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 월요일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 2026년 10월 26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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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00월 00일, 출생 전, 살로메 주라비슈빌리의 집안은 붉은 군대가 조지아 민주공화국을 침공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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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03월 18일, 0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기술자 레반 주라비슈빌리와 제이나브 케디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지아 망명정부와 가까운 이민 가정에서 파리와 뢰빌쉬르오르주의 조지아인 공동체 안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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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0월 00일, 8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파리를 찾은 조지아 발레단을 통해 처음으로 조지아에서 온 사람을 만났는데, 소련 당국의 감시 때문에 이 만남은 비밀리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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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9월 00일, 17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바칼로레아 성적으로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준비과정에 곧바로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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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8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외교관 양성 경로인 시앙스포 국제학부에 들어가 장바티스트 뒤로젤, 엘렌 카레르 당코스 등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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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5월 00일, 18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917~1923년 유럽의 혁명과 반혁명을 주제로 한 최종 시험을 치러 시앙스포 본과 진학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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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20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로 건너가 1973년까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게서 소련 정치와 냉전 외교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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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7월 00일, 20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소련권 연구에 집중한 끝에 시앙스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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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00월 00일, 2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프랑스 외교부에 들어가 1977년까지 로마 주재 3등 서기관으로 일했고, 이어 1980년까지 유엔 주재 프랑스 대표부 2등 서기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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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0월 00일, 2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유엔 대표부에서 자크 레프레트와 함께 일하며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은 회기(1978년 10월, 1980년 1월)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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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0월 00일, 29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세계은행 경제학자 니콜라 고르제스타니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딸 케테반과 아들 테이무라즈가 태어났고, 결혼은 1992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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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00월 00일, 3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파리 외교부 정책기획실 근무를 마치고 워싱턴 주재 프랑스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부임해 미·소 관계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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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0월 00일, 34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처음으로 조지아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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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0월 00일, 3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989년까지 빈에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프랑스 대표부 1등 서기관으로 재래식 전력 감축 협상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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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0월 00일, 37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992년까지 차드 주재 프랑스 대사관 참사관으로 일했고, 이 기간에 이드리스 데비가 프랑스가 지원한 쿠데타로 집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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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0월 00일, 40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 프랑스 대표부 1등 서기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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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0월 00일, 4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996년까지 브뤼셀에서 서유럽연합(WEU) 주재 프랑스 차석대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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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0월 00일, 4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프랑스에 정치 망명 중이던 조지아 작가이자 언론인 잔리 카시아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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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0월 00일, 44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997년까지 파리 외교부 장관실 기술 고문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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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0월 00일, 45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998년까지 외교부 감찰관을 지낸 뒤 외교부 전략·안보·군축국 전략담당 부국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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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0월 00일, 49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외교부 부국장직을 떠나 국방사무총국(SGDN) 국제·전략담당 국장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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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0월 00일, 5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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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9월 11일, 5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 아래에서 주조지아 프랑스 대사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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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8일, 5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미헤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에 의해 조지아 외무장관에 지명돼 이 자리에 오른 첫 여성이 됐다. 프랑스와 조지아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조지아 국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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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0월 00일, 5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해임 뒤 프랑스 외교관직을 사임하고 조지아에 남아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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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5월 19일, 5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조지아 내 러시아 군사기지 철수 협정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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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9일, 5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의회 의원들과의 갈등 끝에 주라브 노가이델리 총리에게 외무장관직에서 해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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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00일, 5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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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0월 00일, 54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회고록 『두 나라를 위한 한 여성(Une femme pour deux pays)』을 그라세 출판사에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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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0월 00일, 54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시앙스포 파리국제대학원(PSIA) 교수로 돌아가 2014년까지 강대국 외교정책과 탈소련 세계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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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00일, 5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의 「사실상 일당 체제」를 비판하며 새 정당 「조지아의 길」 창당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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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11일, 5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의 길」 대표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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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05일, 54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트빌리시 시의회 선거에서 「조지아의 길」이 2.77% 득표에 그치는 결과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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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00일, 55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의 길」을 야권 연합 「통합 야당」에 합류시켰고, 이 연합은 2008년 1월 대선에서 레반 가체칠라제가 이기면 그를 총리로 세우겠다고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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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26일, 57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며 니노 부르자나제, 다비트 감크렐리제, 에카 베셀리아와 함께 트빌리시에서 항의 행진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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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2일, 58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의 길」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고, 후임은 카하 세투리제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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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0월 00일, 60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남편 잔리 카시아와 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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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0월 00일, 6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2년간 정치를 떠나 있다가 2013년 대선을 앞두고 집권당 「조지아의 꿈」 지지를 공개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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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0월 00일, 6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프랑스 이중국적을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선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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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08일, 64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총선에서 트빌리시 므타츠민다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나서 의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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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8일, 64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 의회 의원으로 임기를 시작했고, 재임 중 디아스포라·캅카스 문제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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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20일, 65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2018년 대선 출마에 대해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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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06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자택 뒤뜰에서 연 브리핑에서 대선 출마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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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6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이메레티주 디디 지하이시 마을에 있는 선조 니코 니콜라제의 생가 박물관에서 대선 운동을 공식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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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23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이중국적자의 