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 2026년 10월 18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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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08월 17일, 0세 때, 노태우는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신용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에서 면서기 노병수와 김태향 부부의 세 아들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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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03월 00일, 6세 때, 노태우는 고향의 공산소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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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00월 00일, 7~8세 때, 노태우의 아버지 노병수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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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03월 00일, 12세 때, 노태우는 공산국민학교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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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04월 00일, 12세 때, 노태우는 대구공업중학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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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8월 00일, 15~15세 때, 노태우는 경북중학교 4학년으로 옮겨 편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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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00월 00일, 17~18세 때, 노태우는 6·25 전쟁이 터지자 학도병으로 군에 들어가 헌병학교에 입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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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08월 00일, 18~18세 때, 노태우는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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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0월 00일, 18세 때, 노태우는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해 같은 기수의 전두환과 동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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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02월 00일, 22세 때, 노태우는 육군사관학교를 156명 가운데 67등으로 마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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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00월 00일, 23세 때, 노태우는 그해 봄 제5보병사단 소대장으로 발령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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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05월 31일, 26세 때, 노태우는 김옥숙과 결혼식을 올렸고, 육사 동기 전두환이 사회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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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2월 00일, 27세 때, 노태우는 미국 포트브래그에서 약 6개월간 군사 유학을 하며 특수전학교와 심리전학교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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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0월 00일, 27~28세 때, 노태우는 대위로 진급해 군사정보대 영어 번역 담당 장교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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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05월 16일, 28세 때, 노태우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이를 지지했고, 전두환과 함께 정변 지지 시가행진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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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08월 17일, 28세 때, 노태우는 학생군사교육단(ROTC) 창설 준비 요원 겸 교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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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노태우는 전두환과 함께 군내 사조직 하나회 결성을 이끌었고 그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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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0월 00일, 33~34세 때, 노태우는 국군방첩부대 정보과장과 방첩과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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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0월 00일, 34~35세 때, 노태우는 중령으로 진급해 베트남전에 파병됐고, 맹호부대(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1연대 3대대장으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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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6월 00일, 35세 때, 노태우는 육군대학 정규 과정을 수료하고 수도경비사단 대대장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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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37~38세 때, 노태우는 대령으로 진급해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이 됐고, 이 자리의 전임자는 전두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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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1월 00일, 38세 때, 노태우는 제8보병사단 제21연대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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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01월 01일, 41세 때, 노태우는 준장으로 진급해 제9공수특전여단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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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0월 00일, 43~44세 때, 노태우는 청와대 경호실 행정차장보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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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01월 00일, 45세 때, 노태우는 소장으로 진급하며 전두환의 뒤를 이어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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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03월 00일, 46세 때, 노태우는 제9보병사단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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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46세 때, 노태우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된 직후 전두환으로부터 대통령 유고 소식을 전화로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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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47세 때, 노태우는 제9사단장으로서 전두환이 주도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해 휘하 병력을 서울로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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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47세 때, 노태우는 12·12 직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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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5월 17일, 47세 때, 노태우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해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장하며 조치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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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5월 31일, 47세 때, 노태우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 2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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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8월 21일, 47세 때, 노태우는 중장으로 진급하며 전두환의 후임으로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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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7월 11일, 48세 때, 노태우는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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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7월 15일, 48세 때, 노태우는 서부전선에서 전역식을 갖고 예비역 대장으로 군복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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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7월 16일, 48세 때, 노태우는 민주정의당에 입당하고 초대 정무제2장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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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9월 25일, 48세 때, 노태우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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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9월 30일, 48세 때, 노태우는 정부의 올림픽 유치 활동을 총괄했고, 서울은 바덴바덴 IOC 총회 투표에서 나고야를 누르고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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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1월 09일, 48세 때, 노태우는 대통령 특사로 해외 순방에 나서며 부총리급 대외 직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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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02월 25일, 49세 때, 노태우는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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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03월 20일, 49세 때, 노태우는 체육부 장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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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04월 28일, 49세 때, 노태우는 제41대 내무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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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07월 11일, 50세 때, 노태우는 내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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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0월 00일, 51세 때, 노태우는 대한체육회 회장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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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02월 00일, 52세 때, 노태우는 제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3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민정당 대표위원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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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5월 07일, 53세 때, 노태우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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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6월 10일, 54세 때, 노태우는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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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6월 29일, 54세 때,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등을 담은 6·29 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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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7월 10일, 54세 때, 노태우는 전두환이 민정당 총재에서 물러나자 총재권한대행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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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8월 05일, 54세 때, 노태우는 민주정의당 제2대 총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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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16일, 55세 때, 노태우는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8,282,738표(득표율 36.6%)를 얻어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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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2월 25일, 55세 때, 노태우는 국회의사당 앞 야외 무대에서 처음 열린 취임식을 갖고 제6공화국 첫 대통령인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취임사에서 북방정책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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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25일경 · 55세 무렵, 노태우는 취임 뒤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 집권 민정당이 299석 중 125석을 얻는 데 그쳐 국회 사상 첫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을 운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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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7월 07일, 55세 때, 노태우는 남북 교류와 북방외교 방향을 담은 7·7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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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9월 17일, 55세 때, 노태우는 서울올림픽 개회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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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00일, 55세 때, 노태우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방미 중 레이건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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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23일, 