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의 인생 붕괴

1966~2024.10.25·1화

최원석의 인생 붕괴

LIFE COUNT

2012~2020.01.28·1화

최원석

2024년 10월 19일 토요일

최원석의 인생 붕괴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은 왜 성수대교 참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떠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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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1일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 30주기이고 2024년 10월 25일은 고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의 1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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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23세 때1966년 아버지 최준문이 창업한 동아건설 사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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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1968년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통운을 인수하고+1974년 한국 건설 업계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재계 10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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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한남대교를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한강 다리 건설 붐이 시작됐고 동아건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지어진 15개 대교 중 6개의 시공사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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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때1977년 최원석은 동아건설 회장으로 취임했고 같은 해 4월부터 성수대교 건설 공사를 시작했고 불과 2년 6개월 만인 1979년 10월 16일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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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는 한강 교각 중 외관 심의가 이뤄진 최초의 교량이었고 시공사 동아건설의 최원석 회장은 미관상 아름다운 트러스 공법을 선택했지만 동아건설은 트러스 공법을 시공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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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의 시공비는 116억 원이었고 2024년 기준으론 500억 원에 달했지만 동아건설은 공사 기간을 단축해서 공사비를 아끼려고 부실 용접을 했고 이건 트러스 공법엔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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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1985년 6월 동아방송예술대학교+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공산학원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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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1992년 노후 구조물 안전 진단을 실시했지만 1979년 지어져서 준공 20년이 지나지 않은 성수대교는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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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동아건설은 성수대교의 통행량을 하루 5만 대로 예상했지만 1994년 하루 통행량은 2배가 넘는 10만 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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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0일 목요일 성수대교 상판과 상판의 연결 부위가 갈라진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서울시는 갈라진 부위에 철판을 깔아서 감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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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6시 경 성수대표 중간에 상판이 갈라진 금이 생겼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서울시는 비가 온 다는 이유로 곧바로 보수 작업을 하지 않았고 출근 시간 이라는 이유로 도로 통제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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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7시 30분 성수대교의 10번 교각과 11번 교각 사이의 다리 상판이 붕괴됐고 다리를 건너던 차량 6대가 상판과 함께 차례로 20미터 아래로 추락하면서 32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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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에서 성수대교를 건너 행당동으로 향하던 서울5사8909 한성운수 16번 시내버스에 탔던 승객 31명 중 29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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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시내버스 사망자 29명 중 18명은 출근하던 직장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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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시내버스 사망자 29명 중 9명은 중고등학생들이었고=1명은 무학여중 3학년생+7명은 무학여고 1학년생과 2학년생+1명은 무학여고 3학년생 장세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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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시내버스 사망자 29명 중 1명은 서울교대 3학년생 이승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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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시내버스 사망자 29명 중 1명은 버스운전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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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시내버스 승객 31명 중 2명만 생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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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직후 사고 현장을 찾아서 “동아가 책임이 있다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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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2일 신광옥 서울지방검찰청 2차장 검사는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서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수사하기 시작했고 최원석에 대한 기소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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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1994년 10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수대교 시공사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성수대교 재건설을 위해 1500억 원을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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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사고의 희생자 중 1명인 이승영의 어머니 김영순과 남동생 이상엽은 딸의 유품을 정리하다 14가지 소원이 쓰여진 일기장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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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이상에게 전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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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관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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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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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제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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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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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방송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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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도서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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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님들 재정 지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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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님들 재정 지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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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감사, 전도사님 전용 휴양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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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이상 입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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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선교사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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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위해 뭔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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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시설을 포함한 복지 마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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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은 딸 이승영의 시신을 고려대학교 의대에 실습용으로 기증해서=딸 이승영의 14가지 소원 중 1가지를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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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8일 최원석은 검찰에 출두해서 “그동안 수도 없이 성수대교를 다녔다”면서 “불량 시공을 했으면 성수대교를 다녔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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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시공사의 책임 기한은 5년이기 때문에 동아건설은 책임이 없고+성수대교 관리의 책임은 서울시한테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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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9일까지 2일 동안 조사를 받은 최원석은 “성수대교 공기 단축을 지시한 적 없다”고 말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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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옥은 최원석이 공기가 늦어지자 현장 소장을 해고시켰고+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공장에서 트러스를 조립하지 않고 현장에서 조립된 사실을 사후 보고 받은 증거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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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옥은 최원석에 대한 사법 처리를 주장했지만=김도언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는 최원석에 대한 불기소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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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16일 최원석에 대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1994년 11월 18일 신광옥이 이끌었던 특별수사본부는 시공사 동아건설과 관리자 서울시 소속 17명을 기소하고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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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10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은 서울시 7000만 원+동아건설 8000만 원으로 결정됐고=총 보상금액은 72억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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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은 보상금을 전부 남서울교회에 기부해서 딸의 이름을 딴 승영장학회를 만들었고=딸 이승영의 14가지 소원 중 1가지를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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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7일 1심에서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기소된 17명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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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열린 무학여고 졸업식에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사망자인 무학여고 3학년 2반 장세미 양의 아버지 장영남이 참석했고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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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김영순과 딸 이승영이 초등학생 때인 1985년 2월 13일 썼던 시 연기는 하늘로를 표제로 하는 유고 시집을 출간했고=딸 이승영의 14가지 소원 중 1가지를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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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6월 