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1930.08.30~2026.09.18·2화

워런 버핏 : 2026년 9월 13일 업데이트

워런 버핏 : 2026년 9월 19일 업데이트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 은퇴

1962~2026.09.18·1화

워런 버핏 : 56년 동안 194조 원

워런 버핏 : 2026년 9월 19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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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8월 30일, 0세 때, 워런 버핏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증권중개인 겸 공화당 소속 연방하원의원 하워드 호먼 버핏과 레일라 스탈 버핏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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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6세 때, 워런 버핏은 할아버지의 식료품점에서 껌과 코카콜라를 사서 이웃집에 되팔며 이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첫 사업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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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7세 때, 워런 버핏은 오마하 공공도서관에서 『1000 Ways to Make $1000』이라는 책을 빌려 읽으며 사업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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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0세 때, 워런 버핏은 아버지 하워드 버핏과 함께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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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1세 때, 워런 버핏은 Cities Service 우선주 6주(본인 3주, 여동생 도리스 3주)를 주당 38달러에 매수해 첫 주식 투자에 나섰고, 주가가 27달러로 떨어졌다가 40달러로 회복하자 매도했다. 이 주식은 이후 200달러 이상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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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2세 때, 워런 버핏은 아버지 하워드 버핏이 네브래스카주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가족과 함께 워싱턴 D.C.로 이주해 앨리스 딜 중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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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3세 때, 워런 버핏은 첫 소득세 신고서를 제출하며 신문배달에 쓴 자전거 비용 35달러를 사업비용으로 공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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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4세 때, 워런 버핏은 소득세 신고에서 신문배달에 사용한 자전거와 시계 비용 35달러를 다시 공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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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5세 때, 워런 버핏은 워싱턴포스트 신문을 배달해 월 175달러를 벌었고, 저축한 1,200달러로 네브래스카주 40에이커(약 4만9천 평) 농지를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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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5세 때, 워런 버핏은 친구 도널드 댄리와 함께 25달러에 중고 핀볼 머신을 구입해 오마하 지역 이발소에 설치하며 윌슨 코인 오퍼레이티드 머신스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몇 달 안에 세 곳으로 사업장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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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7세 때, 워런 버핏은 워싱턴 D.C.의 우드로 윌슨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졸업 시점 저축액은 약 6,000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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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7세 때, 워런 버핏은 핀볼 머신 사업을 전쟁 참전 용사에게 1,200달러에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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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7세 때, 워런 버핏은 대학 진학을 낭비라고 여겼으나 아버지의 설득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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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9세 때, 워런 버핏은 와튼스쿨에서 원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고 판단해 중퇴하고 네브래스카 대학교로 편입, 3년 만에 경영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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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20세 때, 워런 버핏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입학을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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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20세 때, 워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가 있다는 이유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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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1세 때, 워런 버핏은 그레이엄의 강의에서 A+ 학점을 받았고, 같은 해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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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1세 때, 워런 버핏은 GEICO 이사회에 벤저민 그레이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워싱턴 D.C.의 GEICO 본사를 찾아가 부사장 로리머 데이비드슨과 대화를 나눈 뒤, 개인 저축 약 1만 달러를 들여 GEICO 주식을 처음으로 매수했다(이듬해 약 50% 수익을 남기고 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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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1세 때, 워런 버핏은 한국전쟁 참전 대신 네브래스카주 방위군에서 의무복무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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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1세 때, 워런 버핏은 아버지가 경영하는 증권회사 버핏-포크 앤 컴퍼니에서 증권 판매원으로 잠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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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1세 때, 워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그레이엄-뉴먼 코퍼레이션에서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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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1세 때, 워런 버핏은 오마하 대학교에서 투자원칙 강의를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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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2월, 21세 때, 워런 버핏은 증권전문지 The Commercial and Financial Chronicle에 "The Security I Like Best"라는 기고문을 실어 GEICO 주식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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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 19일, 21세 때, 워런 버핏은 수전 톰슨과 오마하 던디 장로교회에서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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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23세 때, 워런 버핏은 첫째 딸 수지(수잔 앨리스 버핏)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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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24세 때, 워런 버핏은 그레이엄의 제안을 수락해 그레이엄-뉴먼 코퍼레이션에서 연봉 1만2,000달러의 증권분석가로 근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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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24세 때, 워런 버핏은 둘째 아이 하워드 그레이엄 버핏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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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25세 때, 워런 버핏은 그레이엄이 은퇴하며 회사를 폐쇄하자 잔류 제안을 거절하고 오마하로 돌아와 개인 투자자로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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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5월 1일, 25세 때, 워런 버핏은 자신의 돈 100달러와 유한 파트너 7명이 모은 10만5,000달러로 오마하에서 버핏 어소시에이츠(버핏 파트너십)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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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9월, 26세 때, 워런 버핏은 호머 다지로부터 12만 달러를 모집해 버핏 펀드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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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0월, 26세 때, 워런 버핏은 존 클리어리를 위해 초기자본 5만5,000달러로 B-C 파트너십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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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27세 때, 워런 버핏은 다우존스 지수가 8.4% 하락한 해에 10.