대통령 취임을 막는 헌법 규정에 따라 프랑스 국적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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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09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집권당 「조지아의 꿈」으로부터 무소속 대선 출마에 대한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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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대선 1차 투표에서 38.64%를 얻어 결선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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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8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대선 결선 투표에서 59.52%를 얻어 통합국민운동 후보 그리골 바샤제를 꺾고 조지아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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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6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텔라비의 에레클레 2세 궁전에서 하객 1,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지아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같은 날 대통령 권한을 크게 줄인 새 헌법이 발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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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8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아블라바리 대통령궁 대신 집무 공간으로 정한 트빌리시 아토넬리 거리의 오르벨리아니 궁전에 처음 걸어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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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06일, 66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제9대 의회에 대통령으로서 첫 연례 보고를 했으나 야당 「유럽 조지아」 교섭단체는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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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25일, 67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뉴욕 제74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며 점령 문제, 조지아 정치 상황, 보건, 기후변화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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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05일, 67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벨기에·프랑스 여성 지도자 회의를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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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 10일, 67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코로나19 위협을 이유로 불가리아·벨기에·우크라이나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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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 21일, 68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 전역에 한 달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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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21일, 68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국가비상사태를 5월 21일까지 연장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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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0일, 69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여야 합의를 중재한 샤를 미셸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을 위해 대통령궁에서 공식 만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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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05일, 69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트빌리시 프라이드 사무실 습격 사건으로 다친 기자들을 병원으로 찾아가고 폭력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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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0월 00일, 70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대십자 경식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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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00일, 7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정부 동의 없는 브뤼셀·파리 방문과 대사 임명 서명 거부를 문제 삼아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소송 두 건을 내겠다고 발표하면서 정부와 정면으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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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31일, 7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국정 연설에서 「조지아의 꿈」이 친유럽 약속을 저버리고 일당 지배로 기울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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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 01일, 7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이라클리 코바히제 「조지아의 꿈」 대표가 무단 해외 방문을 이유로 탄핵 절차 착수를 발표하면서 탄핵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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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 22일, 7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의원 80명이 서명한 탄핵 청원이 헌법재판소에 제출되면서 탄핵 심판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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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6일, 7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 역사상 첫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 위반 판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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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8일, 71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의회 탄핵 표결에서 찬성 86표, 반대 1표, 기권 57표로 가결 정족수 100표에 미치지 못해 탄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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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00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이른바 「러시아법」 반대 시위를 지지했다가 코바히제 총리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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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0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0월 총선 뒤 과도정부를 세우기로 한 야권 공동 문서 「조지아 헌장」 서명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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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해외 자금 20% 이상을 받는 단체를 「외국 세력 이익 대변 조직」으로 등록하게 하는 법안이 찬성 84표로 의회를 통과하자 곧바로 거부권 행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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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8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야당이 표결을 거부한 가운데 의회가 찬성 84표, 반대 4표로 거부권을 무효화하면서 법안 저지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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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7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의회를 통과한 「성소수자 선전 금지법」에 서명도 거부권 행사도 하지 않고 법안을 국회의장 서명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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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2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총선 전에 기술관료 정부안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주요 야권 연합 넷에 「조지아 헌장」 이행을 확약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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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7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기자회견에서 전날 총선 결과를 「전면 조작」이자 러시아의 특수작전이라고 부르며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시민들에게 루스타벨리 대로 시위 참여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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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0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선거 부정 주장과 관련해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았으나 증거는 이미 공개돼 있다며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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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8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총선 결과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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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새 의회 개원식에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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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08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파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고, 일론 머스크, 조르자 멜로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도 회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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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4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의회 주도의 간접선거에서 미헤일 카벨라슈빌리가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이 선거를 무효로 보고 대통령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개헌으로 그는 국민 직선으로 뽑힌 마지막 조지아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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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8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유럽의회에서 연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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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7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후임 선출이 무효이며 자신이 대통령으로 남는다고 거듭 밝혔고, 같은 날 미국 헬싱키위원회 위원장 조 윌슨 하원의원에게서 트럼프 취임식 초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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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9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카벨라슈빌리가 취임하자 오르벨리아니 궁전을 떠나면서 자신이 여전히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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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0월 00일, 7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몰도바 공화국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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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06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워싱턴의 매케인 연구소로부터 2025년 키신저 펠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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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09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초벨리제 거리의 새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조지아가 한 정당과 한 사람에게 장악돼 「붕괴 직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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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18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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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3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유럽의회가 카벨라슈빌리 등 「조지아의 꿈」 당국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조지아의 합법 대통령으로 계속 인정한다고 결의하는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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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4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16일까지 열린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정상급 인사들과 회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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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8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뮌헨에서 돌아오던 트빌리시 국제공항에서 기오르기 가하리아와 함께 계란 투척과 욕설 공격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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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3월 10일, 72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야당 정치인들과 비공개로 만나 차기 총선에 대비한 「공동 조정 전선」 결성과 3월 31일 집회 개최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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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04일, 73세 때,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지방선거 당일 시위대 일부의 대통령궁 진입 시도를 두고 310일째 이어진 평화 시위를 깎아내리려는 정권의 연출일 뿐이라며, 새 선거를 이룰 때까지 평화적으로 시민 곁에 서겠다고 밝혔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