2심 항소심에선 17명 중 3명=동아건설 현장소장 신동현에게 2년 금고형+동아건설 부평공장 생산부장 박효수에게 2년 금고형+서울시 동부건설사업소장 여용원에게 1년 6개월형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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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3심 대법원 판결에선 14명에 대한 무죄가 확정됐고+3명에 대한 유죄가 확정됐지만=기소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최원석은 재판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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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서로 공모하지 않은 여러 책임자들이 저지른 과실이 결합돼 특정 사고가 발생한다면 각각 과실을 저지른 모두가 업무상과실치사상의 공동정범이라고 인정한 상징적인 판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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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건설과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공동정범이 된 서울시는 동아건설 대신 현대건설에 성수대교 재건설 공사를 맡겼고 1995년 4월 착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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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1995년 6월 동아건설을 상대로 150억 원의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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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3일 성수대교는 왕복 8차선으로 재개통됐고 북단엔 성수대교 희생영령위령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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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억 원을 들여서 성수대교를 재건설하겠다는 최원석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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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3일 외환위기가 시작되자 동아건설 역시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국내 재개발과 재건축에 투자했던 자금 1조 4000억 원이 묶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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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1998년부터 공시지가 1조 원에 달하는 김포매립지의 용도를 농지에서 산업 단지로 변경한 다음 정부와 한국전력에 매각해서 유동성 위기를 타계하려고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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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17일 김대중 정부 농림부 장관 김성훈은 최원석을 농림부 장관실로 불러서 용도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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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12일 최원석은 채권은행이 서울은행장으로부터 동아건설 경영권 포기를 요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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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15일 최원석은 동아건설 회장직과 대한통운 회장직을 모두 내려놓고 사재 700억 원을 출연하면서+아버지 최준문 창업주가 1945년 모태인 충남토건을 창업한 이래 2대 53년 동안 이어온 동아그룹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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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때1998년 최원석은 동아그룹 경영권을 잃은 이후에도 공산학원의 이사장직은 계속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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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영순은 딸 이승영과 함께 살았던 사당동 아파트를 정리했고 오피스텔 5채를 샀고+4채를 세를 준 뒤 1채에선 아들 이상엽과 둘이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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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서울남부터미널 인근 공원에서 책을 보며 공부했던 이상엽은 터미널에 버림 받는 자폐 장애인을 많이 봤고=언젠가는 누나 이승영의 14가지 소원 중 1가지를 이뤄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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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은 1999년 8월 15일 최원석이 27세 연하인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장은영과 비밀리에 4번째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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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18일 오후 11시 경 외환위기로 실직한 장영남은 성수대교 희생영령위령비 앞에서 독극물을 마신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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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남은 1999년 8월 22일 오후 11시 20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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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동아건설은 부도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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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김영순은 오피스텔 5채를 모두 매각해서 연해주 목사관을 짓는 일에 기부했고=딸 이승영의 14가지 소원 중 2가지를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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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노무현 정부 초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송광수는 최원석의 동아그룹 분식회계 혐의를 잡고 이승구 서울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를 통해 수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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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2일 최원석을 서울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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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는 최원석1988년부터 1997년까지 동아그룹 계열사를 통해 1조2000억 원 대의 분식회계를 했고+7400억 원의 사기 대출을 받았고+비자금 184억 원을 조성해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준 혐의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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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1심에선 집행 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2004년 1월 8일 열린 항소심에선 배임으로 2년 6개월+분식회계로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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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상엽은 장녀 이하빈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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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상엽은 장남 이하준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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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김영순은 해외로 선교를 떠났고=딸 이승영의 14가지 소원 중 2가지를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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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5일 이명박 정부 첫 광복절 특사에서 최원석도 사면됐고 사면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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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상엽은 차남 이하윤을 입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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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은 이하윤을 입양해서=누나 이승영의 14가지 소원 중 1가지를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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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2010년 4월 20일 결혼 11년 만에 장은영과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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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이상엽은 차녀 이하린을 입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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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식을 끝으로 10년이 지난 2023년 6월 최원석은 MBC 유튜브 소비더머니와의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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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자신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병명을 공개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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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동아그룹 직원들에게 그룹 해체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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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동아그룹 해체는 “엉터리”였다면서 자신은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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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에 얽힌 여러 사생활 논란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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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에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다시 태어나도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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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자신의 경영 성적에 대해선 “더 잘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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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평범한 가정을 이뤄서 말썽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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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일어난지 29년이 되던 2023년 10월 25일 최원석은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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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은 자신의 인생이 붕괴되기 시작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 관해선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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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9일 이상엽은 누나 이승영이 세상을 떠난 성수대교 다리 위에 올라서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와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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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에게 이상엽은 어머니 김영순과 누나 이승영이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눈을 주고 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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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은 1994년 10월 어머니 김영순과 누나 이승영이 일기장에 남긴 14가지 소원을 발견한 뒤 30년 동안 누나가 남긴 소원을 하나씩 이뤄주면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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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사건 희생자 가족 이상엽과 김영순은 고 이승영이 남긴 14가지 소원 중 13가지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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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현재 이상엽은 신앙 소설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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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은 김경화에게 “비는 누구에게가 내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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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1일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일어난지 30년이 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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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5일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에 책임이 있는 최원석의 1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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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그날도 성수대교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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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 최원석의 인생은 붕괴를 거듭했지만 붕괴된 다리 아래에서 희생자들은 인생의 진짜 의미를 찾아냈다.

최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