55세 때, 노태우는 정부 출범 첫해 5공 책임론이 커지자 청와대 측을 통해 전두환에게 백담사행을 권했고, 전두환은 이날 대국민 사과문을 낸 뒤 백담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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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2월 01일, 56세 때, 노태우는 헝가리와 정식 수교해 동유럽 국가와의 국교 정상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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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2월 27일, 56세 때, 노태우는 방한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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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3월 04일, 56세 때, 노태우는 국회가 처리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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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9월 11일, 56세 때, 노태우는 국회 특별연설에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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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00일, 57세 때, 노태우는 유럽 5개국을 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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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1월 22일, 57세 때, 노태우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청와대에서 9시간 회담한 끝에 3당 통합으로 민주자유당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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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5월 09일, 57세 때, 노태우는 민주자유당 총재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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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5월 24일, 57세 때, 노태우는 일본을 방문해 가이후 도시키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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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6월 04일, 57세 때, 노태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첫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조속한 수교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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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7월 20일, 57세 때, 노태우는 남북한 민족대교류를 제안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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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9월 05일, 57세 때, 노태우는 서울에서 첫 남북총리회담이 열린 가운데 이튿날 북측 연형묵 총리를 따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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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9월 30일, 57세 때, 노태우는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뉴욕 유엔본부에서 공동성명에 서명하면서 소련과 대사급 국교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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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13일, 57세 때, 노태우는 청와대 영빈관 행사에서 조직폭력·마약·인신매매 등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는 특별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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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00일, 58세 때, 노태우는 소련을 방문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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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0월 00일, 58~59세 때, 노태우는 재임 중 지방자치제를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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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9월 00일, 58세 때, 노태우는 제46차 유엔총회 개막 첫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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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00일, 59세 때, 노태우는 남북이 화해·불가침·교류협력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데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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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00일, 59세 때, 노태우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북한과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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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0월 00일, 59~60세 때, 노태우는 재임 중 인천국제공항과 고속철도(KTX) 건설 착공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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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1월 00일, 59세 때, 노태우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북한과 정식 채택했고, 같은 달 부시 대통령과 다시 정상회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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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8월 00일, 59~59세 때, 노태우는 민자당 총재에서 물러나 명예총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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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8월 24일, 59세 때, 노태우는 중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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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9월 18일, 59세 때, 노태우는 대선 관리의 중립을 위해 민자당 명예총재직을 내놓고 당적을 버리며 중립 선거관리 내각 구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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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9월 27일, 59세 때, 노태우는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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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00일, 60세 때, 노태우는 베트남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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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2월 24일, 60세 때, 노태우는 5년 단임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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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19일, 62세 때, 노태우는 퇴임 후 4000억 원대 비자금을 시중은행 차명계좌에 넣어 두었다는 의혹이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국회 발언으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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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27일, 62세 때, 노태우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 재임 중 약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고 그중 약 1700억 원이 남아 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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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01일, 62세 때, 노태우는 대검찰청에 출두해 비자금 조성 경위에 대한 첫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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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16일, 62세 때, 노태우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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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8월 26일, 63세 때, 노태우는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한 1심에서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로부터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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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16일, 64세 때, 노태우는 12·12·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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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4월 17일, 64세 때, 노태우는 대법원에서 군사반란·내란·뇌물수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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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22일, 65세 때, 노태우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과 복권으로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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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2월 25일, 65세 때, 노태우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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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6월 00일, 66세 때, 노태우는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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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0월 00일, 69~70세 때, 노태우는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고 이후 소뇌위축증과 천식으로 건강이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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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00일, 73세 때, 노태우는 을지무공훈장을 비롯한 서훈 11개를 정부로부터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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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0월 00일, 74~75세 때, 노태우는 6·29 선언 20주년 만찬에 나와 언론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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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9일, 78세 때, 노태우는 회고록을 펴내며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 측 요청으로 3000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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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9일, 78세 때, 노태우는 1987년 대선에 2000억 원을 썼으며 6·29 선언은 자신이 결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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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9월 04일, 80세 때, 노태우는 동생 노재우와 전 사돈 신명수가 남은 약 230억 원을 나눠 내면서 16년 만에 추징금 약 2628억 원을 모두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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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2일, 81세 때, 노태우는 입원 중 전두환의 병문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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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00일, 86~86세 때, 노태우는 장남 노재헌의 첫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통해 5·18에 대한 사죄의 뜻이 대신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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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29일, 87세 때, 노태우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조화가 장남 노재헌을 통해 국립5·18민주묘지에 처음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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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 23일, 87세 때, 노태우는 10년 넘게 병상에 누운 채 수년째 말과 거동을 하지 못하고 표정과 눈 깜박임으로만 뜻을 나타내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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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1일, 88세 때, 노태우는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명의의 조화가 장남 노재헌을 통해 국립5·18민주묘지에 두 번째로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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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6일, 88세 때, 노태우는 지병이 악화돼 입원해 있던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오후 1시 45분께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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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7일, 사후, 노태우는 유족이 공개한 유언에서 부족했던 점과 과오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남북 평화통일이 이뤄지길 바라며 장례를 최대한 검소하게 치러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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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7일, 사후, 노태우는 국무회의에서 장례가 김부겸 국무총리를 장례위원장으로 한 5일장 국가장으로 결정됐으나, 내란죄 등 실형 전력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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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0일, 사후, 노태우는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영결식을 치른 뒤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돼 파주 검단사에 임시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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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9일, 사후, 노태우는 유해가 통일동산 인근 파주 동화경모공원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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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6일, 사후, 노태우는 파주 동화경모공원 묘역에서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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