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0화LIFE COUNT
1077.03~1144·1화척준경
척준경
1
1077년 3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문종의 3남 계림후 왕희가 계림공으로 승작되자 그의 소속 종자로 들어갔다.
2
1095년,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계림공이 보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인연을 맺어 추밀원 별가(말단 관리)로 들어가 왕명 출납, 궁중 숙위, 군기 업무를 담당하는 남반으로 지냈다.
3
1104년 2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여진족이 정주성을 공격하여 전면 패주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정평과 선덕관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공을 세웠다.
4
1104년 2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품계 없는 하급 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총사령관 임간에게 직접 말 한 필과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5
1104년 2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임간에게 받은 무기와 말을 이용해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장 한 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되찾았다.
6
1104년 2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교위 준민, 덕린과 함께 활을 쏘아 적들을 거꾸러뜨려 적의 진격을 늦췄다.
7
1104년 2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퇴각 중 적 100기가 추격해오자 대상 인점과 함께 적장 두 명을 사살하여 아군이 무사히 성으로 들어오게 했다.
8
1104년 2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위와 같은 전공으로 천우위 녹사참군사 벼슬을 받았다.
9
1126년,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이자겸의 난 당시 인종 세력에 의해 동생과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10
1126년,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인종의 중재를 무산시키고 궁성 동화문 행랑에 땔감을 모아 불을 지르는 반역 행동을 했다.
11
1126년,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수춘궁 정문에서 기습을 당해 죽을 뻔했으며, 분노하여 수춘궁에서 나오는 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12
1126년,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왕의 침실까지 쳐들어갔으나 왕의 호위무사 2명에게 패하여 퇴각하는 실패를 겪었다.
13
1126년 [날짜불명] 임술일,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이자겸과 함께 궁궐을 불태웠다.
14
1126년 [날짜불명] 계해일,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이자겸과 함께 왕을 협박해 남궁으로 옮기게 한 뒤, 안보린 등 17명과 수많은 군사를 살해했다.
15
1126년 5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인종의 명령을 받아 사병을 이끌고 궁궐에 침입하려던 이자겸을 체포하여 유배 보내는 성과를 거뒀다.
16
1126년 5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이자겸을 제압한 공으로 검교태사, 수태보,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의 직위에 올라 고려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17
1127년 3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정지상과 김안 등의 탄핵과 인종의 견제로 인해 신안 엄타도로 유배되는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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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년 3월,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최고 권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의 유배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선택을 했다. 이유는 주체적인 정치 도모 능력이 부족했고 군권을 빼앗겼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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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년, [나이불명] 세 때, 척준경은 유배지에서 등창으로 인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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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년, [나이불명]세 때, 척준경은 유배지에서 등창으로 인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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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년, [나이불명]세 때, 척준경은 유배지에서 등창으로 인해 사망했다.

척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