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0화

LIFE COUNT

1076~1116.05.22·1화

오연총

오연총

1
1076년, 21세 때, 오연총은 중국에서 고려로 들어와 정착했다.
2
1079년, 24세 때, 오연총은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3
1096년 10월, 41세 때, 오연총은 요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천안절을 하례하고 귀국했다.
4
1098년, 43세 때, 오연총은 기거랑에 임명되었다가 병부낭중을 거쳐 시랑으로 승진했다.
5
1100년 7월, 45세 때, 오연총은 상서 왕하와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휘종의 즉위를 축하했다.
6
1101년 6월, 46세 때, 오연총은 송나라에서 귀국했으며, 황제의 허락을 받아 송나라 사람들이 구입을 허락하지 않던 희귀 서적인 《태평어람》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7
1101년, 46세 때, 오연총은 송나라 황제가 숙종에게 《태평어람》 1천 권을 하사하게 했으며, 송나라 조정에서 해동의 문물이 일어났다는 소문과 표장의 문장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음을 숙종에게 보고했다.
8
1104년 3월, 49세 때, 오연총은 근무 고과 성적이 가장 높게 평가되어 소환되었으며, 추밀원좌승선·형부시랑·지어사대사에 임명되었다.
9
1104년, 49세 때, 오연총은 임명 3달도 되지 않아 상서좌승·한림시독학사로 승진했다.
10
1104년, 49세 때, 오연총은 왕이 남경에 행차했을 때 권지추밀원부사로서 평장사 이오, 참지정사 오수증, 판어사대사 임의와 함께 호종했다.
11
1104년 [월불명], 49세 때, 오연총은 추밀원부사·한림학사에 임명되었다.
12
1105년, 50세 때, 오연총은 동지추밀원사·비서감·한림학사승지, 지추밀원사·어사대부·한림학사승지, 동북면병마사·지행영병마사, 동계행영병마사를 차례로 역임했다.
13
1106년, 51세 때, 오연총은 신기군의 징발 조건 완화를 건의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냈다.
14
1106년, 51세 때, 오연총은 남경 공사로 인한 백성의 피로와 재정 고갈을 이유로 서경 용언의 궁궐 창건을 반대했으나,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과를 경험했다.
15
1107년, 52세 때, 오연총은 평장사 최홍사 등의 상주로 서경 궁궐 창건이 다시 거론되자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다시 반대했으나, 왕이 최홍사의 말을 듣고 창건을 강행하자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16
1107년, 52세 때, 오연총은 여진 정벌 결정 후 고려군 부원수직을 제수받았으나 이를 사양했다. 하지만 윤관의 권고를 받아들여 부원수직을 수락했다.
17
1107년, 52세 때, 오연총은 왕으로부터 경영전에서 친히 철도끼(부철)를 하사받고 여진 정벌에 출정했다.
18
1107년, 52세 때, 오연총은 별무반 17만 명을 거느리고 북상하여 여진 촌락 129개를 공격해 포로 1,030명을 잡고 4,940명을 사살하는 큰 공을 세웠다.
19
1107년, 52세 때, 오연총은 도원수 윤관과 함께 동북면 여진족에게 총공격령을 내려 여진족 5,000명을 사살하고 130여 명을 생포했다.
20
1107년, 52세 때, 오연총은 동북면에 9개의 성을 쌓아 국경을 튼튼히 했으며, 두만강 건너 선춘령에 고려국 정계비 세우는 것을 감독했다.
21
1108년, 53세 때, 오연총은 9성을 쌓은 공로로 협모동덕치원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좌복야·참지정사로 임명되었다.
22
1108년, 53세 때, 오연총은 웅주에 재침입한 여진족을 물리치고 개선하여 양구진국 공신호와 수사도·연영전대학사 관직을 받았다.
23
1108년 1월, 53세 때, 오연총은 윤관, 척준경, 왕자지 등과 함께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족 토벌을 위해 출정했다.
24
1108년 [월불명], 53세 때, 오연총은 가한촌 전투 중 험곡에서 윤관과 함께 여진족에게 포위되어 포로로 잡히는 실패를 겪었으나, 척준경의 급습으로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25
1108년 3월 30일, 53세 때, 오연총은 포로 346명, 말 96필, 소 300두를 노획하여 윤관 등과 함께 개경으로 개선했다.
26
1109년 9월, 54세 때, 오연총은 동덕치원공신 훈호를 받고 상서좌복야 참지정사가 되었으며, 자수안구와 구마 한 필을 하사받았다.
27
1109년 9월, 54세 때, 오연총은 여진이 웅주를 포위하자 부원수로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여 여진군을 격파하고 돌아왔으며, 다시 양구진국공신에 수사도 연영전대학사가 되었다.
28
1109년 10월, 54세 때, 오연총은 동계병마부원수로서 길주성을 함락시킨 여진족을 치기 위해 윤관과 함께 출정했다.
29
1109년 10월, 54세 때, 오연총은 공험진에서 여진족의 기습 공격을 당해 병력을 잃고 토벌에 실패했으며, 결국 화친을 맺고 돌아오는 결과를 맞았다.
30
1109년 11월, 54세 때, 오연총은 화친을 맺은 것을 이유로 평장사 최홍사 등의 탄핵을 받아 관직과 공신 자격을 박탈당하고 파면되는 실패를 겪었다.
31
1110년, 55세 때, 오연총은 표문을 올려 복직을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종의 배려로 수사공·중서시랑평장사·판삼사사로 복직되었다.
32
1112년 2월 27일, 57세 때, 오연총은 수사도·판병부사·감수국사 직을 더했다.
33
1112년 9월 12일, 57세 때, 오연총은 문하시랑 동 중서문하평장사로 승진했다.
34
1113년 12월, 58세 때, 오연총은 수태위·판예병부사·상주국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판이부사가 되었다.
35
1114년, 59세 때, 오연총은 추충공신에 녹훈되었다.
36
1116년, 61세 때, 오연총은 수사도를 거쳐 수태위 감수국사 상주국이 되었다.
37
1116년 3월, 61세 때, 오연총은 문하시중평장사에 제수되었다.
38
1116년 5월 22일(음력 5월 10일), 61세 때, 오연총은 향년 62세로 졸했으며, 문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오연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