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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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27세 때, 워런 버핏은 셋째 아이 피터 버핏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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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6월, 26세 때, 워런 버핏은 엘리자베스 피터스로부터 8만5,000달러를 모집해 언더우드 파트너십을 설립했고, 이 무렵 집에서 다섯 개의 투자 파트너십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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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28세 때, 워런 버핏은 오마하 파넘 스트리트 5505번지에 5베드룸 스투코 주택을 3만1,500달러에 매입해 이후 평생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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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28세 때, 워런 버핏은 다우존스 지수가 26.9% 오른 해에 55.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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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5월, 27세 때, 워런 버핏은 댄 모넨과 메리 엘런으로부터 7만 달러를 모집해 모-버프 파트너십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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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여름, 29세 때, 워런 버핏은 오마하 클럽의 비즈니스 점심 자리에서 훗날 평생의 사업 파트너가 되는 찰리 멍거를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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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29세 때, 워런 버핏은 샌본 맵 컴퍼니에 대규모 지분을 매수했다 — 본업인 지도 제작 사업은 쇠퇴했지만 투자 포트폴리오 가치가 주가를 웃돈다는 점에 주목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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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0세 때, 워런 버핏은 순자산을 9,800달러에서 12만7,000달러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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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1세 때, 워런 버핏은 파트너십 자산의 35%를 샌본 맵 컴퍼니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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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1세 때, 워런 버핏은 풍차 제조업체 뎀스터 밀 매뉴팩처링 컴퍼니에 처음으로 1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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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32세 때, 워런 버핏은 여러 파트너십을 병합해 버핏 파트너십 리미티드(BPL)를 설립하고 운용자산을 720만 달러로 늘렸다(이 중 버핏 부부 몫은 약 1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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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32세 때, 워런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을 통해 뉴베드포드 소재 섬유공장인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주당 7.50달러에 매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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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33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지분 7%를 보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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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34세 때, 워런 버핏은 샐러드오일 스캔들로 주가가 급락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주식 5%를 주당 35달러에 매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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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35세 때, 워런 버핏은 월트 디즈니와의 만남 이후 디즈니 주식에 400만 달러를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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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34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지배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획득하고, CEO 시버리 스탠턴을 해임한 뒤 켄 체이스를 새 사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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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36세 때, 워런 버핏은 볼티모어의 백화점 호크실드-콘 앤 코를 인수했다 — 파트너십 역사상 최초의 기업 전체 인수 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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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36세 때, 워런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에 대한 신규 자금 모집을 중단했다.
51
1967년, 37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역사상 유일한 배당금(주당 10센트)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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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37세 때, 워런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을 통해 20.4%의 수익률을 기록해 다우지수를 상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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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3월, 36세 때, 워런 버핏은 오마하 기반 자동차보험사 내셔널 인뎀니티 컴퍼니를 860만 달러에 100% 인수해 보험업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버크셔의 자본을 보험료 플로트를 활용하는 쪽으로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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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9일, 37세 때, 워런 버핏은 파트너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땅한 투자 기회가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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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8세 때, 워런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을 통해 45%의 수익률을 기록해 다우지수를 크게 상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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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39세 때, 워런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 리미티드를 청산하기로 결정하고 자산을 파트너들에게 분배했다 — 13년간 누적 수익률은 2,794.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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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39세 때, 워런 버핏은 파트너십 해산에 따라 자신의 몫을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 등으로 옮기며 버크셔의 회장 겸 대주주 지위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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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39세 때, 워런 버핏은 연봉 5만 달러와 외부 투자수익만으로 생활했다.
