핑은 일반 당원을 대상으로 형식주의·관료주의·향락주의·사치풍조에 반대하는 '4풍 반대운동'을 펼쳤다.
114
2013년 04월, 59세 때, 시진핑은 "거울 보고 옷매무새 똑바로 하며 몸 씻고 병 치료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115
2013년 04월, 59세 때, 시진핑은 그동안 총리 산하 국무원이 총괄해오던 분기별 경제동향 보고를 자신이 이끄는 당 정치국으로 이관시켰다.
116
2013년 04월, 59세 때, 시진핑은 '9호 문건'을 하달해 언론과 연구기관에 서방 헌정민주, 보편적 가치, 공민사회, 신자유주의, 서방 언론관, 역사 허무주의, 개혁·개방에 대한 의구심 표명을 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117
2013년 06월, 60세 때, 시진핑은 당8조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자아비판대회에서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와 함께 '정치국 위원은 사형에 처하지 않고 정치국 상무위원에겐 죄를 묻지 않는' 관행을 깼다.
118
2013년 06월, 60세 때, 시진핑은 정풍운동 시작 두 달 후 전체 인민을 겨냥한 군중노선 운동을 일으켰다.
119
2013년 06월 27일, 60세 때, 시진핑은 베이징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인 펑리위안을 동석시켜 가족적인 분위기의 깜짝 오찬을 준비했다.
120
2013년 08월, 60세 때, 시진핑은 전국선전사상공작회의에서 "총명한 사람은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따라 제도를 바꾼다"는 『염철론』의 문구를 인용하며 시대에 맞는 선전 수단 개발을 주문했다.
121
2013년 09월, 60세 때, 시진핑은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 순방을 거치며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제기했다.
122
2013년 11월, 60세 때, 시진핑은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는 21년 만에 산둥성 취푸의 공자 고향을 방문해 중화민족이 새로운 중화문화를 창조해 낼 것이라고 역설했다.
123
2013년 12월, 60세 때, 시진핑은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 행사 때 마오의 딸 리너와 리민, 마오의 생활비서였던 장위펑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124
2013년 12월, 60세 때, 시진핑은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와 초대한 이들의 도착을 직접 기다렸다.
125
2013년 12월, 60세 때, 시진핑은 식사 도중 리너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리너를 위한 요리사 배치를 지시했다.
126
2013년 12월, 60세 때, 시진핑은 주방장 외에 운전기사·경호원·비서도 리너 일가에 파견해 예우를 차관급 인사 퇴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27
2013년 12월, 60세 때, 시진핑은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 좌담회에서 "중화민족의 5000여 년 문명사, 중국 인민의 근대 이래 170여 년의 투쟁사, 중국 공산당의 최근 1000년의 분투사, 중화인민공화국의 70년 발전사는 모두 인민이 쓴 역사다. 역사는 언제나 미래를 향해 발전한다"고 말했다.
128
2013년 12월 02일, 60세 때, 시진핑은 중국을 방문한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의 만찬에서 원래 예정됐던 리커창 총리를 대신해 만찬 상대로 나섰다.
129
2013년 12월 30일, 60세 때, 시진핑은 중앙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를 설립해 조장에 올라 경제체제·정치체제·문화체제·사회체제·생태문명체제와 당의 건설제도에 관한 개혁의 중대 원칙과 방침, 총체 방안을 연구·확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130
2014년 여름, 61세 때, 시진핑은 상하이의 한 소학교가 어문 교재에서 '등관작루', '강설' 등 옛 시사 8편을 뺀 것에 대해 고대 경전의 시가와 산문을 교과서에서 빼는 것은 중국적인 것을 제거하는 비애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131
2014년, 61세 때, 시진핑은 신춘 하례식에서 수백 명의 홍이대로부터 지지 결집을 받았다.
132
2014년, 61세 때, 시진핑은 그해 환경보호 문제와 관련해서만 17차례에 걸쳐 직접 지시를 내렸다.
