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8일 금요일

간 나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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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0월 10일, 간 나오토는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공장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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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도쿄공업대학 이학부 응용물리학과(현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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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대학의 자치회에 들어가 있던 중핵파와 대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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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이데올로기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라며 15명 정도의 학생들을 모아 "전학개혁 추진회의"를 세워 극좌 계열과는 다른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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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첨예화되고 있던 전공투나 일본 공산당의 지배 하에 있던 민청과도 달랐고, 학교에 친화적인 '체제 찬성파' 그룹도 아닌 제4의 그룹을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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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경, 간 나오토는 논 섹트 래디컬 그룹에 속해 있었고, 학원분쟁 당시 경시청 경비과장 삿사 아츠유키에 의해 "4번째 열의 사람"으로 목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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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경, 간 나오토는 아지를 포함한 연설로 청중을 모으는 데에는 뛰어났지만, 각목을 들고 검거를 각오하고 데모대를 돌진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당시 경시청 경비과장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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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경, 간 나오토가 이끈 "전학개혁 추진회의"는 200명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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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4세 때, 간 나오토는 도쿄공업대학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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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4세 때, 간 나오토는 변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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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4세 때, 간 나오토는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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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30세 때, 간 나오토는 정치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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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1980년, 간 나오토는 2차례의 낙선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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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4세 때, 간 나오토는 미니정당인 사회민주연합 당적으로 도쿄에서 첫 당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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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 간 나오토는 사회민주주의와 야권통합을 주장하는 사회민주연합(사민련)의 얼굴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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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7세 때, 간 나오토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와 오자와 이치로가 주도한 비자민 비공산 7당 연립정권에 참여하면서 행정 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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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의 연정 수립 이후 신당 사키가케 소속으로 후생대신(현 후생노동대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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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O-157 사건이 터져 무순이 식중독 대장균인 O-157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판매량이 폭락하자 기자회견장에서 무순 한 사발을 통째로 먹어치우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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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제약회사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제재를 혈우병 환자들에게 공급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일본 정부가 관련되었다는 것을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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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에이즈 혈액제재 사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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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0세 때, 간 나오토는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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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0세 때, 간 나오토는 신당 사키가케의 동료 의원들과 사회당 내 우파세력을 결집하여 민주당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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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0세 때, 간 나오토는 하토야마 유키오와 함께 민주당의 얼굴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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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7세 때, 간 나오토는 자유당 당수 오자와 이치로를 끌어들여 당세를 대폭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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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7세 때, 간 나오토는 오자와 이치로 영입으로 일본 정치에서 사실상 자민당vs민주당의 양당 체제가 성립하는 것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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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후, 간 나오토는 하토야마, 오자와와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하며 민주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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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4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지지율 하락과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인한 정치적 난국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하자 국회(중의원) 본회의에서 유효투표 477표 가운데 313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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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9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제9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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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 인상 발언으로 팀킬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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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도호쿠 대지진 하루 전에 재일교포에게 정치헌금을 받았던 사실이 나타나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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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이후, 간 나오토는 엔고 현상으로 인해 일본 경제가 위기국면으로 치달은 데다 일본 참의원 선거 참패라는 이중고로 총리직 유지가 위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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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4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민주당 대표선거 결과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을 여유 있는 표차(721 대 491)로 제치고 재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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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중국과 센카쿠 열도 문제로 충돌하다가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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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하려 하다 일본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입장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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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조선학교 무상화 검토로 극우파 의원들에게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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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메데프 대통령의 러시아 정상으로는 사상 첫 북방 4도 방문으로 인한 일본 외교의 무사안일함으로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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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북한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늦장대응으로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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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파병이 가능한 듯한 뉘앙스의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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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악의 도호쿠 대지진 상황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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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사건 극초반에 비교적 빨리 대책본부를 마련하고 5만명의 자위대 병력을 사건 현장에 급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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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5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도쿄전력이 사태를 수습 못하고 1호기가 폭발했는데도 보고조차 안 들어오자 직접 도쿄전력으로 쳐들어가서 지휘본부를 차리고 도쿄전력 직원들에게 "철수는 있을 수 없다!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반드시 무너진다"고 사자후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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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5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원전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해수 투입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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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0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제11회 통일 지방선거에서 가히 역사적인 참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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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6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골든 위크가 지나가자 도쿄 지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마오카 원전을 중지시키는 방안을 내놓고, 기어코 중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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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재해 복구가 대략 마무리되면 퇴진하기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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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일본 중의원의 내각 불신임안 표결에서 찬성 152 대 반대 293표로 부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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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64세 때, 간 나오토는 "올 연말까지는 총리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발언해 사실상 조기 퇴진 의사를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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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64세 때, 간 나오토는 지지율이 15%로 민주당 집권 이후 최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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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6일, 65세 때, 간 나오토는 자신이 공약한 퇴진 3조건인 2차 보정 예산안, 특례공채법안, 재생에너지 특별법안이 중참 양원에서 통과되면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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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일, 65세 때, 간 나오토는 노다 요시히코 신임 대표가 중참 양원에서 신임 총리로 당선되면서 총 재임기간 452일로 총리직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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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6일, 48세 때, 간 나오토는 자신이 공약한 퇴진 3조건인 2차 보정 예산안, 특례공채법안, 재생에너지 특별법안이 중참 양원에서 통과되면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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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0일, 48세 때, 간 나오토는 대표선거에서 노다 요시히코가 당선되어 신임 대표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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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일, 48세 때, 간 나오토는 노다 요시히코가 중참 양원에서 신임 총리로 당선되면서 총 재임기간 452일의 총리 내각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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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총선에서, 49세 때, 간 나오토는 자신의 지역구인 도쿄도 제18구 리벤지 매치에서 2위로 석패했지만 석패율제에 따라 비례대표 순번 3위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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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총선에서, 51세 때, 간 나오토는 전국 개표 최후반에 마지막으로 당선을 확정지었고, 475석 중 475번째 의석을 얻어 '미스터 475'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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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54세 때, 간 나오토는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의 희망의 당에 공천신청을 했지만 리버럴 성향 때문에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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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4세 때, 간 나오토는 에다노 유키오가 호헌, 리버럴 성향 의원들을 이끌고 나가 창당한 입헌민주당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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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4세 때, 간 나오토는 입헌민주당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도쿄도 제18구에 공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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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4세 때, 간 나오토는 NHK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 후보를 제치고 1위로 집계되었고, 실제 개표 결과로도 1위로 당선되어 2012, 2014년과 달리 자력으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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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후, 54세 이후, 간 나오토는 국회에서 중의원 경제산업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탈원전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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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 57세 때, 간 나오토는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새로 찍은 자신의 포스터를 지역구 관내에 새로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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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2015년 사이, 51~52세 때, 간 나오토는 자주 방한하여 도호쿠 지진과 원전사고에 대해 수없이 강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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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2세 때, 간 나오토는 경주에서 강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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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5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도쿄전력이 원전 철수를 운운하던 시점에 불 같이 화가 난 나머지 도쿄전력 직원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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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관료 체제와의 타협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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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후, 간 나오토는 도쿄전력이 사고 당시 자신에게 조차도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음을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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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7일, 65세 때, 간 나오토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독립검증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통해 도쿄전력이 사고 당시 전면 철수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사실임이 확인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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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64세 때, 간 나오토는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109시간 동안 철야를 하며 상황보고를 하는 것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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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지진을 이용해 센코쿠 요시토 등 자신의 측근들을 내각에 복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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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반관료주의자였다가 관료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사실상 다시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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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아시아 중시 외교 정책을 친미정책으로 돌려놓았다.

간 나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