59
1970년, 40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 회장 겸 CEO로 취임했고, 이 해부터 매년 주주서한을 쓰는 전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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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0세 때, 워런 버핏은 쇠퇴하던 트레이딩 스탬프 판매업체 블루칩 스탬프스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61
1971년, 41세 때, 워런 버핏은 캘리포니아주 라구나 비치에 15만 달러짜리 별장을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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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2세 때, 워런 버핏은 블루칩 스탬프스를 통해 버크셔 해서웨이가 시즈 캔디스(2,500만 달러)와 웨스코 파이낸셜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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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43세 때, 워런 버핏은 워싱턴포스트 컴퍼니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하고 이사회에 합류했으며,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과 가까운 친분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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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4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의 웨스코 파이낸셜 인수에 대해 SEC로부터 이해충돌 가능성을 이유로 공식 조사를 받았고, 같은 해 주가 하락으로 순자산이 50% 이상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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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5세 때, 워런 버핏은 찰리 멍거가 지배하던 다이버시파이드 리테일링과 버크셔 해서웨이를 합병했고, 멍거는 그 대가로 버크셔 주식 2%를 받았다.
66
1976년, 46세 때, 워런 버핏은 주당 2달러 수준까지 떨어진 GEICO 주식에 400만 달러를 투자해 구제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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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47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버팔로 이브닝 뉴스를 3,250만 달러에 인수했다.
68
1977년, 47세 때, 워런 버핏은 아내 수전 버핏이 가수 활동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면서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 — 다만 2004년 수전이 사망할 때까지 법적 혼인 관계는 유지했으며, 수전의 소개로 아스트리드 멩크스를 만나 이후 오마하 자택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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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47세 때, 워런 버핏은 아들 피터 버핏에게 조부의 농장 매각 상속금을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 약 840주(주당 17달러, 총 약 9만 달러 상당)로 전환해 증여하며 추가 유산은 기대하지 말라고 못박았다.
70
1978년, 48세 때, 워런 버핏은 오랜 사업 동료 찰리 멍거를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으로 공식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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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말, 49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주당 290달러 수준일 때 개인 순자산 약 1억 달러를 보유했으며, 버크셔로부터는 여전히 연봉 5만 달러를 받고 있었다.
72
1980년, 50세 때, 워런 버핏은 주주서한에서 유보이익, 자사주 매입, 인플레이션, 보험 운영 등을 폭넓게 다루기 시작했다.
73
1981년, 51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철도차량 임대회사 GATX 코퍼레이션에 투자했다.
74
1982년, 52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주당 750달러에 이르고 주식 포트폴리오 가치가 13억 달러를 넘는 가운데, 개인 순자산 3억7,600만 달러를 보유했다.
75
1983년, 53세 때, 워런 버핏은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를 6,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76
1984년, 54세 때, 워런 버핏은 워싱턴 퍼블릭 파워 서플라이 시스템 채권 1억3,900만 달러어치를 매입하고, 엑슨과 노스웨스트 인더스트리즈에 투자했다.
77
1985년, 55세 때, 워런 버핏은 캐피탈 시티즈-ABC 합병 중재로 인한 겸직 금지 규정에 따라 워싱턴포스트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78
1985년, 55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원래 사업이던 섬유 제조 부문 운영을 종료했다.
79
1985년, 55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스콧 페처 컴퍼니를 인수했다.
80
1985년 3월 18일, 54세 때, 워런 버핏은 캐피탈 시티즈가 ABC를 35억 달러에 인수하는 합병을 중재하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81
1986년, 56세 때, 워런 버핏은 여전히 연봉 5만 달러를 받으면서도 억만장자로 평가됐고, 중고 팔콘 항공기를 85만 달러에 매입했다.
82
1987년, 57세 때, 워런 버핏은 로널드 페럴먼의 적대적 인수 시도로부터 살로몬 브러더스를 지키기 위해 지분 12%(7억 달러)를 매수해 최대주주 겸 이사로 취임했다.
83
1987년 10월, 57세 때, 워런 버핏은 뉴욕증시 블랙먼데이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84
1988년, 58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12억 달러를 들여 코카콜라 주식 매입을 시작해 지분 7%를 확보하도록 했다.
85
1988년, 58세 때, 워런 버핏은 살로몬 브러더스에서 불거진 불법 국채 입찰 거래 스캔들에 이사로서 대응했다.
86
1989년, 59세 때, 워런 버핏은 코카콜라 이사회에 합류해 2006년까지 재직했다.
87
1989년, 59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보석업체 보르샤임스와 질레트를 인수했다 — 이 무렵 버크셔 주가는 4,800달러에서 8,000달러로 뛰었고, 버핏의 순자산은 38억 달러에 이르렀다.
88
1990년, 60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웰스파고 지분 10%를 취득하도록 했다.
89
1991년, 61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H.H. 브라운 슈 컴퍼니(1억6,100만 달러)와 센트럴 스테이츠 인뎀니티(약 8,100만 달러)를 인수하도록 했다.