133
2014년, 61세 때, 시진핑은 8항 규정 집행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 특색에 맞춰 예외를 두려 한 지방의 한 현 서기를 "당 중앙을 비판했다"며 질책했고, 해당 서기는 이후 출당조치됐다.
134
2014년, 61세 때, 시진핑은 선전 부문 종사자에게 나라를 지키는 데 책임을 가지라고 요구했다.
135
2014년 01월 24일, 60세 때, 시진핑은 중앙국가안전위원회를 신설해 스스로 주석에 올랐다.
136
2014년 02월, 60세 때, 시진핑은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대만의 고승 싱윈 법사를 만나 두 손을 맞잡았다.
137
2014년 02월 27일, 60세 때, 시진핑은 중앙인터넷안전 및 정보화 영도소조를 만들어 직접 조장을 맡았다.
138
2014년 03월, 60세 때, 시진핑은 불교가 중국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139
2014년 03월, 60세 때, 시진핑은 세계 각 문명의 교류를 강조하며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이 온 건 아니다. 온갖 꽃이 펴야 뜰에 봄이 가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140
2014년 03월, 60세 때, 시진핑은 프랑스 방문에서 "중국이라는 사자가 깨어났다"고 선언했다.
141
2014년 03월, 60세 때, 시진핑은 "사자"가 "평화적이고 친화적이며 문명의 사자"라고 부연 설명했다.
142
2014년 03월 15일, 60세 때, 시진핑은 국방과 군대개혁심화영도소조를 신설해 스스로 조장에 올랐다.
143
2014년 04월 30일, 60세 때, 시진핑은 4일간의 신장위구르자치구 시찰을 마치고 우루무치를 떠났으며, 이날 발생한 기차역 폭발사건이 그를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144
2014년 05월, 60세 때, 시진핑은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연설에서도 같은 문구를 인용해 사용했다.
145
2014년 05월, 60세 때, 시진핑은 베이징대를 시찰하며 경제학자들에게 케인스주의 등 서방 이론이 아닌 중국 전통의 시각에서 중국 경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146
2014년 08월 15일, 61세 때, 시진핑은 난징의 한 체육관을 찾아 중국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하며 "나도 젊었을 때 권투를 했었다. 방금 자네의 어퍼컷을 보니 꽤 좋았다. 우리 선수들은 어퍼컷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유럽 선수들의 어퍼컷은 상당히 위협적이다"라고 말했다.
147
2014년 09월, 61세 때, 시진핑은 공자 탄신 2565주년을 맞아 중국 공산당원이 중국의 우수한 전통문화의 충실한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148
2014년 09월 05일, 61세 때, 시진핑은 "백성에게 이로우면 옛 법을 따를 필요가 없고, 일하는 데 좋다면 옛 습속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2500년 전 선조들의 말을 인용하며 관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149
2014년 10월, 61세 때, 시진핑은 문예공작좌담회에서 유명 자간오(自幹五)인 저우샤오핑 등을 만나 긍정적인 힘을 발휘해 달라고 격려했다.
150
2014년 10월, 61세 때, 시진핑은 문예공작좌담회에서 "1982년 내가 정딩현으로 일하러 가기 전날 밤 일부 친한 친구들이 송별회를 열었다"는 일화로 말문을 열었다.
151
2014년 10월, 61세 때, 시진핑은 문예공작좌담회에서 왕위안젠이 농민 속에 깊이 들어가 농민과 한몸이 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152
2014년 11월, 61세 때, 시진핑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중 시 중난하이 잉타이로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청말 광서제의 일화를 나누며 중국의 과거를 알아야 현재와 미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153
2015년, 61~62세 때, 시진핑은 중앙통일전선공작회의를 통해 종교의 중국화 방향을 제시했다.
154
2015년, 61~62세 때, 시진핑은 칠상팔하 잠규칙을 깨기 위해 '능상능하(能上能下)' 규정을 만들었다.
