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0화LIFE COUNT
1917.02.10~1970.07.12·1화채몽인
채몽인

1
1917년 02월 10일, 0세 때, 채몽인은 제주도 대정면(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출생했다.
2
1920년, 3세 때, 채몽인은 아버지 채구석의 사망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지는 상황을 경험했다.
3
1938년, 21세 때, 채몽인은 일본 오사카의 명성상업학교(메이세이상업학교)를 졸업했다.
4
1938년, 21세 때, 채몽인은 마쓰시다전기산업(현 파나소닉)에 입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5
1944년, 27세 때, 채몽인은 김혜숙과 혼인했다.
6
1945년, 28세 때, 채몽인은 서울 종로에 무역회사 대륭산업(대륭양행)을 설립하여 무역업을 시작했다.
7
1946년, 29세 때, 채몽인은 첫 번째 부인 김혜숙과의 사이에서 장녀 채성희를 얻었다.
8
1950년, 33세 때, 채몽인은 옥방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중석 등 지하자원 개발 사업에 진출했다.
9
1951년, 34세 때, 채몽인은 부인 김혜숙과 사별했다.
10
1954년, 37세 때, 채몽인은 인천 송월동에 자본금 5,000만 환과 대지 540평을 투입하여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를 창립하고 비누 생산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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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37세 때, 채몽인은 외항해운사인 동남해운을 설립하여 한일 화물 정기항로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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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39세 때, 채몽인은 애경유지공업을 통해 국내 최초로 종합유지분해공장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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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39세 때, 채몽인은 국내 최초의 화장비누인 ‘미향’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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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41세 때, 채몽인은 애경유지공업의 미향비누를 월 100만 개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5
1959년 06월, 42세 때, 채몽인은 장영신과 혼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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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43세~40대 초반 때, 채몽인은 생산 효율화를 위해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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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4세 때, 채몽인은 풍한산업 김영구 사장, 신일기업 이봉수 사장과 함께 국립소년직업훈련소(현 한국폴리텍대학 모태) 설립 자금으로 사회사업기금 2억 환을 기증하고 3.1절 표창을 받았다.
18
1962년, 45세 때, 채몽인은 국내 최초로 도료산업용 폴리에스테르수지를 생산했다.
19
1963년, 46세 때, 채몽인은 국내 최초로 가소제를 생산했다.
20
1964년, 47세 때, 채몽인은 국내 최초의 백색비누인 ‘우유비누’를 생산했다.
21
1966년, 49세 때, 채몽인은 합성세제 사업에 진출하여 국내 최초의 주방세제 ‘트리오’와 세탁용 합성세제를 출시했다.
22
1968년, 51세 때, 채몽인은 국내 최초로 석유화학제품인 무수프탈산 공장을 건설했다.
23
1968년, 51세 때, 채몽인은 재경제주장학회를 설립하고 회장을 맡아 장학사업에 매진했다.
24
1969년, 52세 때, 채몽인은 국내 최초로 강관용 방식도료를 생산했다.
25
1970년, 53세 때, 채몽인은 울산 국가산업단지에 석유화학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삼경화성주식회사(현 애경유화)를 설립했다.
26
1970년, 53세 때, 채몽인은 삼경화성의 울산 공장 건설을 위한 차관계약을 체결하고 공장 건설에 매진했다.
27
1970년 07월 12일, 53세 때, 채몽인은 심장마비로 인해 급환으로 타계했다.

채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