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09일 월요일

김현태 : 707의 밤

김현태 707 특임단장이 용산 대통령실 앞 길거리에서 비상 계엄이 선포됐던 2024년 12월 3일 서울의 밤을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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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9일 오전 8시 30분 김현태 707 특임단장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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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연초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김현태에게 서울 지역 동시 다발 테러에 대해 얘기했고+대비와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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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테러가 나고 경찰의 통제 능력을 초과했을 때 테러방지법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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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에서 5월 사이에 707 부대는 대테러 작전을 위해 노들섬에 전개하는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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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0일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08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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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 특전사령관은 김현태 707 특임단장에게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과 같은 서울 시내 테러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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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국방부장관은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서울 시내 테러 가능성에 관해 계속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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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김현태에게 시간이 갈수록 강도를 높여가면서 서울 시내 테러 대비 훈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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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특임단장은 곽종근 특전사령관도 비상계엄에 관해선 사전에 몰랐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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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김용현에게 계속 유사시를 “준비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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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은 국정원이나 다른 첩보 기관으로부터 테러 관련된 첩보를 곽종근 사령관이 받고 얘기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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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무총리실 대테러센터에서 3년 동안 일했고 자신의 정보 루트로는 별다른 특이 동향이 없는데 곽정근이 계속 서울 시내 테러 대비를 강조해서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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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계엄 선포 전달인 2024년 12월 2일 김현태는 아무일도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만 2024년 12월 3일 당일 훈련 계획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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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무슨 일에 대비하는 지도 모른 상태에서 우선 항공작전사령부와 함께 세부 계획은 짜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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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가 수립한 작전 내용은 평소와 같은 서울 시내 동시 다발 테러 훈련 SOP 작전이었고=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테이저건과 방패로 테러를 막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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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계엄 선포 당일인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곽종근은 김현태에게 서울 시내 테러와 관련한 임무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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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당일 곽종근은 이전 대테러 임무에 대한 얘기보단 훨씬 높은 수준으로 말하면서 곽종은은 김현태에게 “나도 아무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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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방부 대테러 작전계획상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이 총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비살상 무기를 사용한 무력 진압 작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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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낮 707 부대원들은 훈련 관련 군장 검사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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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 무기는=개인별 테이저건 1정+공포탄 휴대+방패+포박용 케이블 타이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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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는 비상 상황에서 개인별 고유 무기를 휴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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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김현태는 곽종근으로부터 대기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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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자신에게 뭔가 발표될 것으로 얘기했고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김현태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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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김현태에게 저녁에 TV를 잘 보고 있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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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김현태 포함 특전사령부 소속 처장 7명 정도와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6시에 저녁 식사를 부대 회관에서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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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과 김현태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6시 40분 경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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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항공작전사령부도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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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특전사령부 헬기장에 안전 요원을 배치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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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707 부대원들을 모두 퇴근시켰지만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7시 50분에 비상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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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는 1시간 이내 출동 완료가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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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8시 50분에 707 부대 출동 준비 완료를 했고+군장 검사까지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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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저녁 식사 이후에는 계속 TV를 모니터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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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출동 준비 완료 이후 30분 동안 부대 상황을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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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3일 밤 10시까지도 TV에서 아무런 발표가 없자 아무 일 없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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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비상 계엄이 선포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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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특수전 사령부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 일 없고 비상은 걸었으니 훈련이라고 하기 위해서 헬기를 띄워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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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 특전사령관은 훈련을 하지 말고 헬기도 보내지 말고 대기만 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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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10시 경 김현태는 707 부대원들에게 “미안하다”면서 “헬기가 안 온다니 이걸로 오늘은 끝내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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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퇴근 지시를 하고 이동하는 상황에서 지휘통제실에서 “TV에서 뭔가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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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10시 23분 TV를 보면서 퇴근했다가 다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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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를 TV를 통해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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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계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명령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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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 직후 곽종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비화폰으로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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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비화폰은 녹음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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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최초 지시로 김현태에게 “바로 출동할 수 있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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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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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그럼 빨리 국회로 출동할 준비를 해라. 헬기 12대 올 것이다”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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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이때 출동지가 국회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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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빨리 국회를 봉쇄하고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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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퇴근하던 707 부대원들에게 “야 다 들어와”라고 소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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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707 부대원들에게 출동 준비를 지시했고+출동 준비에만 20분 정도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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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707 부대원들에게 개인 화기에서 “총기는 빼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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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실탄을 쓸 것두 아닌데 괜히 들고 가다가 흘리거나 분실할 수 있다”고 순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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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들은 “아니다”라고 해서 개인 총기를 휴대하고 개인 백팩을 매고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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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헬기별로 실탄을 1통씩 통합 보관하게 명령했고+최고 훈련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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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은 헬기별로 8명씩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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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 기준 개인당 5.56밀리 실탄 10발+9밀리 실탄 10발이 지급됐지만=개인에게 직접 지급되진 않고 헬기별로 통합 보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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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보관 탄통 안에는 저격수 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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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박스 