155
2015년 01월, 61세 때, 시진핑은 중앙정치국 상무회의를 주재해 전국인민대표대회·국무원·정협·최고인민법원·최고인민검찰원 등 5개 부서 당조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156
2015년 07월, 62세 때, 시진핑은 공청단에 대해 "현장에서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사지마비 상태"라고 질책했다.
157
2016년, 62~63세 때, 시진핑은 전국종교공작회의를 통해 종교의 중국화 방향을 다시 강조했다.
158
2016년, 63세 때,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의 '핵심' 지위를 공식적으로 얻었다.
159
2016년 02월, 62세 때, 시진핑은 신화통신사, 인민일보, CCTV 등을 시찰한 뒤 당과 관영 언론의 성씨는 당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160
2017년, 64세 때, 시진핑은 자신에게 신장(新疆) 정책 수정을 건의하는 편지를 보낸 류야저우를 눈 밖에 두었다.
161
2017년 04월 06일, 63세 때, 시진핑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으로 트럼프에 의해 전해졌다.
162
2017년 10월, 64세 때, 시진핑은 중앙정치국 전체가 매년 당 중앙과 자신에게 서면으로 업무보고를 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해 총서기 중심의 보고 체계를 제도화했다.
163
2017년 10월 18일, 64세 때, 시진핑은 제19차 중국공산당전국대표대회에서 종교의 중국화를 다시 강조했다.
164
2017년 10월 18일, 64세 때, 시진핑은 19차 당대회 보고에서 "세계에서 발전을 바라면서도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길 원하는 국가와 민족에게 전혀 새로운 선택을 제공하겠다. 인류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지혜와 중국의 방안을 공헌하겠다"고 말했다.
165
2017년 11월, 64세 때, 시진핑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시 베이징 고궁으로 초청해 함께 경극을 관람했다.
166
2018년, 64~65세 때, 시진핑은 국가종교사무국을 통일전선공작부에 귀속시켰다.
167
2018년, 64~65세 때, 시진핑은 "현재 세계 100여 개 국가 중 130여 개 정당이 여전히 공산당 또는 마르크스주의 성질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168
2018년, 64~65세 때, 시진핑은 "많은 개발도상국이 중국을 선망의 눈초리로 보고 있으며 중국으로부터 치국이정의 경험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169
2018년, 64~65세 때, 시진핑은 "개혁개방 40년 동안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우리는 이제 시대를 '따라잡는' 데서 시대를 '이끄는' 데로 위대한 약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70
2018년 03월, 64세 때, 시진핑은 헌법을 개정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2연임)을 폐지하며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171
2018년 03월, 64세 때, 시진핑은 헌법 개정 때 '중국 공산당 영도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최고 본질적 특징'이라는 문구를 헌법 본문에 삽입했다.
172
2018년 03월, 64세 때, 시진핑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무원이 맡던 업무를 당이 맡도록 하는 당정기구 개혁을 단행했다.
173
2018년 07월, 65세 때, 시진핑은 상하이에서 20대 후반 여성이 자신의 초상이 담긴 선전물에 먹물을 뿌리는 사건을 겪었고, 이후 중국 당국이 전국 각지의 자신의 초상 선전물을 한동안 철거하는 조치를 지켜봤다.