90
1991년 8월, 61세 때, 워런 버핏은 국채 입찰 부정 스캔들로 존 것프렌드 CEO가 물러나자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협상하며 살로몬 브러더스의 임시 회장 겸 CEO를 맡아 위기를 수습했다.
91
1992년, 62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주당 1만 달러를 넘어서는 가운데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최대주주가 됐다.
92
1993년, 63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덱스터 슈 컴퍼니를 4억3,300만 달러에 인수했다.
93
1995년, 65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헬즈버그 다이아몬드를 약 4억7,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94
1996년 8월, 66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GEICO의 나머지 지분 49%를 23억 달러에 인수해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도록 했다.
95
1997~1998년, 67~67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650년 만의 최저가 수준인 온스당 평균 4.32달러에 은 1억2,970만 온스를 매입했다(1998년 2월 공개).
96
1998년 12월 21일, 68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제너럴 리와 제너시스 인슈어런스를 총 220억 달러에 인수하도록 했다.
97
1999년, 69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조던스 퍼니처 컴퍼니를 인수하고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홀딩스 지분 인수를 시작했다.
98
1999년, 69세 때, 워런 버핏은 칼슨 그룹 설문조사에서 피터 린치·존 템플턴을 제치고 20세기 최고의 머니 매니저로 선정됐다.
99
2000년, 70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벤 브리지 주얼러, 저스틴 인더스트리(5억7,000만 달러), 벤저민 무어(10억 달러), 쇼 인더스트리 등에 투자했다.
100
2002년, 72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알베카, 라슨-줄, 프루트 오브 더 룸(8억3,500만 달러), 가란, CTB, 더 팸퍼드 셰프, 캐벌리어 홈스를 인수했다.
101
2004년 7월, 73세 때, 워런 버핏은 아내 수전 톰슨 버핏을 뇌출혈로 떠나보냈다 — 약 30억 달러 규모 유산의 96%를 가족 재단으로 지정하고 세 자녀에게 각각 1,000만 달러를 배분했다.
102
2006년, 76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이스카 메탈워킹 컴퍼니 지분 80%(기업가치 50억 달러), 비즈니스 와이어, 러셀 코퍼레이션, 마몬 홀딩스 등을 인수했다.
103
2006년, 76세 때, 워런 버핏은 순자산의 약 83%를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104
2006년, 76세 때, 워런 버핏은 아들 피터의 입양딸 니콜이 경제 불평등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이후 그를 가족에서 제명했다(2022년 화해).
105
2006년 8월 30일, 76세 때, 워런 버핏은 오마하에서 오랜 동반자 아스트리드 멩크스와 결혼했다.
106
2007년, 77세 때, 워런 버핏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포함됐다.
107
2007년, 77세 때, 워런 버핏은 방한해 기아자동차, 신영증권, 현대제철, KT&G, 대한제분, 오뚜기, POSCO 등 약 20개 한국 기업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 이후 2010년대에 포스코를 포함한 한국 주식 대부분을 정리했으나, 2012년부터 투자한 와이지원은 2020년대 초반 투자 비중을 늘리며 계속 보유했다.
108
2008년, 78세 때, 워런 버핏은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포브스·야후 추정 순자산 각각 620억·580억 달러로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13년 연속 1위였던 게이츠의 기록을 끝냄).
109
2008년, 78세 때, 워런 버핏은 자금 지원을 요청한 베어스턴스에 대해 경영진 스스로의 투자 조건이 거절되자 함께 투자를 거절했다.
110
2008년 9월, 78세 때, 워런 버핏은 골드만삭스 우선주에 50억 달러를 투자했다.
111
2009년, 79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를 현금·주식 34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고, 스위스리 자본확충에 26억 달러를 투자했다.
112
2010년, 80세 때, 워런 버핏은 BNSF의 나머지 지분을 260억 달러에 마저 인수해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 당시 버크셔 역사상 최대 규모 인수였다.
113
2010년 12월 9일, 80세 때, 워런 버핏은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기빙 플레지'에 서명하며 재산의 최소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같은 해 게이츠 부부와 기빙 플레지를 공동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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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1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루브리졸을 97억 달러에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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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80세 때, 워런 버핏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자유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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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2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IBM에 투자하고 오마하 월드헤럴드를 인수했다.