안에는 공포탄+연습용 수류탄 30여발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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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전에서든지 실탄을 휴대하지만 통합 보관하는 것은 707 특임대의 훈련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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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진입 작전에서도 마찬가지 훈련 원칙에 따라 최소 분량 탄과 총을 휴대시켰고+”사용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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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이 707 부대의 국회 진입을 명령했을 때 김현태는 계엄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군에 의한 계엄 통제 대상은 행정부와 사법부이고 입법부인 국회는 예외라는 사실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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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계엄 상황에서 국회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는 그런 것을 몰랐다”지만 “모르는 것도 저의 잘못이고 부대원들을 내란죄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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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의 국회 투입 지시를 받은 직후 30분 정도 지난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11시 김현태와 707 부대원들은 헬기장으로 이동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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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도착은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11시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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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도착이 김현태의 예상보다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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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전사령부 특강단장 역시 퇴근한 조종사들을 소집해서 출발하느라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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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구조를 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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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대기하면서 김현태에게 곽종근에게 국회에 가서 “국회와 국회회관=국회본청과 의원회관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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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김현태에게 국회 운동장으로 헬기가 내릴 것이라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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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대기하면서 김현태는 T맵으로 국회 구조=운동장이 뒤에 있고 가운데 의사당과 옆에 회관으로 보이는 큰 건물이 있다는 등의 사실을 숙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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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저녁 11시 경 김현태를 비롯한 707 부대원들은 모두 헬리패드에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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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T맵을 캡쳐해서 노트패드로 건물을 노트펜으로 표시해서=의원회관은 3지역대 투입+본청은 1지역대+7지역대+9지역대 투입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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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도착한 헬기는 6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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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가 707 특임대를 태우러 헬기장에 맨 처음 도착한 시각은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20분 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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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특임대 헬기패드는 최대 6대까지만 동시에 착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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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간격으로 헬기가 6대씩 오는 것으로 이동 계획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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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온 3대 중 1대=1번기에 김현태 707 특임대장이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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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가 탄 1지역대가 국회의사당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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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가 곽종근에게 받은 최초 지시는 “국회를 봉쇄해서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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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헬기에 탑승한 김현태는 다른 헬기=총 3대에 나눠탄 707 부대원들 24명과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50분 경 정도에 국회 운동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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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3대가 먼저 국회의사당 운동장에 도착했을 당시 김현태는 막상 도착하고 나니 국회의사당아 너무 크고 최초 3대로 도착한 24명이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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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투입된 707 부대원은 96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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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96명 모두 국회의사당으로 모이라고 추가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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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들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한쪽에 개인 화기들을 모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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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들은 국회에 투입될 당시에는 개인 총기 2정과 개인 복장만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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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의 저격수는 저격총을 휴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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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96명 부대원과 함께 작전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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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 특전사령관이 707 부대원들을 헬기로 추가로 투입했고 총 197명이 국회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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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곽종근으로부터 2024년 12월 3일 10시 30분부터 30통 이상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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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총 100통 이상의 전화를 통해 국회 장악 작전을 통합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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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국방부장관은 계엄사령부 지휘통제실에서 계속 비상 계엄을 통합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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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과 곽종근의 전화 명령은 김현태한테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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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고 곽종근을 거쳐 김현태한테도 반복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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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김현태에게 실시간으로 도착 상황과 작전 상황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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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냐?” “도착 5분전입니다.” “어디쯤이냐?” 1분 간격으로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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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4일 00시 무렵 김현태는 최초로 국회 본청 후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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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정도의 국회 경비대와 24명 707 부대원들 사이의 몸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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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이 유리 자동문이라 잠글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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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는 것을 보고 김현태는 후문은 자동 차단이 됐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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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본청 정문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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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본청 정문에 수백명이 운집해 있는 것을 보고 진입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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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4일 수요일 밤 12시 30분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몸싸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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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그래도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기 위해 벽을 타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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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정문 안쪽에서 일렬로 막아보려고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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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가 “할 수 있겠냐”고 묻자 707 부대원들은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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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들은 개인 장비를 내리고 필수 장비만 휴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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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의 시민들에게 막히자 김현태는 정문을 통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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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곽종근에게 정문을 통해 국회 본청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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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부대원들도 힘들어하고 현재 상황 통제가 어렵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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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 사령관의 동의 하에 김현태는 707 부대원 병력을 최대한 뒤로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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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현장에 있는 관계자들과 기자들과 시민들에게 “저는 계엄 사령부의 지시를 받고 왔을 뿐이며 계엄 사령부로 문의하십시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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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707 특임단 부대원들이 국회 정문에서 몸싸움을 하면서도 서로 “우리가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 짓이냐”면서 자괴감 섞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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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707 부대원들이 작전 수행에 소극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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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1분 가격으로 곽종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자괴감을 느낄 찰나도 없이 명령을 수행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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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4일 밤 12시 30분 전후=곽종근은 김현태에게 “국회의원들이 모이고 있단다.