174
2018년 09월, 65세 때, 시진핑은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 랴오닝 석유화학 공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175
2018년 09월, 65세 때, 시진핑은 "두 가지는 전혀 흔들어선 안 된다(兩個毫不動搖)"며 민영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176
2018년 10월, 65세 때, 시진핑은 집권 2기에 두 번째로 만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에게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77
2019년 09월, 66세 때, 시진핑은 중앙당교 중청년간부연수반(중청반) 가을학기 입학식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의 건립,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개혁개방의 실행, 신시대의 사업 추진은 모두 투쟁 중에 탄생했고, 투쟁 중에 발전했으며, 투쟁 중에 장대해졌다"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징을 치고 장구를 쳐서 이룰 수 없다. 위대한 꿈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위대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178
2019년 09월, 66세 때, 시진핑은 같은 입학식 연설에서 "우리가 마주한 투쟁은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적"이라며 "공산주의자들 투쟁의 큰 방향은 공산당의 영도와 사회주의 제도를 흔들리지 않게 견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79
2019년 09월, 66세 때, 시진핑은 같은 입학식 연설에서 "투쟁은 일종의 예술로, 투쟁에 능해야 하며 원칙 문제에선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 투쟁정신과 투쟁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비바람을 맞으며 단련을 통해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180
2019년 09월, 66세 때, 시진핑은 같은 입학식 연설에서 "모순이 있으면 투쟁이 있어야 한다"며 "간부는 투쟁의 지휘자인 동시에 전투원으로 내정과 외교, 국방 모든 방면에서 과감히 투쟁하고 투쟁에 능한 전사가 돼야 한다"고 다그쳤다.
181
2020년, 66~67세 때, 시진핑은 코로나19가 중국을 덮쳤을 때 중의(中醫)의 활약에 은근한 기대를 걸었다.
182
2020년, 66~67세 때, 시진핑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및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쌍순환' 개념을 처음 제기했다.
183
2020년 02월, 66세 때, 시진핑은 코로나19 대응 미숙을 이유로 런즈창으로부터 공개적으로 "광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184
2020년 10월 23일, 67세 때, 시진핑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이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항거하는 정의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고 말했다.
185
2020년 10월 23일, 67세 때, 시진핑은 같은 연설에서 '정의'라는 단어를 여덟 차례 언급했다.
186
2020년 10월 23일, 67세 때, 시진핑은 미국이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침입시켜 중국의 안보와 인민의 생명이 중대한 위협에 처했다고 강조했다.
187
2020년 10월 23일, 67세 때, 시진핑은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 평화의 승리, 인민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188
2020년 10월 23일, 67세 때, 시진핑은 "약한데도 이겼다(以弱勝强)"고 강조했다.
189
2021년, 68세 때, 시진핑은 "공동부유(共同富裕)" 구호를 내세워 민영기업의 기부를 사실상 강제했다.
190
2021년 05월 31일, 67세 때, 시진핑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믿을 수 있고 사랑스럽고 존경받는" 이미지를 갖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191
2021년 07월 01일, 68세 때,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누구라도 중국을 건드릴 망상을 한다면 14억 중국 인민의 피와 살로 쌓아 올린 강철 장성 앞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2
2021년 09월, 68세 때, 시진핑은 유엔총회에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를 발표했다.
193
2021년 11월, 68세 때, 시진핑은 역사결의를 발표하며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의 역사를 네 단계로 나눴다.
194
2021년 11월, 68세 때, 시진핑은 역사결의에서 자신이 집권한 2012년 이후 중국의 신시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95
2022년, 69세 때, 시진핑은 집단주의적 신념에 따라 제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해 상하이를 약 두 달간 봉쇄했다.
196
2022년, 69세 때, 시진핑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해 상하이가 두 달여간 봉쇄되며 민심이 악화하자, 중국 언론에 리커창 총리의 동정이 부각되는 국면 속에서 잠시 대중의 눈을 피했다.
197
2022년, 68~69세 때, 시진핑은 그동안 민영 기업을 강하게 단속해오다가 돌연 "나는 일관되게 민영 기업을 지지해왔다"고 말했다.
198
2022년, 68~69세 때, 시진핑은 자신의 당 중앙 핵심 지위와 권위, 집중 통일영도를 지키자는 '두 개의 수호' 운동을 전당에 동원해 펼쳤다.
199
2022년 03월, 68세 때, 시진핑은 중앙당교 중청년 간부 연수반 개강식 강연에서 "좁은 길에서 만나면 용감한 자가 승리한다는 기개로 싸움에 과감하고 능해야만 비로소 존엄과 주체성을 얻고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할 수 있다"며 위대한 투쟁을 재차 역설했다.