117
2012년 4월 17일, 81세 때, 워런 버핏은 1기 전립선암 진단을 공개했다(생명에 지장 없는 초기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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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일, 82세 때, 워런 버핏은 트위터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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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4세 때, 워런 버핏은 주주서한에서 초부유층 가정에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할 만큼 주지 말고, 아무거나 할 수 있게 할 만큼만 남기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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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5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필립스66에 대규모 지분을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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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6세 때, 워런 버핏은 애플 주식을 처음으로 매수하며 그간의 기술주 회피 성향을 극복했고, 같은 해 버크셔가 프리시전 캐스트파츠를 370억 달러에 인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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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9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옥시덴털의 아나다코 페트롤리엄 인수(380억 달러) 자금 조달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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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0세 때, 워런 버핏은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사우스웨스트·아메리칸·델타·유나이티드 등 보유 항공주를 전량 매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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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2세 때, 워런 버핏은 41억 달러를 추가 기부해 순자산 99% 기부 서약의 중간 지점에 도달한 것을 계기로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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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8일, 93세 때, 워런 버핏은 45년간 함께한 부회장 찰리 멍거가 향년 99세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설계자"라 칭하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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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94세 때, 워런 버핏은 애플 등 보유 주식을 계속 매도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현금 보유액을 사상 최대인 3,252억 달러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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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94세 때, 워런 버핏은 트럼프發 관세전쟁으로 세계 부자 상위 10명의 자산이 대부분 줄어드는 가운데 유일하게 자산이 증가했고, 관세 정책을 "전쟁"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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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일, 94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이사회에 그렉 아벨을 연말부터 CEO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하며 사실상의 은퇴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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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5일, 94세 때, 워런 버핏은 그렉 아벨을 2026년 1월 1일부터 사장 겸 CEO로 임명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식 보도자료를 버크셔 해서웨이 명의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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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3일, 95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의 회장·최고경영자 분리 의결에 따라 연말부터 최고경영자직을 그렉 아벨에게 넘기는 절차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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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0일, 95세 때, 워런 버핏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주주들에게 보낸 마지막 정기 주주서한에서 앞으로 연례보고서와 주주서한 작성은 "조용히 물러나겠다"고 밝히며 그렉 아벨을 "훌륭한 관리자이자 성실한 일꾼, 정직한 소통자"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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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0일, 95세 때, 워런 버핏은 보유하던 클래스 A주 1,800주를 클래스 B주 270만 주(약 13억5,000만 달러 상당)로 전환해 수전 톰슨 버핏 재단, 셔우드 재단, 하워드 G. 버핏 재단, 노보 재단 등 가족 4개 재단에 즉시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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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6세 때, 워런 버핏은 포브스 기준 순자산 1,489억 달러로 세계 9위 부자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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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일, 95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직에서 물러나 60년간의 CEO 재임을 마감했고, 그렉 아벨이 사장 겸 CEO로 취임했다 — 이사회 회장직은 유지하며 자문 역할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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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2일, 95세 때, 워런 버핏은 CNBC 특별 프로그램 '워런 버핏: 삶과 유산'에서 세 자녀 수지, 하위, 피터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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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7일, 95세 때, 워런 버핏은 자신의 이름으로 낸 마지막 13F 보고서를 제출했다 — 42개 종목, 2,740억 달러 규모였으며 뉴욕타임스 컴퍼니 주식 약 506만 주를 신규 편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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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95세 때, 워런 버핏이 이끌던 버크셔 해서웨이는 21개월 만에 처음으로 자사주 매입(약 2억3,400만 달러, 클래스A 33주·클래스B 43만1,462주)을 재개했다 — 이 무렵 현금 보유액은 분기 기준 사상 최대인 3,970억 달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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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95세 때, 워런 버핏은 "현금은 산소처럼 필요하지만 좋은 자산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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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직에서 즉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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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명예회장이 된 후에도 이사회 이사직은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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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1993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로 재직해 온 장남 하워드 버핏에게 회장직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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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1965년부터 버크셔에 봉사해 왔다"며 "60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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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서한에서 그렉 아벨과 하워드 버핏에 대해 "그렉이 회사를 운영하고 하워드는 회사의 문화와 가치를 보호할 것"이라며 신뢰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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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서한에서 "시간은 언제나 승리한다"며 "세월에는 장사가 없지만, 시간은 내게 관대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갖게 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지켜볼 기회를 줬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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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최근 가족들과 96번째 생일을 축하한 일화를 언급하며 "이제 막 한 살이 된 증손자가 나보다 훨씬 빨리 움직인다"고 농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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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서한에서 "그렉은 나의 기대를 뛰어넘었다"며 "회사가 훌륭한 경영진의 손에 맡겨졌으며,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주주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147
2026년 9월 18일, 96세 때, 워런 버핏은 하워드 버핏을 후임 회장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주주들이 결정한 정책으로 생각하고 결코 반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워런 버핏 : 2026년 9월 13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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