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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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진입 하는 과정에서 곽종근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데 가능하겠냐”는 질문을 받았고 “진입도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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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근은 “그래 알겠다”고 답하면서 “무리하지 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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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은 곽종근에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말했지만 곽종근은 김용현의 지시를 김현태한테 전달은 했지만+김현태가 현장 상황 때문에 명령 수행이 어렵다고 말하면+곽종근은 강압하지 않았다고 김현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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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707 특임단장은 곽종근 특전사령관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고 이것이 팩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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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707 특임대는 체포에 대한 명령을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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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정치인 명단이나 체포 명령을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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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안전하게 국회 본청 안으로 들어가서 안쪽에서 정문을 차단하는 것으로 작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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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다른 출입문이나 열려 있는 창문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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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들은 국회 본청의 모든 문을 체크했지만 모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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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안 되겠으니 창문을 깨라고 명령했고+생각보다 유리문이 잘 안 깨졌고+필름으로 된 강화 유리와 같은 느낌이었고+망치를 써도 잘 깨지지 않았고+높아서=30초 이상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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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관계자들이 707 부대원들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서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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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 정도의 707 부대원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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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도 10번째로 국회 본청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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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와 707 부대원들이 진입한 공간은 우연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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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4일 새벽 0시 38분 경 707 특임대는 김현태의 지휘로 국회 본청에 침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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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가 받은 지시는 “국회 봉쇄”였기 때문에 김현태는 국회에 진입해서 정문에서 국회를 봉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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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를 봉쇄하기 위해서 안에서 밖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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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가 받은 지시는 국회에 아무도 들어오고 나가지 못하게 봉쇄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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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봉쇄 명령을 지키기 위해 국회에 진입해서 안쪽에서 밖을 봉쇄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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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창문을 깨고 들어가서 본회의장이 아니라 국회 정문 봉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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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정문 방향을 몰라서 정문 방향인 왼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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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와 707 부대원들은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에서 문을 열자마자 정문 방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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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이동하다가 바리케이트가 쌓인 유리문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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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부대원들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했고 유리문 개방하자 밀고 들어가려다가 소화기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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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부대원들을 뒤로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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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곽종근에게 20통 정도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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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들 중 김현태에게 테이저건 사용 허가 여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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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원들 모두 개인별로 무전기를 갖고 있었지만 김현태의 명령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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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가 국회 진입을 시도하려고 무전기로 송신했을 때 모였던 부대원은 30명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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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명 정도의 부대원은 김현태와 교신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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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와 부대원들은 국회 1층 로비에서 길이 막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지만 지상 2층과 4층과 지하층 등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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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과 부대원들은 지하 1층에서 안규백 의원과 보좌관들과 마주쳤지만+부대원들에게 체포 지시나 제지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몸을 피해서 지나가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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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를 봉쇄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국회 본청 안에 들어온 사람에 대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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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명령은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국회 의원에 대해선 부대원들에게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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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보고했기 때문에 끌어내라는 명령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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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와 707 부대원들은 국회 4층 유리문에서 다시 한번 몸싸움을 벌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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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2분 국회에서 비상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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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상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실탄 사용 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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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설사 실탄 사용을 지시했더라고 그 말을 따를 707 부대원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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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부대원들과 국회 보좌진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김현태는 상대편에서 “방금 국회에서 비상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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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곽종근에게 “가결됐다”고 한다고 전화했고 곽종근은 그럼 부대를 철수시켜라고 말해서+김현태는 707 부대원들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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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총 192명의 707 부대원들이 투입됐다고 국회 현장에선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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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복구 이후 총 195명의 707 특임대원들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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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6일 금요일 김현태는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여의도로 향했지만+국방부에서 연락이 와서 취소됐으니 차를 돌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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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707 특임단장과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포함 3명이 함께 국회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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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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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7일 토요일 김현태는 부대원들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TV를 통해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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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7일 토요일 오후 9시 20분 최종적으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는 것을 보고=김현태는 국방위원회도 안 열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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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방위원회에서 증언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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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자신이 별도 기자회견을 열 생각까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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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8일 일요일 저녁 국방부의 아는 기자에게 연락해서 기자회견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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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8일 일요일 저녁 늦게 기자 회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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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새벽 늦게까지 기자회견문을 작성하고 기자회견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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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국방부 지인 기자에겐 미리 전파를 하면 자신은 출발도 못하고 기자회견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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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자신의 기자 회견을 누군가 막을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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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특수전사령부 위수 지역을 벗어났을 때쯤 전화를 해서 기자회견 사실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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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9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 위수지역을 벗어나서 근무지에서 이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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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2024년 12월 9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 용산 대통령실 맡은 편 육군박물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게 707 부대원들은 모두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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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지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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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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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미워해도 707 부대를 버리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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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면 707 부대원들까지 모두 처벌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민 여러분께서 저희 부대원들을 살펴주시길 부탁드리기 위해 나왔다.”

김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