200
2022년 03월, 68세 때, 시진핑은 같은 개강식 강연에서 "젊은 간부는 반드시 등을 반듯하게 세우고 적진으로 앞장서 들어가며 싸우는 과정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며 세상 물정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
2022년 04월, 68세 때, 시진핑은 보아오포럼 연설에서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를 처음 제창했다.
202
2022년 04월, 68세 때, 시진핑은 GSI에서 대항 대신 대화, 동맹 대신 동반자, 제로섬 대신 윈윈과 같은 새로운 안보의 길을 주장했다.
203
2022년 09월, 69세 때, 시진핑은 능상능하 규정 수정안을 발표했다.
204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20차 당대회에서 차이치를 정치국 상무위원회 서열 5위로 발탁했다.
205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중국 내부 연설에서 차이치와 16~17년간 함께 일했다며 그에 대한 인상이 깊다고 말했다.
206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차이치가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하는 것을 "효도(孝道)"라고 평가했다.
207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차이치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어려운 하급 간부를 돕는 것을 "후도(厚道)"라고 평가했다.
208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차이치가 자신에게 승진을 부탁한 적이 없는 것을 "정도(正道)"라고 평가했다.
209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우리 당은 이런 간부를 써야 한다. 인품이 좋다는 게 첫 번째"라고 말했다.
210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10년 집권의 관례를 깨고 당 총서기 3연임에 성공했다.
211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20차 당대회 보고에서 "중국식 현대화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12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20차 당대회 보고에서 중국식 현대화의 특색으로 거대한 인구 규모의 현대화, 전체 인민의 공동 부유 현대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공생, 평화발전의 길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213
2022년 10월, 69세 때, 시진핑은 옌안혁명기념관을 방문했다.
214
2023년 03월, 69세 때, 시진핑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다시 당정기구 개혁을 단행했다.
215
2023년 03월, 69세 때, 시진핑은 전국인민대표대회(양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지었다.
216
2023년 03월, 69세 때, 시진핑은 중국공산당과 세계 정당 고위층 간의 토론회에서 "남의 불을 끄는 것으로 자신을 더 빛나게 할 수 없고, 남의 길을 막는다고 자신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217
2023년 03월, 69세 때, 시진핑은 "민영기업은 우리 편"이라고 말했다.
218
2023년 03월 10일, 69세 때, 시진핑은 제14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세 번째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뒤 중국 헌법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219
2023년 03월 10일, 69세 때, 시진핑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찬성 2952표의 만장일치로 국가주석 3연임에 성공했다.
220
2023년 03월 11일, 69세 때, 시진핑은 자신의 측근인 리창을 국무원 총리로 임명했다.
221
2023년 03월 15일, 69세 때,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과 세계 정당 간의 고위급 대화 연설에서 "꽃 한 송이 홀로 피었다고 봄이 아니다. 온갖 꽃이 만발해야 봄이 정원에 가득한 것이다"라며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GCI)'를 제안했다.
222
2023년 04월, 69세 때, 시진핑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중 시 광저우 쑹위안빈관으로 초청해 중국의 옛 거문고 연주곡 '유수'를 함께 들으며 개인적 우의를 강조했다.
223
2023년 06월 07일, 69세 때, 시진핑은 내몽골 시찰 자리에서 "쌍순환은 폐관쇄국이 아니다. 남이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 우리가 살아남는 건 물론 더 잘살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224
2023년 06월 07일, 69세 때, 시진핑은 내몽골 시찰에서 "내순환 구축에 나서는 이유는 '극단 상황'을 맞았을 때 국민경제를 정상적으로 운행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225
2023년 06월 27일, 70세 때, 시진핑은 베이징을 방문한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와의 회담에서 "우리가 자립자강을 강조하는 건 절대로 폐관쇄국이 아니다. 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을 더 잘 연결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진핑

시진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